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88’이 되새김한 골목길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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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88’이 되새김한 골목길의 추억
  • 이혜정
  • 승인 2016.02.23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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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칼럼] 이혜정 / 청소년창의문화공동체 '미루' 대표


- 신조어 ‘휴거’ 진원지는 어디일까 -

 

응팔(드라마 '응답하라 1988')은 끝나고 나서도 광고로 부활하고 있다. 시청률 20%의 힘을 광고로 이어가고 있다. 응팔에 대한 이야기를 청소년들을 통해 처음 들었다.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이 응팔의 본방을 사수하고 있었다. 청소년들이 감각은 대부분 정확하다. 몇 년 전 강사를 초대하고 싶은데 누구를 초대하고 싶냐는 질문에 아이들은 ‘미생’이라는 웹툰을 알려주고 윤태호 작가를 부르자고 했다. 청소년들은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는 듯하지만 그 속에서도 좋은 것을 알아보는 직관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왜 응팔이 좋은 지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하나 하나의 캐릭터가 살아있단다. 쌍문동의 다섯 가족. 가족의 어딘가가 우리 집과 닮아있단다. 그 집의 아이들의 나와 언니, 오빠, 동생의 모습과 닮아있단다. 서울대 수학교육과 2학년 재학 중인 골목에서 제일 잘 나가는 보라. 보라는 사실 부모의 기대와 달리 운동권 학생이다. 그런 언니에 눌리고 동생에게 치이는 설움 많은 둘째 딸 덕선. 덕선의 별명은 특공대다. ‘특별히 공부 못하는 대가리’의 줄임말, ‘특공대’. 금수저는 아니지만 쌍문동 골목의 엄친아 선우. 대입학력고사 6수생, 성균네 큰 아들 정봉. 그리고 축구에 죽고 사는 철딱서니 없는 개정팔 정환. 타고난 춤꾼 쌍문동 박남정 동룡이. 대한민국 국보급 바둑기사 택.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그대로 그 아이들의 모습이고 친구들의 모습이다. 거의 27년 전의 이야기지만 아이들은 서열화의 진통 속에서도 그런 캐릭터들로 살아가고 있다. 엄친아와 금수저만 판치는 드라마 판 사이에서 우리와 비슷한 살아있는 캐릭터가 그대로 나의 빙의처럼 나의 속살을 보여주고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들을 거침없이 또는 나직하게 이야기하고 있으니 어찌 친근하지 않으랴.

 

그러나 우리의 중딩을 응팔 앞으로 정렬시킨 것은 사실 그들의 엄마, 아빠였다. 응팔의 그 주인공들이 바로 지금의 우리 엄마, 아빠들. 그렇게 박남정을 따라하고 소방차를 따라 춤을 추고 하이틴 로맨스에 웃고 울고 했던 그들이었던 것이다. 한 아이는 심지어 우리 가족이 ‘응팔’로 일치단결하고 있다고 했다. 텔레비전 앞에 앉으면 눈매가 달라지던 엄마가 아이들을 드라마 앞으로 불러들이고 '그 땐 그랬었지' 로 이야기를 이어나가며 '가족'다운 모습이 연출되었다고 한다. 드라마에서는 지금의 40대에서 50대가 자라났던 골목길이 있다. 그 세대는 그 골목길에서 엄마가 외쳐대는 '밥 먹어라'하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놀았다. 그 골목에서 동네 어른들의 손길을 탔고 옆집에서 혹은 앞집에서 뒷집에서 건네주는 반찬과 군것질 거리를 나눴다. 쌍문동의 그 아이들처럼 골목길과 동네에서 함께 자랐다. 그리고 부모의 부의 정도로 서로를 가르지 않아도 되었다. 올림픽 복권으로 갑자기 졸부가 된 정환이네와 빚보증을 잘못 서 반지하 셋방살이 신세가 된 덕선이네가 스스럼없이 밥상을 마주하는 시절이었다. 오히려 조금 나은 처지여서 용돈을 보태고, 병원비를 보탤 수 있음을 기꺼워했다.

 

드라마 응팔 앞 모여 앉은 이 시대의 부모들은 응팔을 통해 자신의 유년과 청춘만을 만나는 것만이 아니다. 응팔을 통해 자신의 부모세대의 고뇌를 다시 되뇌이고 지금 그들이 부모로서의 겪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고뇌와 어려움을 조우하고 있는 것이다. 극중에서 둘째의 설움을 내뱉는 덕선에게 아빠 동일은 ' 잘 몰라서 그래. 아빠도 태어날 때부터 아빠가 아니잖아'라고 고백한다. 그 시대의 부모도, 그 시대의 자식에서 부모로 성장한 현 시대의 부모도 처음부터 부모였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미안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 시대 부모들의 초상은 어떠한가?

 

요즘 ‘휴거’라는 말이 다시 유행이라고 한다. 휴거는 그리스도가 세상에 다시 올 때 기독교인들이 공중에 함께 올라가 그분을 만나는 것을 가리키는 종말론의 하나다. 그런데 이 말이 요즘 유치원생과 초등생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그 말이 뜻이 기막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지은 아파트 브랜드인 ‘휴000’와 ‘거지’를 합성한 말로 ‘휴000 거지’를 뜻한다고 한다. 그리고 ‘휴거’라 확인되는 순간 따돌림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에 있었던 모임에서도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아파트 단지 건너편에 다세대주택과 빌라들이 혼재한 주택단지가 있는 서울시의 한 동네에 살고 있는데 학부모 모임에서 아파트 단지와 주택단지 아이들의 반 편성을 따로 해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동 단위별로 반 편성을 해달라는 요구도 있었다고 한다. 아파트의 동은 그대로 평형 규모를 반영하는 잣대가 됨을 모두 알고 있었던 터일 것이다. 믿을 수 없다고 하니 자기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했다.

 

‘휴거’라는 유행어 진원지는 과연 어디일까? 아이들은 가르치지 않아도 부모로부터 배운다. 골목 문화와 공동체의 추억으로 마음이 뜨거워지고 있는 순간에도 이 시대의 부모들은 자식들을 경쟁으로 내몰고 부를 잣대로 세상을 가르고 경제적 부만이 최고의 가치임을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돌아보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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