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도와 소청도의 동백나무 군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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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도와 소청도의 동백나무 군락지
  • 김용구(인천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
  • 승인 2015.04.29 15: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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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앞바다! 새로운 발견 13


 
“어릴 때 동백나무 숲에서 그네를 타고 친구들과 재미있게 돌던 곳이에요” (이은철, 소청도)
 
대청도 동백나무

동백은 남쪽 해안이나 섬에서 자란다. 꽃은 이른 봄에 피는데,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춘백(春栢), 추백(秋栢), 동백(冬栢)으로 부른다. 따뜻한 지방에서 자라는 나무이며, 난대식물 중 가장 북쪽에서 자라는 나무이므로 평균기온에 따라 식물들이 자랄 수 있는 지역을 구분하는데 표시가 되는 나무이다.

대청도의 동백나무 자생지는 동백나무가 자연적으로 자랄 수 있는 북쪽 한계지역으로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1962년 천연기념물 제66호로 지정·보호하고 있다(문화재청).
 
 




 
대청도 동백나무 군락지에는 두 개의 표지석이 존재한다. 1933년 일제에 의에 지정된 표시석과 1966년 우리나라 문화재청이 지정한 표지석이 있다.
 
 
 
대청도 동백나무와 관련하여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먼 옛날 동백나무 꽃이 아름답게 피는 남쪽지방 출신 청년이 대청도로 와서 이곳 출신 처녀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청년은 급히 고향에 다녀올 일이 생겨 떠나게 되자 아내는 남편한테서 말로만 들어 온 아름다운 동백꽃의 씨를 가져와 심기를 당부하였다. 그러나 곧 온다던 남편은 몇 년이 지나도 감감소식이다. 지친 아내는 결국 병들어 죽어버린다. 그 후 어느 날 남편이 돌아오게 된다. 아내의 무덤 앞에서 통곡을 할 때 주머니 속의 동백 씨가 떨어져 나와 지금의 동백나무숲이 되었다고 한다.
 
대청도의 손무남 (72세) 옹은 동백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해줬다. 

“내가 결혼하던 당시는 결혼식에 타고 갈 가마를 마을 사람들이 밤새워 만들었어요. 생화가 귀해 습자지를 이용하여 함박꽃(조화)을 만들고, 여기에 장식으로 동백나무 줄기와 동백꽃을 사용하기도 했어요.

동백꽃이 피는 봄에는 꽃다발로, 가을에는 동백나무 줄기를 이용해서 신랑이 신부에게 주기도 했어요. 이처럼 결혼식에 동백나무와 꽃을 사용했지요. 여기 사람들은 동백꽃을 아주 귀하게 생각했어요. 아마, 그런 풍습이 한 70년대 말까지 존재한 것 같아요”
 
 
대청도 사탄동과 내동 길가에 동백나무

소청도 동백나무 자생군락지

소청도 예동마을 뒤편에 동백나무 자생 군락지가 있다. 동백나무 높이는 대략 2.­3m, 둘레는 15~75㎝, 수령은 200년 이상으로 추산된다. 약 50년 전에는 48주가 있었다고 하는데 최근에 확인해본 결과 약 35주 정도 남아 있다. 몇 년 전 옹진군청에서 동백나무 보호를 위해 철조망을 설치하여 보존하고 있다. 4월 말경 동백꽃이 만개한다. 다음 사진은 2014년 4월 18일 촬영한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정조 37권, 1793년)에 보면, "소청도는 대청도 남쪽 뱃길로 30리쯤에 대청도와 마주하여 있습니다. 네 개의 산봉우리가 늘어서 솟아 있는데, 동북쪽으로는 사대구미(寺岱仇味)·경생동(鯨生洞)·모전구미(茅田仇味)·탑동(塔洞) 등 네 개의 골짜기가 있으나 밑바닥까지 다 석벽(石壁)이어서 한 뙈기도 경작할 만한 땅이 없고, 남쪽으로는 능동(能洞)과 왜진동(倭津洞)이 있으나 모두 바닷가에 바싹 붙어 있으며, 서쪽으로는 우모진(牛毛津)·죽전현(竹田峴)·내진(內津) 등 세 곳이 있으나 또한 모두 높고 험준하여 씨를 뿌려 가꿀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섬의 서남쪽은 땅이 비옥하므로 개간해서 전답을 만들 만합니다. 나무들은 대체로 떡갈나무가 많고 동백(冬栢)과 춘백(春栢)이 십중 칠팔이었습니다."라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약 220년 전 소청도에 동백나무가 70~80%를 차지하고 있다는 기록을 보면 동백나무가 많이 존재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다음 사진은 2015년 4월 18일 촬영한 것이다.
 












 
소청도에서 낚싯배를 운영하는 이은철(64세) 씨는 다음과 같이 동백나무에 대해 들려줬다.

“동백나무가 있는 곳은 원래 당집이 있어 당산이라 불렀지요. 음력 1월 15일에 풍어제를 지냈지요. 풍어제는 1995년까지 했어요. 어릴 때 동백나무에서 그네를 타고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던 곳이에요. 동백나무로 팽이를 깎아서 놀이도 했어요. 아주 어릴 때는 산 전체가 동백나무 군락지였어요. 지금은 동백나무가 절반밖에 남지 않았어요”.
 
소청도 예동마을 동백나무 자생지, 천연기념물로 지정해야

따뜻한 지방에서 자라는 난대식물인 동백나무가 이처럼 북쪽에 있는 섬인 대청도, 소청도에서 자라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남쪽에서 북상하는 해류의 영향을 받아 영하의 기온이 오랜 시일 지속되지 않기 때문에 동백나무를 비롯한 남방계 식물이 자생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파악하고 있다.

소청도가 대청도보다 위도상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대청도는 천연기념물 66호인 동백나무의 북한계선이 맞다. 그러나 소청도 예동마을 동백나무 자생지는 수령이 200년 이상 되고 크기도 우수한 자생군락지를 형성하고 있어 보존가치가 높다. 따라서 대청도 동백나무와 함께 소청도 예동마을 동백나무 자생지도 천연기념물로 지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관계당국에서는 소청도 예동마을 동백나무 자생지를 전문가 조사를 통해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존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부록 -소청도와 김대건 신부
 
1846년 4월 18일(음) 김대건 신부는 마포 사는 임성용의 배를 타고 연평도 - 순위도 - 소청도 - 대청도 - 백령도에 도착한다.

1846년 5월12일(음) 백령도에서 청나라 어부에게 편지와 조선 지도를 전달 후 순위도에 돌아왔는데 함께 간 교우들이 연평도에서 조기를 잡아서 순위도에 말려 가져가려고 널려 놓았는데 조기가 마르지 않았다. 그래서 신부님께 며칠 더 머무르길 청하였고 김대건 신부가 허락하자 2주일 더 체류한다. 그러나 김대건 신부는 포졸들에게 체포돼 해주감옥으로 압송되고, 다시 서울로 이송되어 1946년 9월 16일(음) 새남터에서 처형된다.
 
김대건 신부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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