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포동과 동인천을 떠올리도록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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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포동과 동인천을 떠올리도록 이끈다"
  • 최종규
  • 승인 2010.08.1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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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던 인천] ③ 최진실 님 '씨(SI)' 도록


  인천 신포동 한켠은 ‘문화의 거리’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지난 1990년대 첫무렵에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문화의 거리’라는 이름이 이무렵 서울에서 한창 떠돌고 있었고, 인천에서도 시내 한복판 어딘가에다 이런 이름을 갖다 붙여야 비로소 ‘직할시’다운 무언가를 뽐낼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 아니랴 싶습니다.

 서울에서 ‘문화의 거리’라는 이름이 붙은 곳을 살피면 하나같이 ‘옷가게 잔뜩 늘어선 길거리’였습니다. 또는 밥집과 술집이 줄줄이 잇닿은 곳을 일컬었습니다. 밥을 밖에서 사먹고 옷을 신나게 사입으며 술을 마음껏 사마셔야 비로소 ‘문화’라 할 수 있지는 않을 텐데, 이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은 ‘문화의 거리’라는 이름을 언제나 먹고 마시고 쓰고 버리는 곳에 붙여 버릇합니다.

 인천에서 ‘문화의 거리’라는 이름이 붙고 큼직한 옷가게가 저녁 늦게까지 훤하게 불을 밝히며 늘어서 있는 곳은 “신포동 문화의 거리”라고 하지만, 정작 이곳 행정구역은 ‘내동’입니다. 신포동이 아닌 내동입니다. 이 ‘문화의 거리’ 바로 옆에는 신포시장이 있습니다. 신포동에 있어 신포시장입니다. 그런데 신포시장 길 두 갈래 가운데 위쪽 길 위쪽 가게 또한 행정구역이 ‘내동’입니다. 이름은 신포시장이지만, 이 시장길 두 갈래 가운데 한쪽은 신포동이 아닌 내동입니다.
 

'신포주점'이 보이는 골목 안쪽 시장길은 왼편과 오른편 모두 신포동이고, 이 위쪽은 오른편은 '내동'입니다.

 제 이름을 따지고 본다면, 옷가게가 줄지어 늘어선 곳은 “인천 신포동 문화의 거리”가 아닌 “인천 내동 문화의 거리”라 해야 올바릅니다. 게다가 신포시장에서 몇 해 앞서부터 널리 알려지며 불티나게 팔리는 닭강정 집 또한 한 곳은 ‘내동’에 있고, 다른 한 곳은 ‘신포동’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부터 이런 동이름을 제대로 안 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인천에서 태어나 사는 동안 이런 동이름을 옳게 가누어 본 적이란 따로 없습니다. 으레 여기는 무슨 동이겠거니 생각할 뿐, 옳고 바르게 동이름을 나누어 살피지 않았습니다. 송림동이면 1동부터 6동까지 있고, 송현동이면 1동부터 3동까지 있으나, 1동부터 6동까지를, 또 1동부터 3동까지를 어디에서 어디까지인가를 알아보려 하지 않았어요. 제 어린 나날을 보낸 신흥동3가만 해도 그렇습니다. 어디까지가 신흥동이고, 신흥동 1가와 2가와 3가는 어디에서 갈리는가를 헤아린 적이 없습니다. 이웃한 용현동과 숭의동은 몇 동까지 나뉘어 있는가를 돌아보지 않았어요.

 고등학교를 다니던 1991∼1993년에, 동무들은 예쁘거나 잘생긴 연예인들 사진을 ‘인현동(동인천) 대동학생백화점’에서 한 장에 50원을 주고 사서 100원에 코팅을 해서 쓰곤 했습니다. 책받침은 앞뒤로 하니까, 사진을 두 장을 사고 코팅을 하면 모두 200원이 듭니다. 이무렵 중고등학생 버스표는 100원(1990년)이었습니다. 연예인 최진실 님이 한창 사랑을 받으며 여러 잡지에 기사가 실리고 화보(브로마이드)가 실려서, 오늘날까지 우리 집 한 구석에 붙여놓고 있는 《하이틴》 잡지 부록으로 딸렸던 최진실 님 화보 한 장을 처음 얻은 때인 1992년에는 중고등학생 버스표가 150원이었습니다. 이럴 무렵에 연예인 사진을 한두 장 사는 일이란 버스 한 번 못 타는 일이요, 책받침을 코팅하겠다면 하루치 버스표를 날리는 셈입니다.

 고등학교 2학년이던 여름날, 만석동에 사는 동무네에 놀러 가는 길에 동무한테서 “너 최진실 좋아하지? 그러면 좋은 선물 얻어다 줄까?” 하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응? 뭔데?” “이거 노리는 애들이 많을 텐데, 너한테만 줄게.” “뭐야?” “그냥 날 따라와 봐.”
 

동무네 누님이 하던 '신포동 문화의 거리' 옷집에서 얻은 최진실 님 도록
동무네 누님 옷집에서 1992년 여름과 가을과 1993년 봄 것까지 도록을 얻었습니다. 도록 들여다보기.

 동무는 저를 데리고 이무렵 갓 세워진 ‘신포동(이 아닌 내동) 문화의 거리’ 옷가게 가운데 한 곳으로 갑니다. 동무랑 아는 누님이 하는 옷가게라는 그곳은 ‘신원’이라고 하는 곳에서 내는 옷을 파는 가게입니다. ‘신원’이라고 하는 회사에서는 ‘씨(SI)’라는 이름을 붙인 옷을 내놓고 있었는데, 이때에 이 옷을 알리는 모델은 바로 최진실 님입니다.

 동무는 누님한테 말해서 ‘한철이 지난 도록’을 건네받습니다. 옷가게에는 제철에 맞게 도록을 놓을 뿐, 철이 지난 도록은 모두 치워 버린다고 합니다. 철지난 옷을 팔 수 없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다른 옷가게들도 한철이 지날 때에 당신 가게에 갖고 있던 도록을 가게 앞에 내놓습니다. 헌 종이 모으는 분들이 가져갈 수 있도록.

 이리하여 나중에는 한철이 지날 무렵에 부러 신포동(이 아닌 내동) 문화의 거리를 찾아와서 도록을 가방 가득 챙깁니다. 저는 최진실 님 도록만 모으면 되었으나, 채시라 도록이라든지 김혜수 도록이라든지 하희라 도록이라든지 다른 이들 도록은 동무들한테 나누어 주려고 더 챙겨 놓습니다.

 도록은 군데군데 오려져 있습니다. 군데군데 오려진 까닭은 매장에서 사진 몇 장을 오려 매장 벽이나 다른 데에 붙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몇 군데가 오려지든 말든 인현동 대동학생백화점에서 50원을 주고 사는 사진하고 견줄 수 없이 마음에 드는 사진입니다. 문구사에서 파는 연예인 사진은 똑같은 물건을 수없이 파니까 똑같은 사진을 너도 나도 갖고 있다면, 옷가게 도록은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사진일 뿐 아니라, 한철이 지나면 금세 잊혀지며 찾아보기 어려운 사진이니까요.
 

잡지 <하이틴>에 딸렸던 브로마이드.

 최진실 님은 이제 흙으로 돌아갔고, 최진실 님 1992년 씨 도록을 선물로 주던 누님이 꾸리던 가게가 오늘까지 이어오고 있는지는 잘 모릅니다. 이때에 최진실 님 사진을 사던 대동학생백화점은 여태까지 잘 있으나, 이제는 연예인 사진을 파는 아저씨는 더는 이곳에 있지 않습니다. 그때에 연예인 사진을 파는 아저씨 옆으로는 우표를 파는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우표 파는 아저씨 옆으로는 프라모델을 파는 아저씨가 있었고, 이 아저씨 맞은편에는 노래테이프를 파는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이 아저씨들은 이제 이곳 대동학생백화점을 떠나 어디론가 갔습니다. 어쩌면 다른 일거리를 찾았을는지 모릅니다.

 대동학생백화점을 찾아갈 때에는 으레 오른편 축현국민학교 붉은벽돌 담길을 따라 걸어올라 갔습니다. 인천 인현동(동인천) 골목동네 둘레에는 축현국민학교를 비롯해서 인천여고 인일여고 인성여고(초중고·유치원 모두) 인천여상 제물포고 박문국(유치원) 신흥국 송도중 같은 학교가 있었고, 조금 더 뻗으면 신광국 광성고(중고) 중앙여상 영화여상(초) 창영초 송림초 송현초 대건고 동산고(중고) 들이 있었습니다. 이 가운데 축현국과 박문국과 인천여고와 대건고는 다른 동네로 학교를 옮깁니다. 이러면서 인현동을 둘러싼 동인천 골목동네는 한껏 풀이 꺾입니다. 신포동은 닭강정 골목이거나 문화의 거리가 아니었는데 이런 모습으로 바뀌고, 축현국민학교 벽돌담길은 우람한 시멘트 건물로 바뀌면서 삼치골목 이름이 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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