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든 사물이든 정성스럽게 공을 들여야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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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든 사물이든 정성스럽게 공을 들여야돼요"
  • 김인자
  • 승인 2017.03.14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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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청소할머니의 계단닦기
"와~할머니 반짝 반짝 윤이 나네요."
"그래요? 내가 이 맛에 힘들어도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는 것이죠."
 
운동삼아 계단타는 아침.
심한 감기에 걸려 끙끙 앓으면서도 하루도 빠지기 싫어 빼먹지 않고 타기 시작한 계단타기가 벌써 38일째다.
계단을 타면서 자주 만나는 청소할머니를 보고싶은 욕심에 힘들어도 열심히 타는 계단.
오늘도 계단에 엎드려서 열심히 물걸레질을 하시는 청소할머니를 만났다.
"안녕하세요~할무니"
"네~ 잘 지내셨어요?"
"감기는 좀 어떠셔요? 할머니~"
"많이 좋아졌어요~
선생님 책 내가 다 살거예요.
우리 딸이 일요일에 교보문고에 데려다준댔어요."
"와~ 할머니 책 좋아하세요?"
"네, 내가 책 참 좋아해요.
교보에도 내가 회원이에요. 요즘은 바빠서 통 못갔는데 이번 쉬는 날 가서 선생님 책 다 사야지 그러구 있어요. 그 생각만 하믄 좋아서 자다 가도 입이 벙긋벙긋 벌어져요.
내가 책을 아주 많이 좋아하거든요."
"아, 그르시구나.할머니 고맙습니다."
"고맙기는요, 내가 고맙죠.
매일 아침 우리 이쁜 선생님 보는 것도 기분이 좋고 내가 많이 고마워요.나 같은 늙으이헌테 볼 때마다 말 붙여주고 환하게 웃으면서 다정하게 대해줘서여.나는 선생님 만날 생각에 계단청소하는게 하나투 힘이 안들어요."
"할머니..."
물걸레질하시는 할머니를 뒤에서 꼭 안아드렸다.
"이그 우리 선생님은 으트게 이르케 정도 많으실까...
우리 선생님 계단 한 번 타시는 동안 나는 겨우 한 칸 닦았네."
 
지난번 청소할머니의 99세 시어머니 이야기를 듣고 나서 청소할머니 드리려고 다음날 아침 메실차랑 고구마랑 구워서 가지고 나갔는데 청소할머니는 안계시고 청소반장할머니가 대신 계단청소를 하고 계셨다.
할머니가 심한 감기로 일을 못하시게 되서 반장할머니가 대신 해준다고 하셨는데. 걱정을 많이 했는데?
며칠 만에 다시 만난 청소할머니는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다.
"할무니 아프신데 선선히 하셔요.
그제도 닦고 어제도 닦고 매일매일 닦는데 대충 하셔도 될건데요."
"어트게 그래요. 주민들이 매일 밟고 다니는 길인데 깨깟이 청소를 해놔야지요."
"매일 매일 할무니가 깨끗이 닦으셔서 더러워질 틈이 없어요. 그리고 다들 엘리베이터 타시지 계단으로 별로 안 다니세요."
"그러니까 더 더욱 깨끗이 닦아야지요. 내가 깨끗이 닦는다고 하는데도 그래도 맨날 맨날 더러워요."
"할무니 저희가 좀 더럽게 쓰지요?
죄송해요."
"죄송하긴요, 괜찮아여~
그래야 우리 같은 사람이 필요한 것이죠. 깨끗하믄 주민이 한번만 쓱 쓸면 되잖아요."
"주민이 쓸긴요. 눈이 와도 내집 앞에 쌓인 눈도 잘 안쓰는데요... 죄송하고 고맙습니다. 할머니."
"고맙긴요, 우리가 고맙죠. 우리같은 늙은이들 이렇게 일할 수 있는게 어디야. 그래서 안보이는 곳 일수록 신경을 더 바짝 써요."
"안보이는 곳 일수록요?"
"예 그래야 그것들도 죄다 때깔이 나거든여. 손목시계도 안차고 그냥 구석에 쳐박아두면 고장이 나잖아여. 얘네들도 사람손이 매일 가야 좋아하거든요.
사람이든 사물이든지간에 정성스럽게 공을 들여야돼요."
 
아 그렇구나... 오늘도 나는 우리 할머니에게 귀한 삶의 지혜를 또 한가지 배웠다.
사람은 그 사람이 가진 마음보대로 얼굴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98세까지 돌아다니는 치매에 걸리신 시어무니를 정성껏 돌보셨던 청소할머니. 저런 예쁜 마음보를 가지셨으니 할무니가 닦으시는 계단도 반짝 반짝 윤이 난다.
 
"할무니 얘를 뭐라고 불러요?"
"신주."
"신주요? 이름이 신주예요?"
"예, 신주단지 할때 그 신주예요."
"아 그래서 우리 할머니가 얘를 신주단지 모시듯이 하는구나아~"
머시든 가볍게 여기지 않고 귀하게 여기는 우리 할머니들의 편견없는 사랑을 배우는 아침.
"할머니 얼릉 감기 뚝 떨쳐버리세요."
 
혹시라도 청소할머니가 깨끗이 닦아놓으신 계단이 내 걸음으로 더럽혀질까봐 살금살금 걷는다.
살금살금 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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