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선, 인천시대를 열다'로 본 최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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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선, 인천시대를 열다'로 본 최기선
  • 김규원 선임기자
  • 승인 2016.07.10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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市政 이끌면서 고비마다 겪었던 스토리 담담하게 엮어

 

오늘날 인천의 모습은 언제부터 만들어졌을까. 송도 신항과 공항, 경제자유구역, 도시철도, 인천대공원, 문학산 터널, 초지대교 등 인천이 발전했다고 느껴지는 형상(形象)들은 그리 오래되지 않다. 인천직할시에서 1995년 광역시로 전환되면서 그 모습이 급격히 바뀌었다. 6개 자치구에서 계양구, 연수구 등 2개 구가 늘었고, 인구 200만 시대를 열었다. 옹진군, 강화군, 김포 검단 등이 편입되면서 335.4㎢에서 958㎢로 땅이 3배가량 늘었다. 영토가 늘어나면서 다양한 시설도 들어섰다. 광역시 승격 전후를 인천의 급격한 팽창시기로 불린다.


1993년부터 관선, 민선 최장수 시장으로

이 때 인천시정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 최기선 시장이다. 10년 가까이 최장수 시장으로 있으면서 오늘날 인천의 모습을 설계하고, 진행시킨 인물이다.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시절 정치인으로는 드물게 인천시장으로 깜짝 발탁된 그는 북구청 세무비리로 자진 사퇴했다.
지방선거에서 시장으로 연거푸 당선되면서 2002년 6월 30일까지 시정을 맡았다. 팽창기 인천, 격동의 시기에 시정을 이끌었던 그가 얼만 전 책을 냈다. ‘최기선, 인천시대를 열다’였다. ‘최기선 시장’의 고백을 고대했던 많은 시민들이 반겼다.

워낙 많은 일들이 있었던 시기에 한 권의 책으로 담기에는 공간이 부족하다는 느낌이었지만 본인이 펼쳤던 시정을 비교적 진솔하게 담았다. 그러면서 설계자의 의도와 맞지 않게 전개되는 문제점에 대해서는 격하게 지적하기도 했다.

1993년 3월, 김영삼 대통령은 인천시장에 최기선을 임명한다. 최 시장이 처음으로 맞닥뜨린 것은 3대 건의사항이었다. 송도신도시 추진, 인천 광역화, 선인학원 시립화 등 3건의 현안을 풀어달라는 것이었다. 대통령 최측근, ‘힘 있는 실세시장’으로 불리던 최 시장이라고는 하지만 하나같이 만만치 않았다.


트라이포트 인천을 동북아 허브로 설계


수도권 과밀억제 정책의 명분에 밀렸던 송도신도시 추진을 위해 공항(air-port)과 항만(sea-port), 텔레포트(tele-port) 등 트라이포트를 설계했다.

단순히 아파트를 지어 파는 도시개발이 아니라 국제금융, 국제무역, 정보통신 등 첨단기능을 담당할 국제정보업무센터, 즉 텔레포트로 개발해 인천을 동북아시아의 중심도시로 키우겠다는 프로젝트를 중앙정부에 설파했다. 송도신도시 조성을 위한 논리를 개발한 것이다. 관련 부처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히자 청와대로 달려가 김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내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상세히 기록했다. 기공식에서도 대통령 참석이 오락가락할 정도로 심했던 중앙 부처의 반발을 무마시켰던 일화도 소개했다. 그러면서 최 시장은 “(송도신도시 조성이)내 인생에서 가장 벅찬 시간으로 간직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화와 옹진군, 김포 검단을 편입하는 과정에서 당시 주무장관이었던 최형우 내무부장관과 긴박하게 돌아갔던 상황도 자세하게 기술했다.


북구청 세무비리로 자진 사퇴


송도신도시 조성 기공식 일주일 만에 퇴임하게 된 배경도 있다. 북구청 세무비리가 오래 전부터 내려왔던 사안이어서 법적, 행정적으로 책임질 일이 아니었지만 정치적,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퇴임했다고 설명했다.
중앙부처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던 선인학원 시립화도 대통령과 박관용 비서실장, 김정남 교육문화 수석, 김숙희 장관 등의 도움으로 해결하는 과정을 그렸다.

퇴임 후 이듬해 지방선거에서 김 대통령이 경기도지사 출마를 권유했다는 사실도 털어놨다. 당시나 지금이나 경기도지사는 대권주자로 급부상하는 상징적인 자리였지만 트라이포트를 완성하기 위해 송도신도시 건설문제를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인천시장을 택했다고 말했다.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민선으로 재선한 최 시장은 관선으로 일을 추진할 때보다 책임감과 사명감이 더했다고 했다. 최 시장은 송도신도시 투자유치 과정도 많은 부분 할애했다. 부동산투자기업인 게일社와 만남에서 계약까지, 셀트리온 서정진 회장과 만남 등을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했다.


스텐리게일, 김우중, 서정진 회장 등 관계 기술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과의 관계도 밝혔다. 시장이 되기 전 국회의원 시절부터 친분이 있었다고 썼다. 김 회장에게 송도신도시 투자를 권했던 최 시장은 “뭐가 있어야 투자하지, 바닷물에 투자하란 말이냐”며 한독에서 인수한 땅에 102층짜리 세계무역센터를 짓겠다고 선언해 깜짝 놀랐다고 했다. 유원지에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도시계획을 변경했는데, IMF사태로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결국 무산이 됐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최 시장은 자신의 아픈 과거도 내용에 담았다. 1998년 경기은행 대출압력사건과 대우 용도변경 특혜 사건 등으로 구속되는 아픔을 겪었지만 결국 재판을 통해 무죄를 받은 사실을 담담하게 표현했다.

최 시장하면 떠오르는 술 이야기도 들어 있다. 외국인을 만나면 공식만찬주로 ‘폭탄주’를 돌렸다. 제조법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에게는 만드는 방법도 상세히 알려 주었다. 중국을 방문할 때 공식만찬주는 마오타이주였다. 닉슨과 등소평의 외교에도 등장한 유명한 술인데,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깐뻬이(건배)’를 즐겼다. 우호적인 분위기를 위해서 였다고 부연했다.


송도, 투기꾼 건설업자 브로커로부터 반드시 지켜내야


최 시장이 그 토록 심혈을 기울였던 송도국제도시 현재 모습에 대한 견해는 무엇일까?
“송도 신도시는 공유수면을 매립하여 조성한 공공의 땅이다. 귀한 공유지를 아무 기업이나, 아무 학교나 들어오는 식으로 낭비를 하니 내 살점을 내주는 듯 가슴이 아프다. 송도는 그렇게 쉽게 할 땅이 아니다. 투기를 해서 누군가 돈을 벌라고 매립한 땅이 아니다. 조개를 캐는 어민의 눈물과 갯벌훼손을 반대하는 환경단체의 비판 속에서 어렵사리 결정한 금쪽같은 땅이다.”

그러면서 그는 “인천 시민들에게 간곡하게 말하고 싶다. 인천시민의 땅을 투기꾼, 건설업자, 브로커들로부터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며 격정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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