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는 먼지들, 청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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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는 먼지들, 청라
  • 유광식
  • 승인 2017.02.10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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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유광식 / 사진작가
▲ 유광식_도시 낚시(명당자리에서 건물을 낚는 작업이 경쟁하듯 한창이다./청라1동)_2016


옛날에는 강화도를 갈 때 초지대교가 나오기까지는 긴 막대기 같은 길 4~5개를 하염없이 달려갔다. 그 중 첫 번째 긴 막대기 구간이 청라라는 사실을 인지한 건 그리 오래된 얘기가 아니다. 청라! 인천의 경제자유구역 삼각형(영종, 송도, 청라)을 이루는 막내 격으로 인천 서구에 자리 잡은 대단위 지구이다. 지금이야 휘황찬란하지만 첫 발을 디딘 2008년, 비닐하우스 풍경이 오히려 어울릴만한 황량한 나대지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거기서 죽순 자라듯이 건물이 오르고 돈들이 풀풀 날릴 것에는 개인적으로 관심 밖이었다.   

2008년, 작은 산 용두산(인천 서구 청라 소재)에 올랐다. 사실 산 정상까지 가지는 못하는데, 군사 시설로 인해 이곳은 제한금지구역이었다. 높이라고 해봤자 2~30m 정도다. 지금이야 군사 시설은 없어졌고 영양탕과 꽃 하우스가 그 앞으로 자리매김한다. 1950년대 지도를 찾아 중첩해 보니 이 곳 용두산이 매립되기 전에는 바다 끝 조망대였고 강화로 올라가는 길목인지라, 이곳에 왜 군사 시설이 자리 잡았는지 이해가 갔다. 그곳 너머로 보이는 사도(뱀이 많다던)는 매립으로 사라지고 대신 대규모 산업단지가 똬리를 틀었다. 시큼하다.


▲ 유광식_용두산 쪽에서 내려다 본 청라1동(우측이 용두산이고 아직까지는 아파트 라인이 없다.)_2008

▲ 유광식_서쪽 방향의 공촌천(좌측이 청라2동 지구이고 멀리 영종대교가 보인다.)_2008


강화를 드나들며 타던 길들의 변화가 심상치 않았다. 언제부턴가 일직선 길을 구불구불 녹이더니 땅속으로 들어가란다. 긴 터널(중봉지하차도/2012.1월 개통)의 검은 양끝을 통과하면서는 지상의 것들이 궁금해져 간혹 이곳을 찾아왔던 이유로 작용했다. 이 무렵과 동시에 황무지는(이미 계획된 일정이었겠지만) 도무지 알 수 없는 초고층 주거단지의 깜짝 발굴 장소처럼 유명세를 탔다. 인천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집들이 새로 생겨났고, 불을 밝혔고, 그 불나방 같은 기세에 겁이 나기도 했다. 인구 9만을 목표로 현재 8만 정도의 주민이 살고 있는 청라! 내 곁의 지인들조차 하나, 둘씩 여기로 이사를 오면서 그 존재감이 내게도 퍼져온 것이다. 청라1동은 연희동으로도 불린다. 심곡천과 공촌천이 남과 북을 가르며 안쪽으로 자리 잡은 구역이 청라인데, 마치 인천이라는 엄마 품에서 보호받으며 품어지는 아기새 마냥 귀한 대접을 받는 모습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청나라’라고 칭하기도 한다. 어렸을 적에 사방을 둘러보면 다 산이었는데, 이곳에서는 사방 어디로 고개를 들어도 콘크리트 구조물들이다. 누가 그랬다. 소설조차 써지지 않을 만큼 무감한 장소인 것만 같다고. 


▲ 유광식_북쪽 방향으로의 중봉대로(멀리 보이는 건물위치가 청라지구)_2015

▲ 유광식_파란 참새 두 마리(경명초교 옆 호수공원1지하차도 입구/ 미개통 시기라 먹잇감이 없다.)_2013


도시탄생의 과정으로 보자면 사실 청라는 중요한 시공간을 제공하고 있을 수도 있다. 땅이 모자라 바다면을 매립하고 섬을 연결하면서 그 척박함을 제압한 후, 집들을 세워 사람들을 유인하고 정착시키는 일련의 과정들이 어찌 보면 연극 혹은 영화 같다는 생각도 든다. 무에서 유가 생겨나는 신기루처럼, 청라는 가상의 유토피아적 환상이 투영된 거대한 욕망의 스튜디오이다. 누군가는 이 도시의 주연이고 조연이고 극작가이며, 나는 어떨 땐 세트장 같은 배경에 사로잡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결정되어 지나가는 행인이 된 기분이다. 영화 <트루먼쇼, 1998)가 겹쳐진다. 그렇다면 이 반듯반듯한 장소 개발의 감독은 누구인가? 무엇일까? 혹시 염병일까?


▲ 유광식_수변공원로의 밤풍경(우측 건물이 부실시공 논란이 일었던 청라푸르지오/청라2동)_2013


약속과 개인 촬영차 청라를 거닌다지만 사실 재미가 없다. 내가 찾는 의미는 의외의 자위적인 측면이 강하다. 까만 선글라스 낀 사람, 반려동물과 행진하는 사람, 기막힌 자전거 주차를 하고 학원을 드나드는 학생들, 당당히 유모차를 밀고 땡기는 젊은 엄마들, 짓지도 않은 아파트 자랑 전단지, 그리고 떴다!간이테이블, 내부가 보이지 않는 큰 외산 자동차, 하나같이 간판 표기는 한글이지만 알고 보면 영어명, 너나할 것 없이 친도시적이라는 조악한 공공시설물, 유난히 없는 사람에게 더더욱 매섭게 다가오는 이곳의 한겨울 찬바람, 교통이 좋아졌다지만 차 없이는 다다르기 힘든 곳, 하늘의 별보다 더 깜짝깜짝 아파트반딧불, 자연하천처럼 만들었다는 수변은 엄밀히 봐도 수학공식이 적용된 매끈한 곡선... 답답하지만 사는 사람은 삶의 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이곳. 내키지 않은 마음과 뒤끝 좋지 않은 기분으로 촬영하는 나의 장소. 불안과 위압, 마치 땡감을 입에 물고 걷는 기분을 숨길 수 없다. 나는 뜨악의 감정과 채집의 진술만 할 뿐이다. 국제도시라고 하니 혹시 내가 국제적인 마인드가 부족한 건 아닌지도 고민이 들지만 말이다. 과거 청라도와 사도, 문첨도 등 이름도 생소한 작은 섬들이 이 도시 안에 스미어 있지만 60cm 자로 수십만 번 재고 긋고 파고 덮어 버리기만 했을 터이다. 청라도(67m)의 유래가 푸른 넝쿨이 많은 섬, 댕댕이 덩굴처럼 생겼다고 하는 파란 섬, 일명 ‘파렴‘이라도 불리워졌다고 한다. 파렴! 무슨 말을 읊조리고 싶은지 알 것이다. 한편 청라도 아래쪽에서 고인돌을 발견했다는 얘기에, 그렇다면 ’고인, 돌’들(아파트 군락지)이 많은 구역이라 할 수도 있겠다. 


▲ 유광식_무인 떴다!간이테이블(입주 및 임대관련 테이블이 도처에 있다./청라1동)_2016

▲ 유광식_청라의 친구들(반상회라도 열어야 하는 건가?)_2016

▲ 유광식_수 없는 새로움과 상상(무릎 정도의 수심에 왠 수상택시? 수상해!)_2013


청라의 소요는 걸음보다는 자동차나 뉴스, 지도상으로 해보는 게 훨씬 수월하다. 지난 2013년, 프로젝트 작업의 일환으로 청라에서 자주 살펴 본 사실은 청라푸르지오 아파트(50층 이상의 4개동) 부실시공 논란이었다. 한창 입주를 앞둔 시점에 부실시공이라는 암초를 만나 갑론을박이 이루어졌는데, 현재는 원만하게 해결을 보았는지 농담조로 안부 묻듯 “청라 참 푸르지요?” 동문서답격이다. 그리고 청라시티타워(453m)가 청라주민들의 염원(?)으로 올해 착공을 목표로 하며 진행 중이다. 청라중앙호수공원 중앙에는 UFO 이착륙점 혹은 거대 여왕벌 침소 같은 정육각형의 나대지가 하나 있다. 이곳은 그토록 청라국제도시의 마지막 염원(바벨탑)처럼 떠받들려지고 있는 시티타워 건설구역이다. 최근 사업체가 확정되면서, 주민들은 내색하지 않을 테지만 속으로는 좋아하고 있다. 더불어 북쪽의 수도권쓰레기매립장 사용기한 연장 소식에 청라주민은 시위도 불사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면서 관련기관의 당근과 채찍은 고공에 수 놓인다. 지척거리 영종을 잇는 3연륙교 착공, 청라 7호선 연장 그리고 광역급행버스(M버스) 확충. 청라역과 청라IC는 이미 개통되었다. 이 모든 현상들에 “왜?”라는 물음을 해본다면 답은 점점 명확해진다. 모두가 아니라고 떠들지만 속으로는 이게 다 ‘집’ 문제와 ‘값’ 문제다. 청라 주변으로는 처음부터 위해시설이 산적했다. 이를 빌미로 여러 밀당잔치가 조용하고도 은밀히 이루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떨쳐내지 못하겠다.  



▲ 김주혜_청라2동주민센터 맞은편 수변공원(어질어질하여 수평계라도...)_2016

▲ 유광식_건설 중인 아파트(작년 말 완공되었다./ 청라1동)_2016

▲ 유광식_현명과 잘못(투자 위치 모르니 대리운전 요청이라도/ 청라1동)_2017


도시의 특성인 편익을 막자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도시라도 100% 편리와 이익에 집착하기 보다는 다소의 불편한 지점을 만들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이미 너무 편리해진 상황에서 일부 오만한 판단이 작동되고 있는 삶을 지내고 있다. 사실 집이야말로 내게도 절실히 중요한 사물이다. 나가는 월세가 대출이자보다 비싸다며 전세로 바꾸라고 힘주어 얘기하는 어느 선배의 이야기는 분명 현상적으로는 맞지만 그 실질에는 녹록치 않은 조건들이 붙어 있다. 새로 태어나고 있는 신생 도시인 청라를 지켜보면서 드는 생각은 ‘살진 않지만 지나가는 길목일 수는 있다’는 점이다. 생애를 통틀어 이곳에 자리 잡고 싶지는 않으나, 나는 이미 같은 서구라는 행정구역 안에 살고는 있다. 알게 모르게 가까이 와 있는 이 기분은 뭘까? 시야 흐리는 먼지. 꼭 어떤 발굴처럼 크레인이 바다 아래의 도시를 낚시해 올려내는 청라에 가까이하고 있다는 것은 내게 ‘문제’로서가 아니라면 ‘기록’ 차원으로의 아낌이 서린 곳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영화 이너스페이스(Innerspace, 1987)에서 신비로운 인체를 탐험하듯 소형잠수정이 없을 뿐이지 도시를 탐험하는 장소로서 내게는 차분히 지켜보며 가야할 이웃도시, 청나라인 셈이다. 


▲ 유광식_돛을 다는 아저씨(청라! 언젠가는 독자적으로 항해하는 보물선이 될랑가?/ 청라1동)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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