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난 주워 온 아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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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난 주워 온 아이일까?
  • 최종규
  • 승인 2010.08.16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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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던 인천] ④ 숭의동 천주교회 교부금카-드

 
 우리 집 세 식구는 모두 천주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아이 엄마는 예전에 세례성사를 받았고, 저하고 함께 사는 동안 견진성사를 받았습니다. 아이 아빠인 저는 따로 세례를 받은 적이 없으나, 아이 엄마랑 함께 살아가면서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를 받았습니다. 아이는 아주 갓난쟁이였을 때에 유아세례를 받았습니다.

 국민학교 다니던 때에 참으로 갖가지 설문조사가 많았습니다. 설문조사는 종이쪽지에 적는 설문조사가 있고, 담임선생이 반 아이들한테 물어 보며 손을 들라고 해서 적바림하는 설문조사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한꺼번에 손을 들게 할 때가 담임선생으로서는 통계를 모으기 좋았겠지요. 쪽지를 받아서 하나하나 적으려면 시간을 아주 많이 잡아먹을 테니까요.

 그무렵 우리한테 나온 설문조사에는 “집에 피아노가 있느냐, 집에 텔레비전이 있느냐, 집에 전화기가 있느냐, 집에 냉장고가 있느냐 …….” 따위였는데, 아주 드물게 피아노 있는 집이 있는 가운데, 텔레비전과 전화기 없는 집이 제법 있었습니다. 냉장고 없는 집 또한 꽤 있었고요.

 손들기 설문조사는 해마다 이루어졌습니다. 참 지겹도록 하는 설문조사를 문교부에서 끝없이 시키는구나 하고 생각하는데, “집에서 고기를 얼마나 자주 먹느냐?”는 설문까지 있었습니다. 이 설문에는 횟수에 따라 손을 들도록 했고, “날마다, 한 주에 세 번 넘게, 한 주에 한두 번, 한 주에 한 번, 한 달에 두어 번, 한 달에 한 번, 두어 달에 한 번, 반 해에 한 번, 한 해에 한 번, 아예 없음.”으로 나누어 물었습니다. 이렇게 묻는 말에 ‘날마다’ 먹는다는 아이가 우리 학교를 통틀어 서넛쯤 있지 않았나 싶은데, 한 주에 여러 번 먹는다는 아이와 함께 부러움을 샀습니다. 거의 모두 한 주에 한 번이나 한 달에 한 번쯤이었고, 드문드문 반 해에 한 번과 한 해에 한 번에 손을 든 아이가 있었습니다. 아마, 명절날 고기맛을 본다는 셈이겠지요. 그리고 꼭 한 아이가 “아예 없음”에 손을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손을 든 아이는 신흥동3가 기찻길 옆 막살이집에서 일곱 식구가 조그마한 방 한 칸을 살림집으로 얻어 사는 동무였습니다. 담임선생은 이 아이가 끝까지 손을 안 들자 마구 짜증을 내며 물었고, 동무아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몹시 부끄러운 몸짓으로 “아예 안 먹는다”라는 항목에서 살짝 손을 들었습니다.

 담임선생은 무엇을 생각하며 이런 설문을 손들기를 하며 모아야 했을까요. 담임선생은 왜 아이한테 성풀이를 해야 했을까요.

 종이쪽지에 적어 오는 설문으로 ‘집식구 종교는 어떠한가’가 있었습니다. 이 설문은 손들기로 할 수 없으니 쪽지를 내어주는데, 기독교나 천주교를 믿는 사람은 따로 ‘세례이름’이 있다고 해서, 이 세례이름까지 적어 오라 했습니다.

 집에 쪽지를 들고 가서 여쭈니, 어머니는 마루에 놓인 선반 서랍을 열어 무슨 종이를 꺼내더니 이 종이에 적힌 이름을 차근차근 옮겨 적어 줍니다. 나중에 이 쪽지를 들여다보니까, 우리 집안은 우리 큰집뿐 아니라 작은집이며 고모집이며 모조리 천주교 집안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형 모두 세례를 받았으며 세례이름이 있습니다. 그런데 막내인 저는 세례이름이 없습니다.

 ‘뭐지? 뭐야? 왜 나만 없어?’

 아버지랑 어머니랑 형이란 모두 세례이름이 있는데 저한테만 세례이름이 없으니 덜컥 얄궂은 생각을 합니다. 형한테는 돌사진이 있으나 저한테는 돌사진이 없습니다. 형은 아주 갓난쟁이 무렵 사진이 꽤 있으나 저한테는 아주 갓난쟁이 사진은 한 장조차 없습니다.

 ‘어쩌면 난 주워 온 아이일까?’
 

교부금카-드 앞쪽

 왠지 슬픈 마음이 되어, 우리 집 종교를 적는 설문조사 종이에 아버지와 어머니와 형은 ‘천주교’로 적고 저는 ‘유교’로 적습니다. 이무렵 아는 종교란 불교, 기독교, 천주교, 유교뿐인데, 저는 불교나 기독교는 잘 모르고, 집에서 제사를 참 많이 지내니 그러면 유교로 적으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야 임마, 넌 왜 너희 식구들하고 종교가 달라?” 담임선생이 제 설문조사 종이를 보고 묻습니다. “저, 저는 세례를 안 받아 세례이름이 없어서요.” 담임선생은 이 녀석이 늘 개구진 짓을 하니 장난을 치나 생각하다가, 이렇게 대꾸하는 말에 한참 실룩실룩거리더니 윽박지르며 꿀밤 한 대 먹이려다가 그만둡니다.

 하루하루 흐르고 한 해 한 해 지나, 국민학교 적 설문조사 일을 잊어 간 지 스무 해 남짓 지난 어느 날, 아버지와 어머니가 시골집을 얻어 도시 아파트를 떠난다고 할 때에 짐 나르기를 돕다가 퍽 낡은 종이쪽지 하나가 팔랑팔랑 떨어지는 모습을 봅니다. 뭔가 궁금해서 집어듭니다. ‘교부금카-드’라고 적힌 종이쪽지는 우편엽서 크기입니다. 1982년도 ‘인천교구 숭의동 천주교회’ 도장이 찍혀 있습니다. 전화번호는 국번이 하나이니 참말 예전 종이쪽지입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이 인천 중구 신흥동3가 7-235번지 집에서 살 때에 쓰던 전화번호는 ‘2국 4812번’이었습니다.

 ‘교부금카-드’ 뒤쪽을 봅니다. 교적번호 594번으로 아버지 이름과 주소가 적혀 있습니다. 교부금은 다달이 ‘1000원’을 내기로 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교부금은 모두 세 번 냅니다.
 

교부금카-드 뒤쪽

 옆지기하고 혼인을 하던 2007년 여름날 어머니한테 여쭙니다. “어머니, 저는 왜 세례이름이 없어요?” “그거? 으응, 그때 귀찮아서 안 했어.” “네? 그럼, 형은요?” “야, 니 할머니 알잖아. 어쩔 수 없이 했지.” “…….” “근데, 그거는 왜?”

 교적번호 594번으로 숭의2동에 자리한 숭의동 천주교회에 천주교 신자로 이름을 올린 아버지이며 어머니는 틀림없이 천주교 신자입니다. 그러나 당신들 스스로 좋아서 신자가 되지는 않았음을 뒤늦게 비로소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하기는,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사는 동안 예배당에 나란히 찾아간 적은 한 번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바지런히 예배당 마실을 하셨으나, 우리 형제한테는 예배당에 나가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습니다. 이리하여 교부금도 어쩔 수 없이 세 번 찾아가서 내고는 어딘가에 처박아 두셨다가 이렇게 스물 몇 해 만에 살며시 고개를 내미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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