교동도의 벚꽃 엔딩, 고려산의 진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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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도의 벚꽃 엔딩, 고려산의 진달래
  • 이희인 여행가 겸 작가
  • 승인 2015.04.2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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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인의 <길 위의 책, 길 위의 맛> 8. 강화도
 


 
['2015세계 책의 수도 인천' 기획] 길 위의 책, 길 위의 맛
교동도의 벚꽃 엔딩, 고려산의 진달래
- 찾아간 곳 / 인천 강화도
- 읽은 책 / 박완서 <엄마의 말뚝>

 
섬이 없어졌다고 했다. 아니 섬이 육지가 되었다고 했다.
 
얼마 전 강화의 교동도에 다녀온 지인에게서 그곳에 마침내 다리가 완공되어 차를 타고 쉽게 다녀왔다는 얘길 들었던 것이다. 예전엔 교동도에 가려면 강화 본섬 서북쪽의 창후리 선착장까지 가서 배를 타고 한강보다 폭이 조금 더 너른 바다를 건너가야 했는데 이제 그 일은 먼 추억에나 남게 되었다. 연륙교가 놓이면 섬은 더 이상 섬이 아니다. 섬사람들을 위한 의료와 교육, 생활에 일대 변화가 일고, 뭍사람들을 위한 관광과 편의가 증대되지만, 우리 국토의 지향 없는 난개발과 변화를 지켜보아온 여행자에겐 연륙교가 마냥 장밋빛으로 여겨지는 것만은 아니었다.

언젠가 TV에서 연륙교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 적 있는데, 연륙교를 놓은 섬들의 경우 긍정적인 효과들 외에도 여행지의 매력이 줄어 여러 가지 부작용과 문제점이 노출된 사례를 보여주기도 했다. 주민들 의견에 따라 연륙교를 놓지 않은 섬들이 오히려 섬의 경제나 환경보존의 효과를 톡톡히 누리는 사례를 우리와 일본의 섬들을 예를 들어 설명하기도 했다. 그런 걸 떠나 아무튼 다리가 연결된 섬들을 볼 때마다 마음 한 켠에 되돌릴 수 없는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이방인에 불과한 여행자의 이기적인 연민일까?

그러면서 나는 이태 전 봄날, 창후리 선착장에서 낡은 연락선을 타고 다녀온 봄날의 교동도 여행을 떠올렸다. 배를 기다리는 동안 선착장 옆 작은 어시장에서 숭어를 한 마리 잡아 회로 떠서 바다를 건넜다. 교동도에서는 마땅히 회 한 점 먹을 곳이 없다고 일러준 것도 교동도의 여관 주인이었다.
 

 
강화야말로 수도권에 사는 사람에게는 굳이 여행이라고 할 것도 없이 훌쩍 드라이브나 소풍, 워크샵 같은 명목으로 가볍게 다녀올 만한 섬이다. 경상도에 사는 친구에게 들으니 그는 한 번도 강화에 가본 적이 없다 하니 누군가에겐 까마득히 먼 섬이긴 하겠지만. 강화가 인천에 행정적으로 편입된 건 오래된 일이 아니다. 알려진 바와 같이 강화는 우리 역사책에 자주 그 이름을 등장시킨 중요한 섬이다. 몽골의 침입 시에는 팔만대장경을 조성한 위대한 정신적 문화유산을 남긴 섬이려니와, 병자호란의 비극과 구한말의 병인, 신미양요 등 역사의 격변에 번번이 그 한가운데를 내준 섬이다.

우리나라에서 5번째로 큰 섬이었던 강화도는 김포평야와 연륙교로 연결되면서 섬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었다. 하지만, 강화가 거느리고 있는 섬들은 여전히 간단하지만은 않다. 민통선 개념이 적용돼 오랫동안 출입이 자유롭지 않았던 볼음도, 주문도를 비롯해, 북한 땅과 불과 수 킬로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은 교동도, 그리고 보문사와 너른 개펄을 품고 있는 석모도 등의 섬들을 만날 수 있다. 강화에서 또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거리나 민통선 안쪽에 놓인 위치 때문에 이 섬들은 비교적 청정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강화에는 시인 함민복이 산다. 강화 하면 이제 함민복을 떠올리는 사람이 적지 않으니, 충북 충주 출신의 시인도 이젠 강화 사람, 강화도 시인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어떤 땅에 어떤 시인, 어떤 소설가가 바로 연결되는 것만큼 작가에게나 그 땅에게 축복된 일이 또 있으랴. 소설가 구효서의 고향도 강화로 알고 있다. 교동도로 넘어가기 위해 들린 창후리가 바로 구효서의 고향이라고 했는데 젊은 날 탐독했던 그의 작품들에서 창후리나 강화도의 느낌을 기억해내기는 어려웠다.

내가 강화 교동도 여행을 위해 미리 읽고, 또 가져 간 책은 박완서의 자전적 소설 <엄마의 말뚝> 연작이었다. <엄마의 말뚝>에 잠시 등장하는 마을은 강화 본섬의 최북단에 있는 양산면으로 되어 있다. 바로 언덕 위에 올라서면 강 너비 밖에 안 되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작가 박완서의 고향인 개풍군이 지호지간에 있다고 했다. 양산면은 아니지만, 교동도 역시 북한 땅과 그만큼이나 가까운 섬이다. 두어 해 전에는 한 북한 주민이 바다를 헤엄쳐 건너와 민가의 문을 ‘노크해’ 귀순해 한바탕 발칵 뒤집어진 바가 있다. 북한 땅과 인접한 서해 5도의 백령과 연평의 섬도 다녀왔지만 교동도만큼 북한 땅과 바짝 곁을 맞댄 섬도 없었다.
 

민통선 안쪽이라 여행과 왕래가 쉽지 않았던 탓에 교동도의 중심지인 대룡시장은 시간이 멈춰버린 듯 적막하고 고요한 골목이었다. 한 텔레비전의 예능 프로그램이 이곳을 다녀간 뒤 적잖은 유명세를 타 새롭게 조명되었지만 그 기억마저 사람들에게 잊힌 봄날 저녁의 시장 통은 사람의 그림자 없이 적막했다. 시장과 마을을 어슬렁거리다 차를 몰고 가까운 교동향교와 화개사 등지를 다녀오자 날이 저물었다. 여관에 들어 창후리 선착장에서 사온 숭어회를 반찬 삼고 안주 삼아 먹었다. 반주로 마신 소주가 그윽해지자 숙소를 나와 섬의 곳곳을 돌아다녔다. 
 
남도로부터 서울 여의도, 인천 자유공원에도 이젠 다 져버린 벚꽃이 교동도에는 아직 마지막 꽃잎을 붙들고 있었다. 이 섬에서 바다를 건너 벚꽃은 북한 땅 개성과 평양을 지나 신의주까지 올라갈 것이다. 남한 땅에서 벚꽃을 볼 수 있는 마지막 땅이 어쩐지 거기 교동도일 듯싶었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 하필 교동도에서 버스커버스커의 ‘벚꽃 엔딩’을 흥얼거리게 될 줄이야 상상인들 했겠는가.
 

박완서의 <엄마의 말뚝>은 중, 단편이 묶인 3부작 소설이다. 일제 말기 부친이 병사한 뒤 어린 자녀들의 교육과 출세를 위해 고향 개성을 등지고 서울 현저동 달동네에 정착하는(‘말뚝’ 박는) 엄마와 가족의 피눈물 나는 고생담이 1부의 내용을 이룬다면, 2부는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엄마의 유일한 희망이자 종교였던 ‘오빠’의 비극적인 죽음을 다루고 있으며, 3부는 90세를 넘게 산 엄마의 마지막 가는 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실 여성, 그 중에서도 생활과 살림에 밀착한 주부의 세밀한 심리묘사와 통찰력을 발휘해 온 박완서 선생의 소설은 내 취향은 아니었고 그래서 즐겨 읽은 작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읽어본 그녀 소설의 집요하면서도 거칠 것 없는 문체에 대해선 역시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에 대한 가득한 연민의 시선 속에서도 일정한 거리를 두는 솜씨는 탁월하여, 이청준 선생이 <눈길>에서 보여준 모친에 대한 담담한 듯 따뜻한 시선을 종종 떠올리게도 한다. 이 연작에서 특히 돋보이는 작품은 아무래도 작가의 어린 시절을 서울 현저동이라는 공간과 함께 아름답고 생생하게 엮어낸 1부일 것이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오빠(자식)를 잃게 되는 비극을 다룬 2부는 처절하고 통렬하게 다가온다. 그 2부에 잠시 등장하는 강화도의 풍경은 스산하면서도 강렬하다.
 
오빠의 살은 연기가 되고 뼈는 한 줌의 가루가 되었다. 어머니는 앞장서서 강화로 가는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우린 묵묵히 뒤따랐다. 강화도에서 내린 어머니는 사람들에게 묻고 물어서 멀리 개풍군 땅이 보이는 바닷가에 섰다. 그리고 지척으로 보이되 갈 수 없는 땅을 향해 그 한 줌의 먼지를 훨훨 날렸다. 개풍군 땅은 우리 가족의 선영이 있는 땅이었지만 선영에 못 묻히는 한(恨)을 그런 방법으로 풀고 있다곤 생각되지 않았다. 어머니의 모습엔 운명에 순종하고 한을 지그시 품고 삭이는 약하고 다소곳한 여자 티는 조금도 없었다. 방금 출전하려는 용사처럼 씩씩하고 도전적이었다. (중략) 어머니에게 그 한 줌의 먼지와 바람은 결코 미약한 게 아니었다. 그야말로 어머니를 짓밟고 모든 것을 빼앗아 간, 어머니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분단이라는 괴물을 홀로 거역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박완서, <엄마의 말뚝 2>에서)
 



이튿날, 교동도에서 나온 뒤 차를 몰고 강화의 벌판을 달리다가 우뚝 선 고려산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마침 산은 연분홍 진달래가 중턱을 휘감고 있어 흡사 고운 한복 치마를 두른 모습이었다. 언젠가 제 철에 때맞춰 올라갔던 여수 영취산의 진달래 군락에 충분히 어깨를 겨룰만한 장관이었다. 일부러 때를 맞춰 찾아가기도 힘든데 제 때에 만나게 된 꽃대궐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마침 진달래 축제 기간이라 여행객들이 많았다. 어렵지 않을 것 같은 산인데, 올라보니 쉽지 않은 구간이 있었다. 그래도 구름처럼 산길 여기저기에 몽글몽글 피어난 진달래 군락이 산행에 힘을 주었다.

산정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강화의 너른 땅이 한 눈에 들어온다. 뿐인가. 섬 경계 너머로 김포와 서울이, 그리고 고개를 돌리니 멀리 북한 땅이 눈에 들어온다. 아, 저렇게 가까운 곳이구나. 저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곳을, 살아서 다시는 가지 못할 고향을 바라보는 실향민들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90세를 넘게 산 작가의 모친이 그니의 아들처럼 한 줌 먼지와 바람으로 남고 싶었던 소망을 이해할 만했다. 허리께로 김포 땅과 서해 바다를 끼고, 그러다 산길을 굽어 가면 멀지 않은 북한 땅의 풍광을 옆에 끼고 가면서 나는 고려산 진달래 속에서 길을 잃을 것만 같았다.
 

산에서 한껏 땀을 흘린 뒤 차를 몰아 외포리 선착장 쪽을 향했다. 강화에 오면 한 번씩 들리곤 하던 꽃게 집에 들려 푸짐하게 이른 저녁을 먹었다. 마침 꽃게가 제 철이지 싶었다. 이 부근 꽃게 식당들이 간판에 죄다 ‘서산’이란 지명을 달고 있지만 그 역시 이제는 ‘강화도 꽃게’ 집들이 다 되어 있었다.
 
외포리에는 아직 벤뎅이 회가 나오지 않았었다. 썩 맛있는 회는 아니지만 제 철에 한 번 맛보지 않으면 영 섭섭한 것이 그런 음식들이다. 괜찮다. 대신 창후리 선착장에서 사온 숭어 어란이 있으니. 집에 가 지친 여행을 마무리할 겸, 어란을 썰어다 소주 한 잔 마시면 그만일 터다. 교동도의 마지막 벚꽃 잎 지는 소리가 그 저녁에 들려왔다. 두 해 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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