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즉위식도 경청(敬聽)으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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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즉위식도 경청(敬聽)으로 시작된다
  • 지용택(새얼문화재단 이사장)
  • 승인 2015.05.13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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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택컬럼]
 
 

천자가 즉위할 때의 일이다. 상경(上卿)이 앞으로 나와서 아뢴다.
 
“어찌 하겠습니까? 우환이 언제나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나라의 환란을 잠재울 수 있으면 복을 누리게 되지만 환란을 물리치지 못하면 백성들을 해치게 될 것입니다.”
 
그런 뒤 천자에게 그 내용이 담긴 첫 번째 죽간(竹簡)을 올린다. 다시 중경(中卿)이 앞으로 나와 아뢴다.
 
“하늘의 짝이 되시어 천하를 다스리는 분께서는 일에 앞서 그 일에 대해 생각해야 하고, 환란에 앞서 그 환란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일에 앞서 그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것을 민첩한 처사라 하는데 처사가 민첩하면 모든 일이 잘 성사됩니다.
환란에 앞서 그 환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미리 대처한다고 하는데 미리 대처하면 환란이 생기지 않습니다. 일이 닥친 뒤에야 생각하는 것을 뒤진다고 하는데 뒤지면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없습니다. 환란이 닥친 뒤에야 생각하는 것을 곤혹(困惑)이라고 하는데 곤혹되면 환란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는 천자에게 그 내용이 담긴 두 번째 죽간을 올린다. 또다시 하경(下卿)이 앞으로 나와 아뢴다.
 
“공경하고 경계하며 태만하지 않아야 합니다. 궁전 안에는 일을 축하하는 사람이 있을 때 궁궐 밖에는 불행을 위문하려는 사람이 와 있는 법입니다. 재난과 행복은 바로 이웃하고 있어서 그것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나타날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노력하고 힘쓰십시오. 만 백성이 당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런 뒤에 천자에게 그 내용이 담긴 세 번째 죽간을 올린다. 이 글은 『순자(荀子, BC323~BC238?)』 「대략(大略)」 편에 보인다. 어느 나라 황제가 등극할 때 있었던 의식이라는 기록은 없지만 문헌에 철저하게 기초를 두었던 순자이기에 믿을 만하다. 황제의 의무와 인간적 고뇌가 배어있고 무엇보다도 역사에서 묻어나는 삶의 방식이 돋보인다. 그래서 듣는 사람의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대한민국 헌법 제69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대통령 취임 선서에는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한다.”라고 되어 있다. 우리나라 대통령 취임 선서에는 시민이 이미 다 아는 의무만 강조하고 인간적 고뇌와 사람 냄새가 없다. 법률 문안이어서 여유가 없고, 이상과 세계가 없어 건조하고 재미가 없다.
 
미국 대통령도 헌법 1조 2항 8절에 “나는 미합중국 대통령의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하고 최선을 다해 미합중국의 헌법을 보존하고 보호하며 지킬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라고 법률화되어 있다. 이 역시 법률 문안이어서 건조하고 대통령의 의무만 강조할 뿐 역시 사람 냄새가 없다. 우리와 다른 것은 우리 대통령은 오른손만 들고 선서하는 데 비해 미국 대통령은 우리와 똑같이 오른손을 들지만 왼손은 성경 위에 올려놓는다. 그러나 성경을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고, 또는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사용했던 성경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빌 클린턴 대통령은 자신의 할머니가 애용한 성경으로 취임식을 마쳤다는 사실이 이채롭다.
 
개인적으로 대통령 취임 선서는 시민 앞에 대통령 스스로가 겪어야 할 험난한 산과 바다보다 더 위험한 항해를 여러분과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인간적 고뇌와 외로움을 솔직히 밝히는 내용이었으면 한다. 천자의 즉위식에는 천자가 선서하는 것이 아니라 황제가 가야할 길이 이토록 힘들다는 것을 원로들이 철저하게 일깨워주는 것이 대통령 취임식과 다르다. 처음부터 선서의 형태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경청하고, 그것을 기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주장하는 외침의 정치가 아니라 듣는 정치의 시작으로부터 황제의 등극이 시작되고 강조된다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헌법에 기초한 선서가 시어(詩語)처럼 섬세함이 없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최고 책임자는 자기주장을 힘주어 목청 높이는 것보다 듣는 것에 더욱 무게를 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천자와 대통령은 시대의 흐름만큼이나 다른 존재들이지만, 2천여 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도 천자의 즉위식이 대통령의 취임식보다 신선하고 사람 냄새가 나며 신뢰가 있어 보인다.
 
이 근래 우리 사회의 지도자들은 사건이 사건을 덮고, 말로 말을 덮어 하늘을 덮는 데는 능해도 대화와 소통은 없다. 괴성과 소음만 난무하여 백성들은 힘을 잃은 지 오래다. 대화란 상대와 동격(同格)이어야 하는데 근본적으로 이것이 안 되는 것이다. 노예와 천민을 부릴 때조차 큰 제사를 받드는 것(使民如承大祭, 『논어』의 ‘안연’)처럼 하라고 성현이 일찍이 말씀했는데, 시민들의 어려운 살림살이가 그들의 가슴에 들어있는지 의심스럽다. 제발 지도자들은 시민을 다스릴 생각만 말고 먼저 안정시켜야만 백성이 따른다(修己以安百姓)는 천리(天理)를 실천하기 바란다.
 
자기 몸가짐은 엉망이면서 소리와 구호만 있으니 귀가 아프고 백성들은 등을 돌릴 수밖에 없다. 애공문정(哀公問政)이란 유명한 일화가 『중용』(20장), 『공자가어(孔子家語)』 그리고 『논어』에는 「안연」, 「위정」 등에 같은 내용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퍽 인상적이고 우리 현실에 조명할 만하다. 애공은 노나라 임금이면서도 밑의 대부들이 정치를 농단하였기 때문에 제대로 역할을 못하고 여생을 마친 불행한 임금이다. 공자가 74세로 서거하기 전 5년간 애공과의 대화 중 하나로 추정된다.
 
어느 날 애공이 “어떻게 하면 백성이 따르겠습니까?” 묻자 공자는 “곧은 사람을 들여 비뚤어진 사람 위에 놓으면 백성이 따르지만 비뚤어진 사람을 들여 곧은 사람 위에 놓는다면 백성은 따르지 않습니다(擧直錯諸枉 則民服 擧枉錯諸直 則民不服).”라고 대답한다. 그 자리에 있으면서 그 가치를 빛내는 사람을 찾으면 나라가 흥할 것이고 그 자리에 있으면서 그 가치를 추락시키는 사람을 임명하면 나라가 동력을 잃는 것이다. 지도자들은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슴으로부터 깨달아야 한다. “다스리는 사람은 있어도 다스리는 법은 없다(有治人 無治法).” 『순자』 「군도(君道)」 첫 장에 나오는 이 말처럼 법에 의존하지 말고 그 법을 잘 운영할 능력과 수양을 쌓은 사람을 찾는 것이 국가 안정의 첩경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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