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현전>,60년을 지켜온 배다리 헌책방에 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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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현전>,60년을 지켜온 배다리 헌책방에 모이다
  • 강영희 객원기자
  • 승인 2015.11.14 12: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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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리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작은 헌책방 <집현전> 이야기

배다리 Day- 집현전 이야기

배다리 헌책방 -집혀전배다리 헌책방 거리 <집현전>사장님_ 오태운 옹(89)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지난 금요일(11.13) 오후 5시 배다리 헌책방 중 가장 오래되고, 가장 작은 <집현전>에서 마실이야기가 있었다. 하모니카 연주로 배다리에서는 유명한 집현전 사장님 오태운 옹(89)과 노래자랑 수상 경력이 화려하신 사모님 한봉인(85)님을 모시고 이야기와 노래, 연주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

책방 앞을 지나며 인사를 하면 누군지 몰라도 언제나 답인사를 해 주셨는데 지난 금요일은 인사나눴던 사람들이 들러 함께 이야기를 소개하는 자리도 마련했습니다.

집현전 사모님은 호탕하신 성품에 유머도 넘치고,  작은 집현전을 넉넉하게 품어 오신 바탕힘이 있으셨습니다. 노래자랑에서 상도 많이 받았었다는 구성진 할머니의 노래도 멋졌습니다. 엇그제 화수동에 있는 노래교실 다녀 오셨는데 배운 노래를 잊어버렸다고 아쉬워 하시며 .. 이 나이 되면 다 그러니 이해하라 하십니다. ^^

할아버지의 멋진 연주는 언제나 좋지만 숨이 모자라 몇 곡 연주하지 못하셔서 아쉬워 하셨습니다. 그제 일본사람이 들러 말을 걸었는데 일본어를 매끄럽게 구사하시는 할어버지를 보고 감탄하며, 일본에 드르실 기회가 있으면 모시겠다고 했답니다.



이야기 마당 전에 사람들을 기다리며 술떡과 차를 나눠먹고 있다.



배다리에서 가장 오래된, 지금은 가장 작은 책방 <집현전>

보통은 책방이니 서점이니 하는 이름을 지으시는데 '집현전'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우리 세째 딸이 지었어." 1남 4녀를 두신 집현전 어르신은 만화책 5권으로 책장사를 시작하셨다고 했다. 책이 귀했던 시절 집에 있던 만화책 5권을 들고 나와 팔고, 그것으로 다시 책을 사고, 다시 팔고 ..

서점이 호황일때는 그 작은 서점에 점원을 5명이나 두고 일을 하셨다고 한다. 그러다가 따님들이 성장하면서 따님들이 그 점원일을 하고 창영학교 앞에서 할아버지가, 대한서림 근처에서는 따님이, 집현전에서는 할머니가 헌책방을 운영하셨다고 하셨다.

배다리 헌책방 거리가 잘 나가던 시절 앞에 이제는 유림기획사 자리에 있던 국제서림에는 항상 사람들이 긴 줄을 서 있었고, 할머니네 책방에도 열댓명은 줄을 서 있었다고 하셨다. 주로 장사가 잘 되는 참고서를 팔았는데 주변에서 왜 참고서만 파냐며 종종 한 소리를 들었다고 하셨다.

당시에는 소설 책을 파는 서점, 만화책을 파는 서점 등 한 두  가지 성격의 책을 주로 파는 작은 가게들이 지금의 우각로에 즐비했다. 주로 참고서를 파는 서점이 많았다는 아벨사장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60여년 운영해오신 '집현전'은 동인천 '대한서림' 다음으로 이 지역에 생긴 헌책방이라고 하셨다. 작았지만 작은 줄 모르고 운영했다고 하신다. 헌책방이 생기고 사라지고 지금 6개 남은 책방속에 자리잡고 계시지만 기억은 거의 없으셨다. 장사하느라 책방 안에만 있어서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연세가 많아지시니 기억이 짧아져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이 동네에 어떤 책방이 있었는지 동네 모습이 어땠는지 참 궁금하지만 그 역사를 오롯이 지나오신 당신의 이야기가 당신들의 기억 저편으로 이미 스러져 아쉬웠다.


집현전 할머니 한봉인 여사
집현전 할머니 한봉인 여사(85세)는 호탕하신 성정에 유머도 있으시고, 목청이 좋아 노래도 잘 부르신다.


지금 책방은 할아버지 놀이터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별 일이 없는 한 할아버지는 서점을 지키신다. 돈은 되지 않지만 놓을 수가 없다 하신다. 어제는 젊은 처자들이 들러 2만5천원 개시를 했다며 웃으셨다.

할머니께서는 일주일에 한 번 국제서림 할머니와 택시를 불러 화수동 노래교실을 가시고, 배다리 - 문화사우나를 친교삼아, 운동삼아 다니신다고 하셨다.

20년쯤 전에는 인천여고 건물에 수영장이 있어서 그쪽으로 다니셨고, 거기가 없어진 후 광성학교 뒤쪽에 시립체육관 안에 수영장을 다니셔는데 힘들어서 택시를 타고 다니시다가 몇 해 전부터 문화사우나에 다니는데 몇몇이 어울려 지낸다는 말씀이셨다.


"이렇게 작은 책방에서 뭘 하겠다고 .. "하시며 걱정하셨다고 한다.


문화사우나 자리에 성냥공장이 있었다면서요?

"아냐. 문화사우나 옆에 있었지" 하시신다.  문화사우나 옆 지금은 산업도로가 될 뻔 했던 텃밭과 길이 있는 자리가 성냥공장이었다고 하신다. 

문화사우나 자리에 있었던 문화극장 사람들이 집현전에 종종 왔었다고 하신다. '기도'를 했던 사람들이 동네를 휘어잡고 있었는데 '고구마', '갈비', .. 이런 사람들이었다가 말씀하셔서 다들 빵! 터져서 한참을 웃었다. 폭력배들이 꽤 많이 동인천 지역, 극장 주변으로 빌붙어 살았다고 하셨다.


할머님의 유머에 모두 빵 터지심 ^^

"예전에는 책방보다 많았던 게 먹거리집이었어. " 옆에 있던 마을 학예사 장회숙씨의 말씀이다. 하루벌어 하루 먹는 사람들이 많아서 작은 분식점이나 아이스케키집 떡볶이며 .. 먹거리가 많았다고 한다. 정화조 기준이 높아져 더 이상 음식점을 하기 어렵게 되어서 아쉬움이 많은 우리들에게는 딴세상 이야기 같았다.

예전 책방들은 다 창영학교나 그 인근에 많았는데 모두 작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쪽 인근이 저렴한 곳이 많아 작지만 책방이 많았고, 지금의 책방자리들은 동인천역과 가까와서 많이 비쌋다는 이야기도 해 주셨다. 


사람이 없어서 .. 힘들지

얼마 전에 할아버지께서 움직이시다가 책방 문 앞에서 쓰러지셨는데 지나가는 사람이 없어서 도움을 청할 수 없다고 하셨다. 10분인가 넘어서야 한 사람이 지나가길래 불러서 자리에 눕혀놓고 119를 부르셨다며 사람이 너무 안다닌다고 걱정하셨다.

물론 장사가 안되고, 사람들이 적은 건 책을 적게 읽을 뿐 더러, 정보를 얻는 것이 책 밖에 없던 시절에서 인터넷에 키보드 몇 개만 건들이면 수준은 한 참 떨어져도 궁금증은 채울만한 정보들이 넘쳐나는 시절이 되었기 때문이다. 

헌책방에서 책을 고르는 일은 마치 다른 세상을 경험하는 일 같다. 언제까지 이 오래된 세계의 이야기들이 계속될지 궁금해진다.


집현전헌책방 거리 입구모습 _ 집현전은 가장 작고, 가장 오래된 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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