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활용, 궁(宮) 스테이 논란을 접하며
상태바
문화재 활용, 궁(宮) 스테이 논란을 접하며
  • 황은수
  • 승인 2015.11.20 18: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화칼럼] 황은수 / 인천남구청 문화예술과 전문위원
 
한국근대사를 전공한 필자는 2012년 5월부터 남구청에 재직하며, ‘문화재, 지역사, 향토문화’ 등과 관련된 문화행정 업무를 일선에서 담당해왔다. 본지에서는 그 간의 경험과 학습을 토대로 지역사회와 문화동향에 대한 필자의 짧은 소견을 종종 적어본다.
 
최근 문화재청은 궁궐 문화재[문화유산]를 활용한 ‘궁(宮) 스테이’ 사업추진에 대한 논란에 휩싸여 큰 곤욕을 치르고 있다. 창덕궁 낙선재(樂善齋) 권역의 비지정 문화재인 두 전각[석복헌(錫福軒), 수강재(壽康齋)]을 고급 객실로 꾸며 숙박체험을 할 수 있는 고품격 관광자원으로 개방하겠다는 것이다.
 


 사진1. 낙선재 권역의 수강재 전경(출처 : 문화재청)

첫 보도가 나왔을 때, 몇몇 언론사에서는 문화재청에서 언급한 해외의 궁궐 및 고성(古城) 활용사례와 관련 분야 전문가들의 옹호론을 소개하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그러다 돌연 문화재 원형 훼손에 대한 우려, 궁궐 숙박체험의 대상과 비용 문제로 비판 여론이 거세졌다. 특히, 외국 외교사절이나 CEO를 대상으로 하루에 300만원에 달하는 숙박료 등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궁 스테이인가?’가 바로 그것이다. 도처에서 비판이 연일 이어졌으며, 문화재청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국정감사의 도마에까지 올라 질타를 받았다. 결국 문화재청은 무리한 ‘문화재 현상변경을 하는 궁 스테이 사업은 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앞으로 연구용역을 통해 보다 나은 활용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아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문화재청이 실시한 ‘경복궁 야간개방, 창덕궁 달빛기행, 궁궐 전통공연 및 체험 프로그램’ 등은 시민들의 큰 호응을 받아왔다. 아마도 문화재청은 이러한 호응에 힘입어 숙박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궁궐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디서부터가 문제였을까?
 
혹여나 ‘궁궐’을 보며 현대사회의 ‘고급 호텔’을 연상시켰던 것은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문화재청의 이 같은 자본주의적 발상은 위험하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두 장소를 향유하는 사람들은 ‘왕족≒부유층’들로 한정된다. 현재 문화재(문화유산)는 ‘우리 겨레의 삶의 예지와 숨결이 깃들어 있는 소중한 보배이자 인류 문화의 자산’(「문화유산헌장」)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나 보편적으로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궁 스테이’라는 발상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 체험의 문은 궁궐 문화에 관심을 가진 모든 일반 시민들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 또, 숙박의 편의를 핑계로 문화재를 함부로 개조해서는 안 될 일이다. 적어도 사찰이나 고택, 향교 스테이 체험 프로그램을 찾는 사람들은 그 곳에서의 작은 불편 정도는 감수할 문화적 소양은 갖추고 있을 것이며, 되도록 문화재 날 것 그대로를 만나고 싶어 할 테니 말이다.
 
우리 지역에서도 문화재를 활용한 숙박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남구청에서는 문화재청의 「살아 숨 쉬는 향교?서원 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인천향교 전통문화 교감 가족캠프」 프로그램을 작년부터 추진하고 있다. 인천향교를 방문했던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공간은 협소하고 편의시설도 거의 구비되어 있지 않다. 당초 최소한의 현상변경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문화재 원형에 해를 끼치지 않는 ‘동재?서재 도배장판 및 전기판넬 설치, 고직사 화장실 남녀분리’ 정도로 문화재위원회의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도 숙박할 때 약간의 따뜻함 외에 다른 편의는 기대할 수 없었고, 동재?서재 자체가 비좁았기 때문에 아이들만 숙박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사진2. 인천향교 가족캠프_입교식(출처 : 필자)

토요일 오후 1시에 가족들이 입교하여 해설사와 함께 향교를 둘러본다. 서로의 어색함을 덜고 친밀도를 높이기 위해 연극놀이를 즐긴다. 그리고 아이들의 흥미는 다소 떨어지지만, 향교와 선비정신에 대한 이해와 체험의 시간을 갖는다. 이윽고 전통 놀이를 체험하며 미션을 수행해 나가는 추적놀이는 아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체험 중의 하나이다. 저녁 식사 후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는 가화만사성 프로그램, 고즈넉한 향교의 진면목을 즐길 수 있는 달빛 전통예술 공연, 대동놀이를 끝으로 밤 10시쯤 부모들은 아이만 남기고 귀가한다. 동재에는 남자아이들, 서재에는 여자아이들이 숙박을 한다. 다음날 아이들은 아침기상과 함께 명상에 잠겨보고, 식사를 한다. 아침 9시 부모들이 다시 향교에 와서 아이들과 글짓기(그림), 전통문화예술교육, 추억 발표회 프로그램을 즐기고 오후 1시에 함께 퇴교를 하며 가족캠프는 마무리된다.
 
24시간 동안 참가 가족들은 찬 물에 세수와 양치를 해야만 한다. 쉬는 시간 화장실 줄은 늘 길다. 또, 식사는 식당에서 배달된 음식을 불편한 자리에 걸터앉아 먹어야 한다. 높은 계단을 수도 없이 오르락내리락 해야 하고, 곳곳에서 벌레들의 공격을 받아야 한다. 더욱이 첫 시간에 배운 기본예절대로 행동해야만 하고, 걸쳐 입은 쾌자는 낯설고 불편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인천향교 가족캠프는 참가 가족들의 큰 호응을 얻으며 인기 프로그램으로 정착해나가고 있다.
 
문화재청은 “문화재 문턱은 낮게, (활용) 프로그램 품격은 높게”라고 외친다.
따라서 ‘궁 스테이’에서 품격을 높이는 것은 (고급 호텔 같은) 표면적인 것보다는 (정신문화 같은) 내면적인 것에 역점을 두었으면 한다. ‘궁궐’은 조선왕조의 상징적 공간이자 그 왕실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활용사업은 본래의 내재적 가치와 의미를 드러내는 ‘그 시대 궁궐 문화체험’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아가 그 시대와 공간을 거쳐 갔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사진3. 인천향교 가족캠프_명륜당 교육(출처 : 필자)


사진4. 인천향교 가족캠프_대동놀이(출처 : 필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