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理性)'에 대한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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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理性)'에 대한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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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7.30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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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나서>

이 책은 우선 우리가 갖는 '이성(理性)'에 대한 비판이다.

우리는 지금 근대의 세상(현대는 그 근대의 연장선상이다)에 살고 있다.

근대와 전근대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이 책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전근대는 신의 존재 하에 인간은 신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하는 것이 올바른 삶이라고 이해하였다. 모든 물은 어떤 목적이 있고 그에 따라 존재하여야 한다고 하는 것이 고대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이었는데 거기에 신의 존재를 대입하게 되면 인간 삶의 목적은 신의 뜻을 충실하게 따르는 것이 바로 올바른 삶이라고 알아왔고 그것이 바로 세계를 바라보고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이었다.

이것을 목적론적 세계관이라고 전문적인 말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르네상스 이후, 특히 갈릴레오와 데카르트를 필두로 하여 신의 뜻에 따라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고 살아야 한다는 관점이 나타나게 되었다.

대표적인 철학자가 바로 데카르트이고 이 사상의 핵심은 내 안의 이성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사상은 당시 발전하고 있었던 자연과학적 지식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갈릴레오의 천문학과 특히 하비의 '심장운동에 대하여'의 혈액의 흐름에 대한 지식을 통해 자연과학적으로 입증이 되지 않는 것은 올바른 것이 아니라는 생각과 모든 사물의 작동원리를 이해하면 모든 사물 즉, 자연을 소유하고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을 기계론적 세계관이라고 전문적인 말로 이야기한다.

이것이 바로 근대의 세계관이고 관점이다. 이제 인간의 이성은 자연을 지배하고 소유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었고 이러한 능력은 자연과학적 지식으로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전근대의 목적론적 세계관이 더 나은 것이냐 또는 근대의 기계론적 세계관이 더 나으냐는 가치판단은 할 수가 없다. 전자에서 신의 뜻을 배제하면 삶의 목적에 대한 질문은 나름대로 의미있는 질문이며 점검해야 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후자도 신의 뜻에 억눌려진 인간자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만든 위대한 사상이기에 가치가 있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인간이성으로 모든것이 다 해석되고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지식을 연마해야 하고 그 지식연마에서 뒤떨어지는 사람은 삶의 행복에서 멀어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에까지 이르게 된다면 그 지식은 과연 인간에게 어떠한 의미를 갖게 되는가?

인간은 그렇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미래를 준비하고 지식의 유무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당연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살아 있는 그 자체로서 기쁨과 즐거움을 느껴야 한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현대인의 생활은 평생 돌을 밀어야 하는 시지프스의 신화에 나오는 것처럼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럼 그 원인이 뭘까?

이 책의 저자는 그것이 바로 이성이라고 한다. 지식이라고 한다.

그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에라스므스의 [우신예찬]을 빌려서 이야기한다.

에라스므스는 [우신예찬]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어리석음은 '생명의 씨앗이자 샘'이다. 어리석음 없이는 남녀가 몸을 섞을 수 없고, 해산의 고통을 치른 뒤 또 다시 아이를 가질 수 없다. 사람은 어리석고 미칠수록 즐겁고 어리석을수록 타인과 잘 어울린다. 백성이 지배자를, 상전이 하인을, 마님이 하녀를, 선생이 학생을, 아내가 남편을, 지주가 소작인을 견뎌내는 이유 역시 어리석음이다. 정치엔 어리석음이 필요하다. 바보같은 수작과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써야 '민중이라는 거대한 짐승'을 이끌어 갈 수 있다. 반면, 지혜로운 사람은 어떠한가. 지혜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리고 젊은 시절을 학문 연구에 써 버리고, 가장 화려한 시절을 밤샘과 근심 걱정, 끝없는 노고로 망가뜨려 얼굴은 창백우울하고, 몸은 수척병약한 사람일 것이다. 즉, 좋을 것 하나 없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어리석음이 지혜로움보다 세상을 즐겁고, 살만한 곳으로 만들고 있다."

즉, 당시 15세기 중세종교의 허위와 위선으로 인해서 백성들이 고통받는 것을 풍자적으로 표현한 것이 에라스므스의 [우신예찬]인데, 이 책의 저자 김영종은 현대의 '이성'과 '지식'이라는 허위로 인해 고통받는 현실에서 벗어나라는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해 이 책 [헤이, 바보예찬]을 만든 것이다.

혹자는 "그건 서양 이야기고~", 동양은 다르다고 이야기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서구의 근대국민국가시스템이지 조선을 계승한 나라도 아니며, 이 세계는 서구의 근대시스템으로 굴러간다는 사실을 이해하여야 한다.

동양적 사고, 동양적 철학이 있더라도 현재 우리는 서구가 만들어낸 시스템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기에 이성에 대한 비판은 지금의 현실에 대한 정확한 비판이 된다.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려면 어떻해야 하는가?

이 질문과 그 답을 얻고자 한다면 일독을 권한다.

현재 저자는 이 책의 내용을 매우 상세하게 보충하는 글을 인터넷사이트 '프레시안'에서 [김영종의 잡설]로 연재중이니 함께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헤이, 바보예찬/김영종/ 동아시아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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