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한쪽, 만석동 괭이부리말
상태바
인천의 한쪽, 만석동 괭이부리말
  • 유광식
  • 승인 2016.07.15 09: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천소요] (3)유광식 / 사진작가


<사진01> 2012 ⓒ유광식


인천을 안다는 의미, 공간에 스며 산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는 다들 의견이 분분하다. 하물며 각자의 몫으로 늘상 숙제가 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숙제 하다 만난 곳, 인천 동구 안 만석동 괭이부리말이다. 지도 보는 걸 좋아하는 나는 인천의 모양 속에서 만석동을 찾아보게 되고 조금씩 거닐게 되었다. 근처 화수·만석부두, 만석동 우체국, 철길, 만석고가, 굴까는 집, 제분공장, 송림변전소, 동일방직, 두산인프라코어 등 큼지막한 구조물들 사이로 쪽방이 닥지닥지 모여 공극을 줄인 모양새로, 낮은 언덕배기 위 빼곡한 허름함에 처음은 당황스럽기도 했다. 괭이부리말은 가난한 피난민과 근처 공장노동자가 지붕과 처마까지 쪼개 쓰며 살고 있는 인천의 여러 달동네, 쪽방촌 마을 중 한 곳이다. 군데군데 좁고 깊은 골목 속까지 한 여름, 한 겨울의 모습이 배지 않은 곳이 없다.

한편 아이들과 어르신을 자주 접할 수 있었으며, 잠자리가 선도하는 가을, 길가에 널린 빨간 고추야말로 마음까지 물들이는 새빨간 개운함을 선사한다. 지금까지도 공중화장실이 위치해 있고 화재로 소실된 집도 있으며 굴 까는 천막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지만 이곳을 누비는 아이들의 표정만큼은 어둡지 않았던 탓에 공간의 온도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 87년 시작된 공부방 역사도 30년이니 어느새 한 세대를 넘겼다. 이 사이 얼마나 많은 굴곡진 사연이 있었을까.

만석동은 오래 전 서울 거주시 모 노래운동단체와 기찻길옆 공부방(기찻길옆 작은학교)의 인연으로 얼떨결에 알게 된 지역이다. 이후에 공부방의 20주년 기념공연(길·동무·꿈 2/ 2007.4.15/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을 보게 되었다. 이리저리 사회전반에 기웃거리며 서성이던 대학교 시절, 몇 군데의 공부방을 접할 수 있었는데 기찻길옆 작은학교는 여느 공부방과는 다소 같은 듯 다르게 느껴졌었다. 매 해 정기공연은 노래와 인형극, 풍물 등 아이들의 이야기를 짜임새 있게 재미나게 혹은 조금은 차가이 선보이는 것이었다. 공부방과는 직접적인 연은 잇지 않았으나 공부방이 위치한 만석동을 차분히 기록하는 계기로는 이어졌으니 이것이 인연일까?



<사진02> 2007 ⓒ유광식


괭이부리말의 정확한 생리는 모르지만 현재를 바라보고 기록하는 작가의 입장으로서 매 해 발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좁은 골목길을 들어설 적에는 가슴이 철썩거린다. 그 길은 한 사람이 지나가기에도 좁은데 집 안쪽에 놓이지 못한 가재도구마저 나와 있음이 길이긴 해도 누군가의 삶의 공간이란 생각에 그렇다. 문을 열고 나오는 어르신이 있으면 잠시 멈추기도 해야 하고 굽어진 곳에서는 긴장을 두고 방향을 잡아야 하며 살금살금 시끄럽지 않게도 걸어야 한다. 안쪽 골목에는 비어져 오래된 빈집도 눈에 띈다. 그 실내에는 과거 삶의 진한 투쟁만큼이나 냄새가 시큼하기도 하다. 간혹 새롭게 터를 잡은 고양이 가족이 주인행세를 하기도 하지만 사람이 빈 이상 건물은 취약해지고 위험해질 것임을 안다. 아이들 주변으로 좋지도 않은 풍경이다.



<사진03> 2012 ⓒ유광식


<사진04> 2012 ⓒ유광식

2012년 괭이부리말 저층주거지 절반가량이 임대형 보금자리 주택으로 개선되는 사업이 발표되었다. 이후 공사는 급물살을 타고 진행이 되었고 다음해 겨울 지역주민들이 다수 입주·정착할 수 있었다. 그러다 갑작스레 동구는 옛(가난) 생활체험관(2015.6)이라는 얼토당토 않은 일을 벌이려다 현지 주민과 활동가, 지역 여론에 혼쭐이 나기도 했다. 가난까지 상품화한다는 행태를 주민이 앞장서 가만 두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사례로 사업은 백지화 되었으나 기관장이 사업계획을 진행한 공무원을 칭찬했다는 후일담 기사에 다시 한 번 주무기관은 미움을 받아야 했다. 어느 곳에나 지난 삶의 힘겨운 모습은 수두룩 남아 있다. 힘겨움은 홍보가 아니라 격려가 더 필요할 것이다. 격려의 형태는 다양할 것이고 말이다. 동구 수도국산에는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이 있다. 이곳엔 과거 수도국산 달동네 서민들의 삶의 이야기와 모습들이 재현되어 있으며 지금도 서민들의 평범했지만 끈질긴 삶의 기억을 보존하고 전시하며 교육하고 있다. 또한 아직 더디지만 남구의 토지금고 마을박물관도 눈여겨 볼 곳이다.



                                                  <사진05> 2013 ⓒ유광식

동인천역 남방향 철로변에도 쪽방촌이 한 곳 있다. 작년 이곳의 절반 정도가 철거되고 올해 반듯한 고층(14층) 아파트가 단숨에 솟구쳤다. 당시 중·동구 지역의 전봇대, 가로등에 걸려 나부끼는 현수막 돛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이 아파트 광고인 줄은 미처 몰랐다. 동인천역 부근 가장 높은 이 아파트명은 OO행복마을이다. 병들고 가난한 어르신들과 일용노동자들의 작은 삶터가 논의와 대안적 활용의 부재 속에 민간사업자를 끌어들인 나머지 비싼 오피스텔이 들어설 계획에 주민들은 재정착은커녕 힘없이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나머지 1/2 지역도 말은 못하지만 부들부들 떨고 있을 터이다. 애석하게도 괭이부리말 경우와는 철길을 가운데 두고 남북으로 쪽방의 사후 운명이 너무 다르다. 생각해 보면 마을도 행복도 시멘트로 빚어 만드는 시대라는 점이 무척 안타깝고 분노에 피곤하기까지 하다.



                                                    <사진06> 인현동, 2015 ⓒ유광식


우리가 걷는 길은 좁고도 길다고 한다. 가는 도중에 동무 아닌 동무를 만나고 함께 이야기하는 사이 꿈으로 기획된다. 만석동은 누가 봐도 인천의 변두리다. 자주 이슈거리도 되지만 버려짐도 상당하다. 그러나 주민들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그들은 지내왔던 것처럼 끈끈한 공동체 의식으로 무더운 여름 날씨와 혹독한 겨울 기온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지혜를 나눈다. 지켜 본 7년여의 기간 동안 처음 모습은 반쪽이 되었고 이후 남은 반쪽이 어떻게 될런지는 모르겠다. 지난 5월에 잠시 서울의 청계천박물관(기획전시)에 다녀온 적이 있다. 과거 청계천변의 모습과 빈민활동가의 궤적을 살펴볼 수 있었는데 박물관 맞은편 청계천 판잣집체험관이 아슬아슬하게 세워져 있었다. 처음 겉에서 보기에도 때깔 좋은 상품논리로밖에 보이지 않았음에 괜스레 더운 날씨 탓만 하곤 했다. 굳이 그렇게 조악한 복원격으로 꾸미어 판매상점으로 덧씌우고 있는 상황에 고운 시선을 차마 꺼내 들 수는 없었다. 행여 만석동 괭이부리말도 이런 형태가 되었더라면? 하고 상상하니 참으로 슬픈 일이겠지 싶었다.

기찻길옆 작은학교의 정기공연을 2016년 4월에 다시 한 번 찾았다. 공연 장소가 가까운 곳이 아닌 멀리 부평이었지만 뭐 어떠랴. 여전히 삶의 공동체의식을 강조하는 공부방의 운영취지를 아이들 스스로 습득할 수 있게끔 준비된 모습이야말로 감동이었다. 아이들은 공부방에서 삶의 단맛만 맛보는 것이 아니었다. 사회 이면을 살피고 어렵고 고통이 따르는 현장에 직접 찾아가 공부하는 활동이 당분간은 모를지언정 언제인가 자신의 힘겨움을 떠받쳐 위로해주는 시간으로 되돌려질 것이다. 여전히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세월호 사건과 백남기 농민 사건의 경우처럼 이면사회의 인식과 사고는 자의식을 형성하는 중요한 일이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져야 동네도 튼튼해진다.



<사진07> 2016 ⓒ유광식

<사진08> 2014 ⓒ유광식

언덕배기 따라 사람이 살며 관계를 이루고 협동이 이루어지는 공동체는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분명 갈등도 있었겠고 협력을 약속하며 지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곳은 복잡할 것 같은데도 거닐다 보면 조용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어느 정도 마을문화의 무게가 있기에 느껴지는 것일 터이고, 아이들 목소리가 뛰어 다니니 모두가 밝게 살아가는 듯싶다. 만석동은 1950년 인천상륙작전시 상륙지점(Red Beach) 중 한 곳이기도 했다. 그 후 60년도 넘은 오랜 시간동안 대신 어려운 삶들이 진입·정착했고 지금은 그 맛에 웃고 울고 일하는 터전이 되었다. 이웃면 만석비치타운이 거슬리기는 하지만 만석동 괭이부리말이 과거 그리고 지금 우리 삶을 고스란히 비치는 아련하지만 행복한 Beach 로 가꾸어지길 바래어 본다.



                                                      <사진09> 2012 ⓒ유광식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