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창영컬럼] 애국가 속에 터진 웃음보
상태바
[지창영컬럼] 애국가 속에 터진 웃음보
  • 지창영 시인, 번역가
  • 승인 2015.04.27 11: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잘못된 언론은 허상을 만든다.
 
 
채널A 화면 캡쳐
 

소라광장 근처를 지나던 시위대 사이에서 한바탕 웃음보가 터졌다. 지난 4월 25일, 세월호 ‘진실과 추모 행진’ 도중에 일어난 일이다. 이 날 동서남북 네 방향에서 유가족과 시민들이 출발하여 광화문에 집결하기로 되어 있었다.
 
용산역에서 출발한 팀이 숭례문을 거쳐 청계천 소라광장 근처를 지날 때였다. 인근에서 모종의 행사를 하고 있던 여성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확성기를 타고 울려퍼졌다. 귀를 기울여 보니 세월호 관련 집회를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세월호의 진실을 요구하는 것이 마치 내란 선동이라도 되는 양 목소리를 높였다. ‘세월호 문제는 다 해결됐는데 왜 나라를 시끄럽게 하느냐’ ‘유가족들이 해도 너무한다’는 요지였다. 세월호 행진에 참가한 몇몇 시민들은 한 마디씩 반박을 하고 지나갔다. ‘진실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1년이 되도록 위로받지 못하고 삭발까지 한 유가족들의 고통을 아느냐’는 등의 내용이었다.
 
그러자 확성기의 여성이 갑자기 격앙된 목소리로 애국가를 부르는 것이었다. ‘도옹해-물과 배액두산이…’ 하면서 돋구는 목소리가 한편으로 애처롭게 들렸다. 그녀는 애국가를 통하여 마치 이렇게 항변하는 것 같았다. ‘너희들은 애국가도 안 부르지.’ ‘봐라 나는 이렇게 애국심이 강하다.’
 
그런데 갑자기 행진하는 시민들 사이에서 애국가가 이어졌다. ‘마아르고 다알토록, 하아느님이 보오우하사 우우리 나라 만세…’ 점점 많은 사람들이 애국가를 부르면서 소리는 높아졌고 여기저기 함박웃음도 터져 나왔다. 확성기 여성의 당황한 모습은 흔들리는 목소리를 통해서 감지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목소리는 군중의 애국가 소리에 묻혀 버렸다. 그녀가 애국가를 끝까지 불렀는지는 굳이 확인하지 않았다.
 
한바탕 웃기는 했지만 뒷맛은 씁쓸했다. 무엇이 저 여성에게 세월호 추모 행렬을 마치 악마의 무리나 되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들었을까. 세월호에 관한 인식은 극과 극으로 나뉘어 과연 이것이 한 나라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유가족이 해도 너무한다’ ‘유가족이 무슨 귀족인 줄 아느냐’ 하는 인식이 퍼져 있다. 이와는 달리 사정을 깊이 아는 사람들은 ‘정부가 해도 너무한다’ ‘약속한 것도 안 지키는 대통령이 너무 야속하다’는 생각에 리본도 달고 행진에도 참여한다.
 
유가족을 탓하는 사람들은 대개 주요 지상파 언론에서 말하는 것 이상을 잘 알지 못한다. 유가족을 어떻게든 도우려 하는 사람들은 대개 주요 언론에서 말하는 것 이상을 알고 있고 그 이면의 내용을 알고 있다. 예를 들어 정부의 특별법 시행령이 진실 규명에 어떻게 방해가 되는지 주요 언론에서는 밝히지 않는다. 사실을 얼마나 알고 있느냐의 차이에서 세월호에 대한 생각도 상당 부분 갈라지는 것이다.
 
언론의 역할은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을 고립시키고 아픈 가슴에 못을 더 세차게 박는 것은 경찰의 차벽 뿐만이 아니다. 진실을 외면한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는 이 나라의 많은 국민에게 왜곡된 정보를 심어 주고 결국 국민을 분열시키는 작용을 한다. 국민과 국민이 서로 갈등하고 서로 대립하게 만드는 것은 상당 부분 언론에게 책임이 있다.
 
잘못된 언론은 허상을 만든다. 유가족은 아파하고 있는데 언론에서는 귀족 행세를 하는 것처럼 비춘다. 진실은 점점 묻히고 시간만 헛되이 가고 있는데 언론에서는 마치 세월호 문제가 다 해결된 양 비추어 준다. 이를 믿는 국민들은 세월호와 유가족의 본모습을 보지 못하고 허상을 보고 비난한다.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국민이라면 시위대 중에 누군가가 태극기를 불태웠다느니, 경찰 중에 누군가가 다쳤다느니 하면서 폭력성을 부각시키는 언론들에 놀아나지 않을 재간이 없을 것이다. 태극기 훼손은 유가족과 시위대와는 무관한 것이라느니, 경찰이 아니라 오히려 유가족이 갈비뼈가 부러져 입원까지 했다느니, 경찰이 불법을 저질렀다느니 하는 말은 그들의 귀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이미 선명한 이미지가 박혀 버렸으니 말이다.
 
태극기를 훼손하는 장면을 대서특필하는 언론은 마치 세월호의 진실을 요구하는 사람들 전체가 국가를 부정하는 사람들인 양 선동한다. 그것이 유가족과는 무관한 개인의 돌출행동이라는 점은 애써 감춘다. 경찰벽을 무너뜨리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이것이 폭력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강조한다. 그러나 그런 언론은 유가족들이 1년이 되도록 당해 온 폭력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세월호의 진실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마치 나라를 위태롭게 만드는 불순세력 쯤으로 여기고 그 앞에서 목청을 높여 애국가를 부르던 확성기의 여성은 왜곡된 언론에 물들어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하나의 사례일 것이다. 문제는 이와 유사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는 점이고, 더욱 우려스런 것은 시간이 갈수록 이런 사람들이 더 많아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세월호 추모 행렬이 애국가를 더 크게 부르는 것을 보고 당황하던 그 여성이 다시금 생각난다. 애국가는 그대의 전유물이 아니고 애국심은 그대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진실에 가까이 접근해 보지 못하고 왜곡된 언론만 맹신하는 한 무엇이 더 큰 애국인지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