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아름다움, 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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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아름다움, 섬집
  • 이세기
  • 승인 2015.11.26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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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기의 섬이야기⑥] 이세기 / 시인

▲ 돌담장이 있는 섬집


▲ 무너져 내린 섬집


▲ 돌담장과 함석집

섬에는 섬집이 있다. 섬에 발을 내딛는 순간 돌로 둘러쳐진 섬집 담장에 금방 매료된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돌담장, 오랜 풍파로 이끼가 낀 돌담은 무어라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다. 돌담은 낮은 지붕, 정화수를 떠놓은 뒤란의 장독대와 더불어 섬집 특유의 소박하고 순수한 멋을 자아낸다. 푸르스름한 이끼가 낀 돌담일수록 극치의 아름다움을 더한다. 가장 섬적인 풍경인 것이다.

섬의 돌담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자연스레 섬 생활에 적응한 흔적이다. 섬은 원래 바람이 많다. 우리나라는 계절풍 기후로 겨울에는 북서풍이 불어와 살이 애일 듯 매섭고, 여름에 부는 남동풍은 고온다습하여 습기가 많다. 대륙과 해양이 만나는 동아시아 몬순 기후의 영향이다. 계절에 따라 육지와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내가 살던 섬에는 여름철이면 재냉기바람이 불었다. 재냉기바람은 여름에 부는 남동풍을 따로 일컫는 이름이다. 이 바람이 불면 고온다습한 열기가 잠시나마 시원한 바람으로 바뀐다. 부채가 필요 없다. 대청마루에 앉아 있으면 온몸이 시원하다. 하지만 한겨울 북서풍은 칼바람으로 뼛속까지 시리다. 여름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방안에까지 모래바람이 불어온다. 여기에 매년 들이닥치는 태풍은 섬사람들을 옴짝달싹도 못하게 한다. 그러니 바람 탓에 자연 담장을 높이 쌓을 수밖에 없다. 재료는 주로 돌이다. 섬은 돌밭이 많다보니 밭을 일군 돌로 담장을 쌓았다.

고로(古老)들 말씀에 의하면 섬집의 원형은 돌움막집이라고 한다. 돌 말고는 마땅히 집을 지을 만한 건축자재가 없었고, 바람이 많이 불어와 돌담을 쌓아 집을 지었다. 돌움막집은 대강 이렇다. 땅바닥을 파고 원형이나 사각모양으로 돌담을 쌓은 다음 흙으로 사방 막음을 했다. 그런 후 사방 돌담에 소나무나 참나무로 대들보와 서까래를 촘촘히 얹어 그 위에 띠나 이엉, 벼를 올려놓는 방식이다. 농지가 많지 않다보니 부족한 볏짚은 인근 섬에 가서 구해 배로 싣고 와 지붕을 올렸다. 대문은 주로 섬에서 흔한 소사나무와 참싸리 가지를 엮어 사용했다. 하지만 이 역시 사라진지 오래다.

덕적군도의 집들은 대개 남향으로 난 ㄱ자 집이다. 내가 살던 섬집 역시 마찬가지이었는데, 기억을 떠올리면 뒤주가 있는 대청마루와 좌우에는 안방과 건넌방이 있고, 안방과 바깥방 사이에 부엌이 있었다. 대청마루와 붙어있는 건넌방은 남향으로 난간마루가 따로 있어서 사랑방 구실도 했다. 바깥방 역시 미닫이문에 쪽마루가 있었다.

안방은 부엌과 연결되어 있고, 건넌방과 바깥방은 ‘고래’라 하여 각각 아궁이를 두었다. 부엌은 주로 널빤지로 문을 하고 부뚜막에 얹어 놓은 쇠솥은 물을 끊이는 데 사용했다. 방고래는 두 개로 물을 데우고, 밥과 국을 끓이는 용도로 사용했다. 부엌 부뚜막 쪽에는 안방으로 통하는 작은 문이 하나 있어 밥을 먹을 때 이 문을 통해서 밥상이 들어가곤 했다. 요즘 같은 겨울 초입이면 부뚜막 쇠솥에 생굴이 고명처럼 들어간 시래기된장국을 설설 끓이곤 했다. 부엌은 굴시래기된장국에서 내뿜는 김으로 자욱했다.

건넌방과 바깥방은 주로 아이들이 살았고, 날이 추우면 손님은 주로 사랑방이라 하여 건넌방에서 맞았다. 사랑방 아궁이는 다른 아궁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컸다. 건넌방 윗목에는 겨울을 나기 위해 고구마를 보관하는 광이 따로 있었다. 고구마는 날이 추워 얼면 죄다 썩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종자를 보관하기 위해서라도 온기가 있는 방에 보관했다. 대청에는 뒤란으로 난 문이 있고, 안방에는 동향으로 난 쪽문이 있어 아침에 떠오르는 햇살이 방안에 가득 들게 했다. 뒤란의 굴뚝으로 새우젓독을 많이 사용했다. 덕적군도는 새우의 황금어장이라 새우가 많이 잡혀서 집집마다 장독대에는 모양이 통나무처럼 길쭉한 새우젓독이 없는 집이 없었다. 그런 탓에 새우젓 독항아리로 굴뚝을 대신했다. 독항아리 굴뚝에서 올라가는 연기는 땅과 하늘을 잇는 흰 무명실 같았다.

한번은 개보수를 위해 섬집의 천장과 벽면을 뜯은 일이 있었다. 벽체는 대나무나 수수깡을 띠로 엮어 벽을 만든 후에 황토 흙으로 마감했다. 천장은 서까래가 노출된 곳도 있지만, 대나무로 사방으로 얼기설기 틀을 만든 후에 도배를 한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는 웃풍을 막기 위해 지붕을 낮춘 경우이다.

돌집이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곳으로는 백아도가 거의 유일하다. 어르끔 쪽에 대여섯 채가 남아있는데 전형적인 돌담에 ㄱ자 집으로 지붕은 ‘도당집’이라하여 함석지붕을 올렸고,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좌우로 부엌과 건넌방, 바깥방이 있다.

간혹 ㄷ자 섬집도 있다. 대개는 기와집으로 대대로 세거한 집안의 경우가 많다. 이 집들은 고려말에서 조선초에 두 임금을 모시지 않겠다고 덕적군도로 들어온 유생 집안이거나 왜란이나 호란을 피해 들어온 집안들이다. ㄷ자 집은 북풍을 막기 위한 가옥구조다. 이들 집은 마당에 우물이 있는 경우가 많다. 섬에서 우물이 있는 집은 흔하지 않다. 깊은 우물을 파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먹는 물을 독점하기도 어려운 것이 섬이다. 그만큼 물이 귀한 섬에 우물이 있다는 것은 집터가 오래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머금은 기와집 지붕인 경우에는 무게에 짓눌려 세월의 풍화를 견디지 못해 함석지붕으로 바뀐 곳이 많다. 이제는 겨우 서까래와 추녀에만 멋스러운 한옥의 풍치가 남아 있을 뿐이다. 요즘에는 획일적인 형강판 개량지붕으로 교체되는 바람에 그나마 멋스럽게 남아있던 섬 고유의 함석지붕이 사라지고 있다.

섬집만큼 소박한 삶을 말해주는 것도 없다. 무엇보다 집은 심리적인 원형공간을 제공해 준다. 사랑방에서 아이를 낳고, 대청에서는 손님을 접대한다. 안방은 어른들의 공간이라 아이들이 쉬 들어가지 않았다. 방안은 이불을 올려놓고 옷을 넣는 반닫이와 시렁 이외에는 장식물이 거의 없다. 여백이 많은 단출한 섬집 방 모습을 하고 있다.

섬집에서 부엌은 사색의 공간이다. 갯가에서 곤한 일을 마치고 돌아 온 느지막한 애저녁, 어둠이 깔린 부뚜막에서 군불을 지피는 모습은 성스럽기까지 하다. 군불을 지피면 식은 부뚜막에 온기가 돌고, 얼굴은 군불 빛으로 환하게 물든다. 사방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 그을음을 새까맣게 뒤집어 쓴 부뚜막과 어스름한 부엌은 신성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하루 일과가 고요하게 타오르며 아궁이에 내려앉는다.

저녁이 오면 어둠 속에 종이 창호에서 배어나오는 은은한 불빛은 아늑하고 정갈하기 그지없다. 불빛은 여름엔 서늘하고 겨울엔 따뜻하다. 방안은 환하고 밖에는 칠흑의 어둠이 깔리면 마음은 차분히 가라앉는다. 문틈으로 들어오는 서늘한 기운이 절로 정신을 세우게 한다.

집이 사색공간이 되는 것은 섬 특유의 공간과 지형 때문이다. 훤하게 터진 바다와 얕은 안산에 주산이 둘러쳐진 배후를 가진 햇빛이 좋은 곳에 마을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나는 종종 섬집을 떠올릴 때마다 모든 게 인연으로 관계 맺어진 인드라망이 생각나곤 한다.

오늘날 집의 온기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같은 평수에 같은 구조에 같은 평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신세계와 통한다. 삶의 깊은 심층이 사라진 것도 아파트문화와 관련이 깊다. 섬집이야 천상 땅집 문화일 수밖에 없다.
오래된 것이 새로움을 줄 때가 있다. 섬집이 그러하다. 아쉽지만 지금이라도 섬집을 보존하는 것이 섬문화를 위해서도 좋다. 섬 생활문화가 고스란히 배어 있는 섬집이 한두 채는 남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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