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연와_벽돌공장, 그 마을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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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연와_벽돌공장, 그 마을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 강영희 객원기자
  • 승인 2015.09.25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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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 인천, 영희의 고향 이야기> ①서문

<인천in>은 강영희 객원기자가 풀어내는 '부평연와_벽돌공장, 그 마을의 이야기'(도시-인천, 영희의 고향이야기)를 연재합니다. 부평구 부개동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20대 초중반 재개발로 사라진, 지금은 흔적 조차 찾을 길 없는 '부평연와'와 당시의 마을, 마을사람들에 대한 깊숙한 기억들을 찾아 나섭니다. 그 엣날,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았던 '시간'과 '공간'들이 바로 역사이며, 한사람 한사람의 역사가 모여 한 시대, '역사'를 이룬다는 생각으로 옛 기억들을 불러내 촘촘히 기록해 나갈 것입니다.



부평연화, 재개발로 사라진 인천 최초의 공장

인천에 '부평연와'라는 벽돌공장이 있었습니다. 1930년대에 일본인에 의해 만들어진 공장으로 인천 최초의 공장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후에는 부평이나 그 일대에 벽돌공장이 좀 더 생겼었나 봅니다. 인터넷이나 시청, 구청, 국토지리정보원, 부평역사박물관등에 관련 자료나 지도, 사진 등을 찾아보는데 내용이 적고, 맞지 않기도 했습니다.


90년대 초반, 재개발로 그 마을의 흔적은 부평동중학교, 부평여중학교와 일부 길을 제외하면 거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2000년대 초 동중학교 입구이자 부개역 입구에 살면서 동네 한 바퀴 돌며 찍은 사진이 있습니다. 그때는 그저 '거의 다 사라지고 없네.'하는 생각뿐이었지만 몇 년 전 산책길에 만난 붉은 벽 - 부평 동중학교 외벽을 보며 여기에 전시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무심히 했습니다.

 

부개동 벽돌공장 폐업 @ 사진제공_ 부평역사박물관, 곽준석 사진가<부개동 벽돌공장 폐업> 부평연와 폐업 당시의 사진. 곽준석 사진가가 남겼고, 부평역사박물관에 기증해 사용을 허가받았다. 사실 이 공장은 부천쪽에 있는 가마고 벽돌을 만들던 공장은 인천쪽에 사택들과 함께 있었다. 상당히 거대하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흙벽돌을 말리고, 구워낸 벽돌을 놓아두던 넓은 공간이 있었고, 공장 폐업 후 자동자운전면허시험장으로 사용되었다.
 


어쩌면 고향이었던 그 마을 이야기

왠 벽돌공장이냐구요? 제가 그 '부평연와'가 있던 벽돌막 마을 -부개동이었다가 부개 2동이 되었다가 이제 3동인- 그 어디에서 제가 태어나고 자랐던 곳이거든요. 20대 초중반 나이에 지금의 부개주공아파트 단지로 재개발이 되면서 그 마을이 사라졌습니다. 논과 밭, 작은 공장과 작은 집들이 있던 그 곳에는 이제 거대한 아파트들이 내려앉았습니다.

아무 저항도 없이 우리는 왜 그 마을을 떠났을까? 그곳에 살아가던 많은 분들은 이제 어디에서 무얼하고 살아가고 있을까? 그곳에서 어울렸던 동무들은 또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가? 경일이 오빠, 순실이, 지연이, 선녀, 광일이 오빠, 용구 ...

이제 도시 한 가운데가 된 그 마을은 도시의 외곽이었습니다. 논과 밭도 많았고, 공장도 많았습니다. 단순히 벽돌공장에 다닌던 사람만 살았던 건 아니었거든요. 배추꽃 피던, 냉이 캐던 그 붉은 밭의 포실포실 보드라운 흙이 저는 아직도 기억에 선 합니다. 송사리 잡겠다고 갔던 웅덩이에서 시커먼 거머리에 놀라 엉엉 울면 누군가 풀잎으로 떼어주던 기억이 있습니다. 겨울이면 논에 잔뜩 쌓아놓은 볏짚더미에서 아랫쪽 볏짚을 빼내어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 옹이종기 모여 앉았던 기억도 납니다.

벽돌공장이나 노깡공장 가마는 벽돌이나 노깡을 굽고 난 온기가 남아잇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그 안에서도 꽤 많이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비를 피하기도 하고, 학교에서 찰흙을 가져오라면 그 공장 흙반죽을 퍼 갔는데 모래가 좀 섞여 있는 것이 늘 아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마을 어르신들의 부음을 들으며

십 수년 전 부터 그 마을 어르신들의 부음을 어머니를 통해 전해듣고 있습니다. 대부분 암이거나 더러는 교통사고였던거 같습니다. 올해 76세 되신 어머니는 지인의 부음을 전해들은 날이면 " **가 죽었단다. 암 걸렸다더니 ... **엄마 알지? .. 참 착했는데 .. " 하시며 돌아가신 분의 인품이라던가 그 시절에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했습니다.

 

누구는 어떻게 산다더라. 누구는 어떻다더라, ... 마을이 사라지고 흩어진 분들은 30-40년 이어온 친목계모임을 통해 한 달에 한 번 모여서 식사하시고, 사는 이야기를 나누시고 계시기도 하고, 부평시장인근에서 장사를 계속하고 계신 어머니 가게를 참새 방앗간 삼아 들러가시기에 소식이 머무릅니다.

 

어머니도 아프시고, 그 옛 어르신들 주름살이 깊어지니 당신들 다 돌아가시기 전에 그 마을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남겨두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고, 작년 겨울 옛 마을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났다는 오빠와 동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담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1976년 벽돌공장과 주변 지도 <벽돌공장은 12번 버스 종점에서 내려 신상리로 가는 길 사이에 있었다. 공장과 사택이 있던 인천쪽과 흙벽돌을 말리고 굽던 가마와 공터가 있던 곳이 부천쪽이다. 거기서 김포와 서울로 가는 삼거리 주변가지가 이 마을이 형성되었던 곳이다.>

 

개인의 가족사?

그것은 한 시대의 역사다.


사람이, 그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았던 '시간'과 '공간'들이 바로 역사라는 생각, 한사람 한사람의 역사가 모여 한 시대의 역사를 만든다는 생각은 마을공동체 활동, 공동체 문화예술 활동을 하며 굳어진 저의 역사관입니다.

역사속에서 수 많은 민중의 역사를 몇 퍼센트 되지 않는 이들의 글 속에서 자간과 행간을 읽어가며 찾아내야하는 것은 좀 억울한 일 아닐까요?

'내 손으로 기록하겠다.' 제 사진이 예술이나 작품이라는 이름에 붙히지 않고, 그저 이 시대와 공간, 사람들의 '기록'인 이유입니다. 손가락에 인대가 늘어나고, 부딪혀서 찌그러져가는 카메라를 손에 붙히고 사는 이유입니다.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다.' 라는 말 .. 한 생을 살아간, 내 삶을 책으로 쓰면 몇 권인지 모른다는 우리 엄마들의 말 .. '그렇게 찍으면 몇 장은 남지 않을까?' 하는 생각.

 '도시 - 인천, 영희의 고향 이야기'는 그래서, 그렇게 그 곳- 사라진 마을에 살았던 우리 가족과 이웃들의 이야기를 담는 것을 시작합니다.


 

옛 흔적을 수 백년을 이어가는 유럽의 도시들처럼

미래들에게 고향, 인천을 전해줄 수 있을까?

 

도시는 고향이 될 수 있을까? 될 수 없을까? 고향은 무엇일까? 인천에는 어떤 사람들이 왜 모여살고 있을까? 중학교때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에는 지역 역사를 배우는 경우도 없었고, 어떤 선생님도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진 않았만 그래도 내가 사는 도시가 궁금했습니다. 궁금증을 풀 방법도 마땅히 몰랐기에 잊었다고 생각했던 ..

 

제 2의 고향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부터 인천에서 태어나 자랐고, 어린 조카들에게는 당연히 고향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고향과 살았던 적 있던 곳에 대한 괴리를 발견하며 고향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굳이 유럽의 옛 건물이 있는 도시를 생각한 건, 배다리에서 옛 도시의 조각을 살려내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준 김정후 박사의 영향입니다. 보도블럭 하나를 바꿔도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그곳이 도시를 지속시키는 방식, 옛 것들 그저 한꺼번에 무너뜨리고 새로 쌓아올리는 새마을 운동처럼 재개발이라는 명목하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내 머릿속에 있는 그 마을 풍경을 생각하며 전통과 역사를 잇고, 변화, 지속시키는  성숙한 시민은, 도시는 어떻게 가능할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라진 그 마을의 이야기,

아직 거기에 있는 당신의 마을 이야기가 인천의 역사입니다.

 

인천의 한 귀퉁이, 이제는 사라진 그 마을에 살았던, 아직 그곳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도시, 인천의 역사 한 조각을 써내려갑니다. 그들로 인해, 저에겐 도시, 인천이 의미가 있습니다.

이젠 지금, 제 이웃으로 살아가는 당신들의 역사가 있어 저에게 인천이 의미가 있습니다. 너무 옛날 이야기 아니어도 내가 아는 당신의 역사가 인천의 역사입니다. 한 번 들려주세요.

 

rain-o2@hanmail.net / blog.daum.net/rain-o2 / 010-7389-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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