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아름답고 유쾌한 연대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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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아름답고 유쾌한 연대를 위하여
  • 김정화
  • 승인 2010.08.31 2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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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김정화 / 계간 '작가들' 편집주간·가천의과학대 겸임교수

  - <빅이슈코리아>의 실험

  마돈나, 데이비드 베컴, 버락 오바마, 안젤리나 졸리, 조니 뎁, 폴 매카트니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이들은 모두 <빅이슈>(The Big Issue)의 ‘무료’ 표지모델입니다. <빅이슈>는 1991년 노숙인 출신 사회운동가 존 버드와 사업가 고든 로딕이 런던의 홈리스 자활을 돕기 위해 창간한 스트리트 페이퍼(거리에서 판매하는 잡지)로서 지난 7월 5일 일본과 타이완에 이어 아시아에서는 세 번째로 <빅이슈> 한국판이 나왔습니다.
 
  얼마 전 자신의 영화 홍보 차 내한한 안젤리나 졸리는 기자회견 자리에서 자신이 이 잡지의 표지 모델임을 자랑스러워했다고 합니다. 흥미롭게도 <해리 포터>시리즈로 유명한 조앤 롤링도 <빅이슈>로 데뷔했습니다. 이 잡지는 우리나라의 경우 철저히 아래로부터의 자발적인 요구와 노력에 의해 탄생했습니다. 해외여행이나 유학생활 중에 또는 미디어 등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빅이슈>를 접한 이들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창간준비모임을 만들어서 그 결실을 본 잡지여서 더욱 의미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잡지는 어떤 시스템으로 노숙인의 자활을 도울까요? 판매원 자격은 '자립 의사를 가진 노숙인'입니다. 10개 판매규칙(수익의 50%를 저축할 것, 배정받은 곳에서만 판매할 것, 판매 중에 음주나 흡연을 하지 말 것, 당당하게 얼굴을 들고 눈을 맞출 것 등)을 준수하겠다고 약속하면 누구나 ‘빅판’(<빅이슈> 판매원)이 될 수 있습니다. 1부 당 판매대금 3천원 가운데 1천600원이 판매원의 수익입니다. 처음 <빅이슈코리아>로부터 10권을 무료로 받아 ‘임시 빅판’으로 시작해 15일 동안 꾸준히 매상을 올릴 경우 ‘정식 빅판’이 되면, 한 달간 고시원을 배정받고 저축액이 300만 원을 넘으면 주거복지재단을 통해 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개인이 희망하면 취업과 창업도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노숙인들의 의존성을 염려해 활동기간은 2년까지이며, 사업의 방만함을 경계하기 위해 ‘빅판’의 수를 50명 정도로 제한한다고 합니다.

 


지난 14일 영등포 '빅이슈 코리아, 오픈하우스' 행사에서
판매사원들과 잡지를 만드는 이들이 즐거운 대화의 시간을 갖고 있다.

  

  <빅이슈> 창간호의 경우 약 4천200부가 판매되었으며, 아직 최종 판매부수는 아니지만 8월 호는 1만부 이상의 판매돌파를 앞두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영국에서만 노숙인 5500여 명이 자립했다고 합니다. 이미 영국에서 <빅이슈>는 매달 65만권 이상 판매되는 주력 주간지로 자리 잡았고, 일본에서는 2003년 런칭 이후 격주간으로 매달 약 3만부씩 팔린다고 합니다. 이 밖에도 남아공, 호주, 미국, 타이완 등 전 세계 수십 개 도시에서 새로운 문화를 이끌어가면서 월드 잡지로 성장해가고 있는 중입니다.

   삼복의 폭염이 내리쬐는 이대역 4번 출구에서 빨간 모자와 빨간 조끼 유니폼을 입은 ‘빅판’한테서 구입한 <빅이슈>는 한 부씩 비닐커버로 싸인 아주 얇은 책이었습니다. 내용은 주로 대중문화와 관련된 발랄하고 신선한 이야깃거리가 주를 이루고, 한켠에는 자신이 노숙인임을 수줍게 ‘커밍아웃’한 분들의 인물사진과 인터뷰도 실려 있습니다. 
 
  이 잡지가 노숙인들의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담아내면서 동시에 일반 독자들의 관심도 함께 아우른다는 잡지의 방향성과 비전이 너무 이상적일까요? 하지만 <빅이슈>에 대한 우리나라 독자들의 피드백이 예상보다 꽤 열렬해서 이 정도의 반응이라면 조만간 성공궤도에 진입할 거라는 소식입니다. 향후 성공적인 안착단계에 접어들면 홈리스 월드컵, 홈리스 예술제, 홈리스 임대주택사업, 홈리스 직업훈련 등을 계획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들은 ‘이슬을 맞고 잔다’라는 뜻의 노숙인(露宿人)보다는 전 세계 소셜 네트워크를 위해 ‘홈리스’라는 용어를 쓰기를 좋아합니다)
 
  이러한 문화현상의 미덕은 사회적 약자이자 소수자인 노숙인의 문제와 그들의 목소리가 묻혀버리지 않고 세상 사람들과 활자를 통해 유통된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를 건강하고 아름답게 바꾸는 방식도 이처럼 즐겁게 소통하고 연대하는 형태로도 가능합니다. 노숙인들에게 자선이 아닌 자립의 기회를 제공하고 삶의 의욕을 환기시키는 방식입니다. 그들이 정부나 자치단체의 복지 혜택의 일방적 수혜자가 아니라, 노동의 땀과 일종의 문화행위로써 자립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삶의 질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거나 모두 자립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같은 한국적 실험도 성공할 수 있음은 분명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보여주는 것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지난 7월 새롭게 출범한 자치단체장들은 너도나도 ‘사회적 기업’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외치고 있습니다. <빅이슈코리아>도 일종의 사회적 기업입니다. 14년 동안 홈리스 자립을 지원해 온 비영리민간단체 ‘거리의천사들’에서 탄생한 사회적 기업입니다. 저명인사와 전문가들이 재능을 기부하고, 청년들이 시간과 노력을 나누는 행위로써 노숙인의 자활을 돕는 방식은 우리 사회의 매우 의미 있는 변화입니다. 세대와 계층을 아우르는 이러한 아름다운 연대와 소통이 모든 노숙인들의 희망의 증거가 되길 기대하면서 인천지역에서도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은 ‘착한’ 사회적 기업이 출현하기를 꿈꾸어 봅니다. 


 
김정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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