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역사'를 만들어보자... 다 사라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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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역사'를 만들어보자... 다 사라지기 전에
  • 강영희
  • 승인 2015.11.06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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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_도시, 영희의 고향이야기]⑤부평동중학교 동문 외벽에 걸린 고향이야기

부평 동중학교 7회 3학년 5반 졸업사진
<부평 동중학교 7회 3학년 5반 졸업사진>


여기, 사람이 살았다!
여기, 사람이 산다!


인천이라는 도시, 북쪽 한 귀퉁이에 작은 마을이었다. 랜드마크라 할 부평연와-벽돌공장, 그 크고 거대한 가마공장과 높은 굴뚝, 흙산이라 불리던 흙더미가 있었지만 일요일이나 명절이면 정말 조용하고 한적하기가 요즘 우각로 주말거리 같았다.

고즈넉한 동구의 송림동 8번지 철탑 일대, 송월동과 화수동 어느 골목, 송림로터리에서 도원역으로 가는 길 옆, 송현동 수문통 거리, 창영동 배다리까지 내가 거쳐온 공간들의 주변을 꽤 열심히 찍었다. 그래도 더러는 컴퓨터 고장으로 사라지고, 없어졌지만 그 기록은 배다리에서만 얼추 10년이다.

사라져가는 마을의 모습을 기록해온 이유는 아마도 잃어버리고 사라져버린 내가 태어난 그 마을에 대한 잔영이 아닌가 한다. 내 이웃과 가족이, 친구들이 살았던 곳이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많이 사라져갔고, 사라져가고 있고, 그 위에 이름도 역사도 색깔도 개성도 없는 네모난 아파트와 시커먼 아스콘과 눈이 부신 네온사인 광고판으로 채우져가고 있는 것에 화가 났기 때문이다.

"여기, 사람이 살았다! 여기, 사람이 산다."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영희의 고향 이야기 - 외벽전시모습
<부평동중학교 동(東)문 외벽 전시 모습>

기획연재 '부개동 벽돌공장의 기억' <인천_도시, 영희의 고향이야기>에서 <강's 사진이야기 전 _ 네번째> 전시를 준비하며 찾아낸 자료들이나 인터뷰, 흔적들을 통해 우리들의 사소한 기록들이 모여 역사가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아무도 기록하지 않는, 그러나 그렇게 없어지기에는 우리 90%, 아니 99.9%의 사람들의 삶이 너무 낭비 아닌가? 누군가의 기록을 위해 우리 주변의 삶들이 하찮게 버려지고 왜곡되고 잊혀지는 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그러니 기록하라고 말하고 싶다. 누가 뭐래도 힘겹고 고단한 삶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들의 기록과 기록이 모여 마을의 역사가 되고, 도시의 역사가 되고 나라와 민족의 역사가 된다고 믿는 것이다. 많이 기록할수록 쉽게 지우거나 바꿀 수 없는 그대로의 역사가 된다고 믿는다. 희망한다.


다 사라지기전에 ...
부평동중학교 동문 외벽에 걸다


<인천_도시, 영희의 고향이야기>라는 주제(벽돌말)로 조금씩 다른 틀과 모양으로 세 공간에서 전시를 한다. 
부평구청 지하 '굴포갤러리'에서 10월 23일부터 11월 2일까지 진행했고, 두번째 전시는 오늘 11월 7일부터 16일까지 부평 동중학교 동문 외벽에서 진행된다.

부개주공아파트와 인근 아파트들이 세워지며 마을의 반이 사라졌고, 상동신도시가 만들어지면서 나머지 반이 사라졌다. 2003년 오랜만에 그 주변 사진을 찍으며 부평동중학교 동문쪽 외벽이 있는 길이 그나마 그 옛날부터 남아있는 곳이어서 눈에 들어왔다. 여기에서 전시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기억을 붙들고 있는 이 붉은 벽조차 사라지기 전에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굴포갤러리 전시가 끝나갈 무렵 전화가 왔다. 자신도 동중을 지나 신상리 가는 길에 살았는데, 전시를 보고 반갑고 고마웠다며, 죽마고우들과 마을 길, 친구 집 옆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오셨다.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질문을 하다보니 부모님들이 서로 아시고, 나보다 15-20년 먼저 그 길을 다녔던 분이시다. 같은 공간에서 다른 시간을 살았던 사람들이 이렇게 만나진다는 것이 참 신기했다. 그 분의 이야기도 동중학교 전시에 담겼다.

신상리 가는 길 - 영희의 고향이야기
<신상리 가는 길> 사진 _ 이준표 제공 /1979년.


고향, 삶을 묻다

11월 6일 이른아침, 전시물 설치를 시작했다. 그 며칠 전 주차되어 있는 차량과 전시 될 벽 주변에 주차협조문을 조심스럽게 써서 붙혔다. 조카는 차들이 그냥 있으면 어쩌냐며 걱정을 했다. "어쩔 수 없지머 .. 각오하고 시작한거야" 그랬는데 생각보다 많은 차들이 자리를 내어 주었다. 동중학교 경비아저씨께서는 이곳에서 근무한지 5년인데 이 학교벽 옆으로 차가 이렇게 적은 건 처음이라 하시며 신기해 하셨다.
 

이 벽을 빌려주시겠어요?- 영희의 고향이야기
<열흘만 여기 길과 벽을 빌려주시겠어요?>


그 길은 여전히 초,중등학교 아이들의 등교길이었다. 아파트와 차, 아스팔트 찻길로 둘러쌓인 길이다. 학교 벽 옆은 거의 누군가의 주차장이 되어있었고, 그 주변에는 쓰레기가 굴러다녔다. 전단을 붙히며 쓰레기를 좀 주웠지만 감당이 안되서 부평구청 청소과에 의뢰를 했다.

길 옆 쓰레기 더미 - 영희의 고향이야기
<동중학교 아이들의 등하교길... 이 벽도 동중학교 원래 그 옛날 있었던 그 길의 벽이다.> 청소과에 의뢰 했으나 아직 치워지지 않았다. 예전엔 학교에서도 학교 주변을 청소했고, 학교주변 주민들도 같이 치워주곤 했다.

다소 지저분하고 삭막한 그곳에 하나하나 준비한 전시물을 붙혀나갔다.

전시물 설치중 - 영희의 고향이야기

옛 졸업사진을 바라보는 아이들 - 영희의 고향이야기
<흑백 졸업사진 현수막을 신기한듯 관심있게 바라보는 아이들>

운동하거나 출근하는 어른들이 신기한 듯 쳐다보고 가고, 이어 동중학교 학생들이 역시나 신기한 듯 구경하며 지나가고-오빠가 이 중학교의 7회 졸업생이라 옛 졸업사진을 현수막으로 만들어 붙혔다. 그 흑백사진 현수막을 보며 아이들이 '까까머리'라고 웃기에 "너희들도 까까머리잖어" 했다. 인근 초등학교 아이들은 흑백사진이 신기한듯 쳐다보며 지나간다. 교문을 지키는 선생님은 잘 붙지 않는 현수막을 꼬옥 눌러 붙혀준다.

전시물을 설치할 수 없을 만큼 벽 가까이 차를 댓길래 전화를 해서 부탁을 했더니 흔쾌히 빼준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설치를 했는데 빈 자리에는 또 다른 차가 갖다 댄다. 열흘 동안의 전시에 대한 설명을 했는데 "주차난이 심한데 어쩌라고 그러냐"며 면전에서 고급 세단을 대고 간다.

'주차장도 없으면서 차는 왜 샀는데?, 아이들이 차나 보며 등교하는게 좋은가, 흥! 칫! 뿡 .. '
'등하교 길인데 .. 너무 지저분하고, 삭막한데 .. 사진 글 그림 붙혀놓으니 얼마나 좋아 ..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
각오는 했지만 성이 나서 속으로 ㅡㅡ; 욕을 했다.


함께 가ㄲ꾸어 가야할 것들 - 영희의 고향이야기
<쓰레기와 차들이 좁은 등하교길을 눈살 지푸리게 한다. 함께 가꿔야 할 것이 있다. 저 길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울림을 줄 수 있을지 >

그래도, 쓰레기조차 아무렇지도 않게 방치되고, 또 아무도 치우지 않는 그 길에, 밋밋하고 단조롭고 건조한 길에 조금은 생기를 더했으려나? 조금은 그들의 마음에 생각들에 두드림이 되었으려나? 아파트와 차와로 둘러쌓인 학교가 학교 담벼락 안 뿐만 아니라 그 바깥도 조금 신경을 쓰려나? 학교를 둘러싸고 있는 지역사회가 그 학교와 아이들에 대해 고민과 배려를 조금은 하게 되지 않을까?

이런저런 마음을 품으며 설치를 마쳤다.
그들 사이의 어떤 울림이 생겨나면 좋겠다는 생각도 더불어 든다.


마을만들기,  우리들의 역사를 만드는 일
일상의 삶에 모습을 기록해야하지 않을까?


<인천_도시, 영희의 고향 이야기>는 개인적인 경험을 중심으로 그 주변의 공간과 기억들을 살려내 전시를 구성했다. 하지만 이 전시의 의도는 이 도시_인천의 또 다른 어딘가에서 살아가는 또 다른 나 - 우리들의 공간에 대한 고민, 그곳에 살았던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시간과 기억에 기록작업, 그것들이 엮어낼 수도 있는 우리들의 역사를 만들어보는 건 어떻겠냐는 제안이다. 그리고 그 시도를 이렇게 해 보는 건 어떠냐는 예시sample이다.

마을만들기 사업들이 곳곳에서 펼쳐지며 지역공동체 회복을 위한 많은 노력들을 해 나가고 있다. 성과가 보여져야 지원을 해주니 벽화며 외관을 꾸미기 바쁘다. 그러나 우리는 그 속의 중요성을 안다. 하지만 기록하지 않으면 그것도 외관-바깥모습을 기록하는데 그칠뿐이다. 그 마을의 역사를 만드는 일, 기록하는 작업을 하는 건 어떠냐고 묻는다. 마을의 역사를 만들려면 사람과 공간을 만나고, 그 시간의 기록을 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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