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답지 않은 겨울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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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답지 않은 겨울을 보내며
  • 박병상
  • 승인 2015.12.24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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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컬럼] 박병상 / 인천 도시생태ㆍ환경연구소 소장
속단하기 이르지만, 이번 겨울은 눈을 거의 보기 어렵게 한다. 내려도 금방 녹는데, 내내 그럴까? 바닥이 편평한 구두로 걷다 미끄러울까 걱정했는데, 아직 탈이 없다. 찬바람이 없으니 걷기 부담스럽지 않아 좋지만, 겨울철 충분한 휴식을 가져야 할 생태계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내년 봄에 나무들은 꽃눈과 잎눈의 발아 시기를 지킬 수 있을까? 산새들의 산란기가 뒤죽박죽되는 건 아닐지.

지난 가을 날씨도 이상했다. 애국가 3절처럼 늘 청명하던 가을에 비가 잦자 갈무리하고 잘 말려야 했던 과일과 곡식들이 썩어갔다. 곶감이 그랬고 들깨가 그랬다는데, 이번 가을에 내린 비는 인도양에서 발생한 수증기 때문이라고 기상 관계자는 전했다. 무슨 조화가 있기에 인도양의 수증기가 한반도까지 날아온 걸까? 엘니뇨? 해외의 연구자료를 내민 전문가는 그렇게 분석했다. 우리 평야의 곡물과 과일, 그리고 생태계는 엘니뇨에 적응하지 못하는데, 이번 엘니뇨의 원인을 지구온난화로 풀이하는 전문가도 있다.

숱한 기상이변을 일으키는 지구온난화는 작년 가을부터 이 나라의 강수량을 부쩍 줄인 원인은 아닐까? 수돗물 공급을 걱정하게 하던 올 여름의 가뭄이 가을철 잦은 비로 어느 정도 해갈되었다지만 상수원의 물은 예년보다 훨씬 부족하다던데, 눈보다 비가 많은 올 겨울의 강수량도 충분해보이지 않는다. 내년 농사는 순조로울 수 있을까? 엘니뇨 뒤를 잇는 라니냐는 또 어떤 기상이변을 안기게 할까? 올해 우리나라에 영향을 준 기상이변이 예외적인 현상일까? 이러다 일상화되는 건 아닐지, 걱정이 인다.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따던 해, 캐나다 밴쿠버는 눈이 펑펑 내릴 계절에 비가 쏟아져 일부 스키종목의 차질을 우려했다. 밴쿠버 근처의 시에라네바다 산맥에 펑펑 내린 눈이 두텁게 얼어붙으면 미국의 곡창지대 캘리포니아에 사시사철 젖과 꿀이 흘렀는데, 오랜 세월 그런 날씨 변화에 적응되었기에 요즘 포도와 아몬드가 지천일 수 있는데, 겨울에 비가 내리니 그 지역 관정은 깊어지기만 한다. 요사이 강설량도 전 같지 않다는데, 올겨울 알프스에 비가 내린다고 소식통은 전한다. 그 여파는 스키장의 불황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지난 12일, 프랑스 파리 인근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195개 국가는‘파리 협정’을 어렵게 합의했다. 협정 테이블의 시한을 하루 연장하면서 산업화 이전보다 적어도 섭씨 2도 이상 기후가 상승하지 않도록 195개 당사국 모두 이행계획을 만들어 행동하자는 결의에 도달했지만, 실현 가능성 여부는 장담할 수 없다. 섭씨 2도 이하도 지나치게 느슨하다는 NGO의 지적에 화답이라도 하듯 1.5도 이하를 지향하겠다고 선언했지만, ‘파리 협정’에 구속력이 없기 때문이다. 지키지 않는 국가에 어떤 제재도 가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개발도상국임을 여전히 강조하며 온실가스 감축 의무 대상국에서 제외해달라 읍소해왔던 우리나라는 이번 협정 이후 예외일 수 없게 되었다. 주로 화석연료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그간 막대하게 배출했기에 잘 살게 된 국가는 말할 것도 없고, 최근 다량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중국과 인도 역시 예외가 없다고 ‘파리 협정’은 못 박았다. 전 세계의 동참이 있어야 기후변화를 예방할 수 있다는 다급함인데, 우리나라도 상응하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 한데 어떤가? 협정을 논의하는 현장에 나와 우리 대통령이 발표한 이행계획은 절박함은 물론 현실감도 없다는 국제적 비난과 조롱을 받아야 했다.

‘파리 협정’은 2023년부터 5년마다 협정에 서명한 당사국이 탄소 감축 약속을 얼마나 이행하고 있는지 검토하기로 돼 있다. 그나마 미약한 구속력인 셈인데, 영국의 저명한 환경운동가 조지 몬비오는 이번 협정을 “희망과 재앙”의 이중주라는 식으로 표현했다. 성공한다면 지구는 망가지지 않을 거라는 희망으로 이어지겠지만 그런 희망을 이루기 위해 감수해야 할 행동은 재앙처럼 무척 힘겨울 거라는 의미였다. 절박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솔선행동을 촉구한 것인데, 현재 안락하게 사는 국가, 그런 국가처럼 살려고 막대한 화석연료를 태우기 시작한 국가의 시민들은 행동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지구의 평균 기온을 산업화 이전보다 1.5에서 2도 이하로 정도 낮출 수 있다면 거듭되는 해수면 상승과 기상이변으로 애꿎은 사람부터 삶터를 잃고 생태계가 재앙에 휩쓸리는 일은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을 것이니 희망이지만, 그런 희망으로 이어지기 위해 우리는 다부지게 화석연료 사용을 억제할 수 있는 이행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그런 움직임이 없다. 겨울이 겨울답지 않아서 그럴까? 우리도 자식들의 삶을 걱정해야 한다. 곧 새해, 병신년(丙申年)에 접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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