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에 두고 온 우리 아름다운 젊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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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에 두고 온 우리 아름다운 젊은 날
  • 이희인 여행가 겸 작가
  • 승인 2015.05.08 18: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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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인의 <길 위의 책, 길 위의 맛> 9. 강원 춘천
 

 
['2015세계 책의 수도 인천' 기획] 길 위의 책, 길 위의 맛
춘천에 두고 온 우리 아름다운 젊은 날
- 찾아간 곳 / 강원 춘천
- 읽은 책 / 김유정, <김유정 단편선>
 

춘천에 가고 싶다고 했다. 푸른 군복을 입고 젊음의 한때를 바친 그곳에서 희미한 옛날의 그림자를 더듬어 보고 싶다고 했다. 미국에서 바삐 살다가 10년여 만에 한국을 찾은 친구가 가보고 싶다는 도시들 목록 앞자리에 춘천이 있었다. 봄이 깊어지자 나 또한 춘천이 그리워졌다. 춘천의 무엇이 우리를 그곳으로 불렀을까?
 
내가 미국에 갔을 때 녀석의 차로 미국 서부와 중부를 함께 여행했는데, 녀석이 한국에 왔으니 그 빚을 갚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그저 강원도 쪽에 가고 싶다 해서 44번 국도를 따라 한계령을 넘고 양양을 거쳐 속초까지 달렸다. 속초에서는 갯배 근처의 부둣가 식당에서 생선조림에 늦은 밤까지 술을 마셨다. 이튿날엔 7번 국도를 타고 고성으로 올라가 거진항과 대진항에 들러 해산물과 회를 먹었다. 그리곤 오후에 진부령을 넘어 인제 용대리의 백담사 초입 마을에서 산채비빔밥을 먹었다. 한계령의 아름다움과 대진항의 푸른 바다, 진부령의 연둣빛 수풀에 감격하던 녀석은 그 모든 음식들에도 목이 막힌 듯했다. 흔할 수도 사소할 수도 없는 감동이었을 것이다.
 
 

LA에 갔을 때 한인 타운의 마트에도 대한민국에서 먹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음식과 식재료들은 널려 있었다. 그 먼 만리타향에 심지어 곤드레나물이나 새싹비빔밥도 만날 수 있었으니. 그러나 그것들이 어찌 우리 땅에서 제철에 난 것과 같은 음식이라 할 수 있을까. 진짜를 만나게 되면 가짜가 보이는 법이다. 새 봄, 우리 국토에서 길어 올린 음식들을 맛보며 녀석은 생선은 생선답고 해물은 해물다우며 나물은 진정으로 나물답다고 했다. 꿈에 그리던 맛이라며 녀석은 밥 한 술 반찬 한 젓가락에도 찬찬히 음미하며 음식들을 비워냈다.
 
그리고는 바로 춘천으로 향했다. 양구를 거쳐 춘천 안쪽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해 차는 저무는 소양강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소양강은 엊그제 와본 듯 반갑고 살가웠다. 작년엔 댐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너 오봉산이 병풍처럼 둘러싼 청평사까지 올라갔고 그해 첫 단풍을 절 아래 계곡에서 만났다. 아주 오래 전엔 다른 선착장에서 한 시간 넘게 배를 타고 들어가 양구에서 군복무하던 친구를 면회한 적도 있다. 소양강은 바다 같이 망망한 느낌이었고 청평사며 양구 등의 뭍은 오히려 바다에 외로이 떠 있는 섬 같았다. 해 저무는 노을을 배경으로 청동의 소양강 처녀 상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아아,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 처어녀 ~ 어찌 노래 한 자락이 목울대를 건드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춘천은 그렇게 많은 것들이 선명했다. 춘천의 볼 거리는 소양강과 의암호, 공지천 등, 춘천의 먹을 거리는 닭갈비와 막국수, 춘천의 노래는 소양강 처녀, 그리고 춘천의 작가는 김유정 등등. 이처럼 많은 것들이 확연하게 떠오르는 고장이 또 있을까? 그러다가 문득, 이튿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김유정 문학촌에 들러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까지는 녀석이 원하는 대로 흘러 다니다가 내 쪽에서 가고 싶은 곳을 얘기했는데 녀석도 흔쾌히 동의했다. 문학이나 소설하곤 담쌓고 살아온 녀석인 줄 알았는데, “아, 그 왜, 색시가 시집 올 만큼 키가 컸는지 안 컸는지 갖고, 장인 될 사람하고 티격태격 한 판 붙는 얘기였던가?” 하며 소설 내용을 제대로 기억해냈다. 김유정 같은 작가, 그리고 <봄, 봄> 같은 작품이 꽤 대중적이고 친숙한 작품이란 걸 녀석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춘천은 많은 소설가를 배출한 도시이자 많은 타향 작가들을 불러 모은 문학의 고장이기도 하다. 전상국, 최수철 등의 중견 작가를 비롯해 신세대 소설가인 박형서 등이 이 부근 출신 작가들이고, 오정희, 이외수 등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춘천에 정착해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많은 동시대 작가들이 떠오르지만 역시 춘천하면 요절한 식민지 시대의 소설가 김유정을 빼놓을 수가 없다. 김유정만큼 춘천이라는 공간과 그의 시대를 훌륭하게 복원해낸 작가가 또 있겠는가. 원로 소설가인 전상국이 선배 작가 김유정의 신봉자임을 자청해 김유정 문학촌의 촌장을 지내고 있는 걸로 봐도 그렇다.
 
 
춘천의 지인에게 소개받은 숨은 맛집을 찾아 저녁 대신 닭갈비를 먹었다. 밤의 공지천에 가 커피를 마셨고, 오색 불빛으로 수놓은 사람들의 축제 속에 섞이기도 했다. 이튿날 눈을 뜨니 촉촉한 봄비가 춘천의 산과 강을 적시고 있었다. 아침 겸 점심으로 막국수를 먹었다. 역시 춘천 사는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은 유명 막국수 집이었다. 소양강과 공지천, 닭갈비와 막국수. 조금 다른 장소와 음식을 찾아보려 해도, 춘천 안에서만큼은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는 그것들로부터 한 발짝도 벗어날 수가 없다. 막국수에 촌두부까지 먹은 뒤 차를 몰아 춘천 끄트머리의 김유정 문학촌으로 향했다.

춘천은 우리 남쪽 반도에서 봄이 가장 늦게 도착하는 곳 중 하나다. 한겨울 남한 땅에서 수은주가 가장 낮은 밑바닥까지 떨어지는 곳이 춘천이 아니던가. 그래서일까, 춘천 작가 김유정의 대표소설들, 즉 <동백꽃>과 <봄, 봄>, <따라지>, <앵화> 등이 모두 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조금 곡진한 느낌마저 자아낸다. 우리 국토 어느 곳의 봄보다 더 소중하고 간절하게 소설 속에 형상화된 느낌이다. 소설 속 팍팍한 삶을 사는 민초들에게 길고 혹독한 겨울이 끝나고 따뜻한 봄이 온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위안이 될 것인가. <만무방>이나 <금 따는 콩밭>, <땡볕> 등의 작품들이 봄 외의 다른 계절들을 맛깔스럽게 묘사하고 있지만, 그래도 유정의 글과 감성이 오롯이 살아나는 계절은 역시 봄인 듯하다.
 



“닭 죽은 건 염려 마라. 내 안 이를 테니.” 그리고 뭣에 떠다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내음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그만 아찔하였다. (김유정, <동백꽃>에서)
 
“이 자식아 미처 커야지. 조걸 데리구 무슨 혼인을 한다고 그러니 온!” 하고 남 낮짝만 붉게 해주고 고만이다. 골김에 그저 이놈의 장인님, 하고 댓돌에다 메꽂고 우리 고향으로 내뺄까 하다가 꾹꾹 참고 말았다. (김유정, <봄 봄>에서)
 
닭싸움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프로포즈를 성사시키는 발칙한 점순의 이야기라든가(<동백꽃>), 딸과의 혼인을 미끼로 이웃 총각을 머슴처럼 부려먹는 마름의 이야기(<봄, 봄>) 등에서 한없이 킬킬 대고 웃던 독자는, 시한부 삶을 앞둔 아내를 지게에 짊어지고 도시의 병원을 찾은 사내의 웃지 못 할 이야기(<땡볕>)를 읽으며 애처롭고 가여운 마음을 아니 가질 수 없다. 80여 년 전 쓰인 소설들인데, 조금 낯선 당대의 언어들을 즐긴다면 그 해학과 페이소스에 그저 감동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휘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희전문학교를 잠시 거쳐 간 당대 엘리트 출신인 김유정. 그런 지식인으로, 농군과 무지랭이, 머슴, 사기꾼 등 시골 하층민의 정서와 언어를 이토록 핍진하게 형상화해낸 작가가 또 있을까? <봄, 봄>이나 <동백꽃>을 비롯해 그의 많은 단편들은 재주 많은 소리꾼에게 이야기를 들은 듯, 한 호흡으로 읽히는 소설들이다. 아름다운 토속어와 민중의 언어가 흐드러지게 펼쳐지고, 춘천을 뛰어넘어 1930년대 우리 농촌의 비참한 삶과 애환이 연민 가득한 시선으로 살아 움직이고 있다. 채만식이나 이기영 같은 당대 작가가 묵직한 장편에서 구축해낸 식민지 하층민의 삶을, 이 작가는 이토록 짧고 간결한 단편들 위에 형상화 낸 것이다.
 
간단히 들러볼 예정이던 김유정 문학촌에 거진 3시간을 머물러 있었다. 강촌과도 가까운 춘천의 실레마을 너른 부지에 문학촌이 자리 잡고 있는데, 마을은 아직도 조성 중에 있다. 작가의 생가 터를 중심으로 다양한 전시물의 문학관과 공원 등이 조성돼 있다. 훌륭한 문인들을 기념하는 이 땅의 여러 문학관 중에서도 비교적 잘 갖춰진 문학관인 듯싶었다. 고증을 거쳐 복원된 작가의 초가 생가 툇마루에서 마당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오래 머물러 있었다.
 
 
마지막으로 문학촌 앞에 있는 기차역을 잠시 둘러봤다. 춘천에 와 춘천을 돌아보고 춘천이 전보다 더 좋아진 이유가 바로 문학촌 앞에 있는 기차역, ‘김유정 역’ 때문이기도 했다. 우리 기차 역 중에 이렇게 멋진 이름을 가진 역이 또 있을까? 정치가도 아니고 대중의 스타도 아니며 스포츠 스타도 아닌, 단지 짧은 소설 몇 편을 남기고 요절한 작가의 이름을 딴 기차역이라니. 이 얼마나 멋지고 근사한 이름인가. 자신들 고장 출신 작가를 온전히 평가하고 기념할 줄 아는 춘천이란 도시의 안목이 참으로 대단하고 근사하단 생각마저 들었다. 곧 미국으로 돌아갈 친구의 마음에 또 다른 춘천이 새겨질 것 같다.
 
춘천은 봄이다. 춘천(春川)의 ‘춘’은 청춘(靑春)의 ‘춘’이 아니던가. 나이를 먹더라도 춘천을 사랑하고 즐길 줄 안다면 그 사람은 아직 젊은 사람일 것이다. 청정한 강물이 아름다운 산봉우리를 휘감으며 흘러가는 도시, 춘천. 김유정의 단편이 언제든 즐겁고 마음으로 가볍게 꺼내 읽기 좋듯이, 춘천 또한 헐거운 마음으로 언제든 다시 건너가보고 싶은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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