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대학교 건물 안과 밖의 온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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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대학교 건물 안과 밖의 온도차
  • 김선경 기자
  • 승인 2015.05.07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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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학교에 여러 청소용역업체 존재, 근로자들 각기 다른 대우 받아


올해 1월 연세대학교 국제캠퍼스에서 근무하던 20명의 청소·경비 용역 근로자들은 지난해 인력감축을 이유로 해고당했다. 이들은 고용을 보장하라며 108일간 천막 농성을 해왔고 그 결과, 4월 30일 용역업체는 순차적 복직을 약속했다. 올해 12월까지 20명 모두 고용 승계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해고노동자들의 고군분투 속에서 연세대학교는 ‘간접고용’이라는 명목 하에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전국여성노동조합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연세대학교는 지난 2월 해고노동자들에게 현수막이나 유인물 배포 등 천막 농성 행위에 대해 서울서부지방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가처분 신청에는 ‘연세대학교는 해고노동자들에 대한 사용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책임을 질 이유가 없으며, 농성 시 천막은 1일당 100만원, 현수막은 1회당 50만원을 내라’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해고노동자들은 다시 일터로 돌아갈 수 있지만, 여전히 대학교 당국에게 용역근로자들에 대한 책임을 강제하는 그 어떤 방안도 마련되지 않았다.

이에 기자는 지난 5월 1일 근로자의 날을 맞아 이런 상황이 연세대학교만의 문제인가를 살펴보기 위해, 인천 내 다른 대학교에서 근로하는 청소용역노동자들을 직접 만나봤다. 대학교 내 청소용역근로자들로부터 고용불안이 없는지, 급료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등 실제 근무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천 모 대학에서 야외청소를 하는 A씨(50세)는 지난 3월 1일부터 근로를 시작했다. A씨는 지난 근로자의 날과 법정공휴일 모두 쉬었고, 주 5일제로 근무하고 있다. A씨는 오는 6월이면 계약이 만료된다. 업체가 대학교 특성상 학기별로 고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A씨는 이번 학기가 끝나면 다시 여러 하청업체들에 서류를 넣고 통과되길 기다려야 한다.
 
A씨는 작년부터 학기마다 이 학교에서 일을 계속 해왔다. A씨는 하루에 8시간 가량을 일하고 5만원을 받는다. 작년에는 4만 7천원을 받았는데, 3천원이 많아진 셈이다. 그럼 대학교 방학 때는 어떻게 생업을 이어나가느냐고 묻자, A씨는 “다행히도 고용보험을 들기 때문에 방학 때는 조금씩 보험료가 나온다”고 말했다.

A씨와 함께 대학교 야외에서 청소를 하는 노동자는 4명이다. 휴식공간이 따로 있냐고 묻자 A씨는 “야외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지하에 옷 갈아입는 곳 말고 따로 쉴 곳이 없다”며 “학생들이 쉬는 곳을 같이 이용할 수도 있지만 학생들이 있으면 그마저도 피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대학교 내에도 여러 용역업체가 들어와 있어 노동자들마다 상황과 대우가 달랐다. A씨의 경우 건물 밖에서 청소하고 여러 용역업체를 전전하며 학기마다 재계약을 해야 한다. 하지만 C씨(54세)는 A씨보다는 높은 급료를 받고 안정적으로 일하며, 학교 구성원의 일부로 학교 행사에도 참여하고 있었다.

A씨와 같은 대학교에서 14년째 근무하는 C씨는 여성노조 가입자로 “전보다 학생들이 많이 늘어서 쉴 틈이 없지만 좋은 학생들도 많아 일하는 것이 너무 즐겁다”고 이야기 한다. C씨는 주 5일제로 근무하고 있는데 이번 근로자의 날은 쉬지 못했다. 근로자의 날 근무에 대해 임금을 더 받지는 못했다.
 
근로자의 날에 쉬지 못한 것이 아쉽지 않냐고 묻자 C씨는 "학생들이 수업을 들으러 학교를 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우리도 출근을 해야 한다"며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해한다"고 말했다.
 
C씨는 8시간을 일하고 한 달에 135만원(실수령금액)을 받는다. C씨는 “매년 하청업체가 바뀌는데, 아직 하청업제가 정해지기 전이라 올해엔 어떻게 임금이 책정될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하청업체가 바뀌면서 고용불안은 없냐고 묻자 C씨는 “하청업체가 아니라 여기서 근로를 해온 노동자들이 근무할 사람을 정하기 때문에 그럴 걱정은 없다”고 대답했다.
 
쉴 때는 어디서 쉬시냐고 묻자 C씨는 “예전에는 휴게실도 없고 1명이 건물 전체를 다 청소해야 했기 때문에 정말 힘들었지만, 요즘에는 건물 안에 따로 휴게실이 마련돼 있고 한 건물 당 2명이 청소해 그나마 나아진 상황”이라고 전했다.
 
또한 C씨는 기자를 학생으로 착각해 “저번에 편지 너무 잘 받았다”고 말했다. 기자가 어리둥절해 무슨 편지가 있냐고 묻자, C씨는 “5월 1일 근로자의 날마다 학생들이 손편지와 꽃 선물을 해준다”고 말했다.
 
C씨는 학교에서 진행하는 행사에도 참여하고 학교 구성원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C씨는 “이번 대학교 축제 때에 매년 했던 것처럼 전을 부칠 예정”이라고 말했는데, 기자가 방문한 대학교에서는 매년 청소용역근로자들이 대학축제 때 막걸리와 전을 파는 부스를 운영하고 수익금을 장학금으로 기부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C씨는 “이 나이에 소일거리도 있고 친절한 학생들도 만날 수 있어 매일이 즐겁다”고 말했다.
 
건물 안에서 일하는 A씨와 밖에서 일하는 C씨의 근무환경은 같은 대학교지만 굉장히 달랐다. 이는 한 대학교에서도 여러 용역업체와 계약을 하기 때문이다. 여성노조 가입자인 C씨의 경우 학생들과 노조가 보호해줄 수 있지만, A씨의 경우에는 어느 쪽에서도 보호해주지 않는 ‘사각지대’에 놓인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지난달 22일 ‘고용노동부는 연세대학교와 용역업체를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하라’는 기자회견을 가지고 있다. (사진출처: 새정치민주연합)
 
고용노동부가 작년 11월에 발표한 ‘대학 청소용역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160개의 대학교(국·공립 60개, 사립 100개) 중 시중노임단가 6,945원을 지급하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나는 등 고용노동부가 지시한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을 준수하는 대학교가 극히 적었다.
 
또한 대학과 용역업체가 체결한 용역계약에서 대학이 부당하게 용역업체의 경영 인사권을 침해하거나 노동 3권을 제한한 사례도 191건의 계약 중 121건에서 발견됐다.
 
이런 상황은 고용노동부가 정한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은 공공기관이나 국·공립대학교에 대한 업무지침의 성격을 지닐 뿐, 법적으로 대학교에 근무하는 용역근로자들을 보호해주기 힘들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사립대학교의 경우엔 더욱 직접적으로 적용되는 사항이 아니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을 지키지 않은 대학교에 대해 대학 평가에 불이익을 주는 등의 방안을 교육부에 건의했으나 대학 평가의 성질에 어울리지 않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국·공립대학교의 경우 내부적으로 보호지침을 기준으로 감사를 실시할 수 있겠으나, 사립대학교의 경우는 그것도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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