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사실이 부르는 큰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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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사실이 부르는 큰 움직임
  • 김연식
  • 승인 2017.03.19 08: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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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아마존 산호의 존재를 알리다


국제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의 에스페란자호 항해사 김연식씨(34)와 함께 하는 <위대한 항해>는 지난해 3월부터 격주(10월부터 3주)로 연재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환경감시 선박 에스페란자호에서 부딪치며 겪는 현장의 이야기를 한국인 최초의 그린피스 항해사의 눈으로 보여드립니다. 


 

# 모퉁이를 돌아나가자 덜컥 다가온 막다른 골목
 

최초로 아마존 산호지대를 촬영하겠다고 호기롭게 나선 에스페란자 호는 궂은 날씨에 아무것도 못하고 근처 항구 벨렘(Belem)으로 돌아갔습니다. 날이 우중충했습니다. 먼데서부터 두터운 구름이 몰려오더니 ‘쑤아아~’ 매서운 소나기를 쏟아냈습니다. 맹렬한 소나기에 사방이 가려졌습니다. 빗소리가 얼마나 거센지 주변에 신호를 주려고 울린 뱃고동마저 삼켰습니다. 눈감은 듯 더듬더듬 나아가는 불안한 항해였습니다. 기쁨, 설렘, 환희, 기대. 이런 단어는 구름 저편 수평선 너머로 숨어버렸습니다.

 

항구에 도착하자 우릴 맞은 건 다름 아닌 항만통제관이였습니다. 나이 지긋한 두 사람이 배에 올라와 선장과 저를 찾았습니다.
 

- 에스페란자 호는 벨렘항의 규칙을 위반했습니다. 귀 선박은 유조선처럼 위험한 화물을 실은 배가 다니는 특별 항로에 허가 없이 진입했습니다.

항로를 찾는 건 2등항해사인 제 담당입니다. 늘 그렇듯 가장 넓고 안전한 뱃길을 선택했는데, 그게 규칙위반이랍니다. 항해자는 영국에서 발행한 책자에서 항로정보를 찾습니다.책 아무데도 없는 말이었습니다.

- 자, 여기 보세요. 영국 수로서지에 그런 내용은 없습니다.

해당 쪽을 찾아 보여줬지만 막무가내입니다. 지역의 규칙이라며 포르투갈 말로 된 문서를 내밉니다. 무슨 말인지 알 턱이 없습니다.

- 이 내용은 영국 수로서지에 고시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영어로 되어있지 않는데 어찌 알고 규칙을 따르라는 말입니까?

- 어찌됐건 내가 없는 규칙을 꺼낸 것도 아니고, 귀선이 이 항로에 진입한 건 사실이잖소. 자, 지금부터 이번 불법 항해에 대해 조사하겠습니다.

 

뭐가 잘못되고 있었습니다. 항만통제관은 막무가내였습니다. 우리를 못살게 구려고 온 세상 사람들이 짜고 덤비는 듯한 느낌이 귓등 어디쯤에서부터 느껴졌습니다. 정교하게 짜놓은 함정을 향해 조금씩 다가가는 것 같았습니다. 선장 조엘은 그린피스 브라질 사무소에 냉큼 연락했습니다.
 

- 석유기업이 입김이 작용했을 수 있습니다. 석유채굴권을 파는 브라질 정부도 에스페란자의 촬영이 반갑지 않을 겁니다. 일단 해사 전문 변호사가 도착할 때까지 진술을 거부하고 계세요.


연락받은 그린피스 브라질 사무소도 긴박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긴 하루였습니다. 조엘과 저는 커피를 권하거나 배에 대해 설명하는 식으로 주제를 돌렸지만 통제관은 꾀이지 않았습니다. 그럴수록 시간은 길게만 느껴졌습니다. 저는 평소에는 하지도 않는 말이나 실수를 하는 식으로 허둥대었습니다.

 

에스페란자에서 일하며 늘 가슴 떨리는 일만 있으리라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파도에 배가 흔들리거나 이런저런 사고가 생기거나, 몇 년 전에 그랬듯 감옥살이 하거나, 반대쪽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생각지도 못한 반격을 받을 수 있다고, 그걸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다짐했었습니다. 여태 있었던 사건에 비하면 별 것 아니지만, 막상 일이 벌어지니 덜컥 막다른 길에 다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말로는, 생각으로는 어떤 위험도 감수하겠다고 했지만, 그건 제가 세상을 너무 쉽게 본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룻강아지가 ‘세상아 덤벼라’ 하고 겁 없이 소리치는 건 아니었는지요. 긴 하루를 보내며 저는 그런 생각에 시달렸습니다.
 

 





# 아름다워야만 산호인 것은 아니야.
 

항만통제관 문제는 그날 늦어서야 도착한 변호사가 떠안았습니다. 통제관은 사실관계를 갈무리한 문서에 내 사인을 요구했습니다. 괜찮다는 변호사의 말에 사인했습니다. 선물이라도 되는 듯 사본을 제게 줬습니다만 온통 포르투갈 말이라 저는 다행히 한 자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벨렘에서 사흘쯤 있었습니다. 몇몇 오래 승선한 선원이 휴가를 떠나고 새 선원이 자리를 메웠습니다. 식료품도 넉넉히 실었습니다. 우리는 재충전 후 새 마음으로 벨렘을 떠났습니다. 올 때와 반대로 날이 좋습니다. 바다도 잔잔합니다. 기대를 걸어봅니다.

 

근처 파라(Para)대학에서 이 지역을 연구해 온 닐스 박사가 탐사하고 싶은 지역을 꼽았습니다. 하구 한 가운데입니다. 첫 잠수이니만큼 산호가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일 겁니다. 다들 몸이 근질근질한 모양입니다. 도착하자마자 2인용 잠수정을 크레인으로 들어 올렸습니다. 선원들이 사방에서 밧줄을 잡아 흔들림을 잡습니다. 잠수정을 수면에 놓자 물 위 보트에서 기다리던 잠수부가 헤엄쳐 다가갑니다. 사방의 밧줄과 크레인 고리를 떼어냅니다. 잠수부가 물러서서 신호를 주자 잠수정은 ‘꼬르르’ 공기방울과 함께 물속으로 들어갔습니다.


한동안 소식이 없더니 음파를 타고 온 둔탁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영어가 모국어 아닌 저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잠수정의 보고를 듣는 사람들의 표정이 좋습니다. 잘 되고 있나봅니다. 잠수정의 위치가 모니터에 나왔습니다. 배와 거리가 멀어지면 음파를 주고받을 수 없습니다. 선장 조엘은 모니터를 보며 배를 움직였고, 저는 주변에 다른 배나 장애물이 없는지 살폈습니다. 잠수정은 30분이 넘게 수심 60~100미터 지역을 탐사하고 올라왔습니다. 진수할 때의 역순으로 잠수정을 회수했습니다.
 

 





잠수함 해치(뚜껑)를 열자 안에서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습니다. 닐스 박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조르르 달려가 카메라를 컴퓨터에 연결했습니다. 조바심이 나는지 마우스를 몇 번씩 두드렸습니다. 마침내 화면에는 깊은 바다 속 모습이 하나둘씩 나왔습니다.

호주나 필리핀 세부의 그것처럼 햇살을 받고 자란 형형색색 아름다운 산호는 아니었습니다. 먼지를 뒤집은 것처럼, 못생긴 물고기 아귀처럼 흉측했습니다. 깊은 광산에서 캔 석탄과 같이 어두운 바다에서 겨우겨우 살아내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산호는 거기서 이 지역 생태계를 지탱하며 물고기들의 쉼터가 되고 있었습니다.

 



에스페란자 호가 촬영한 아마존 하구 산호는 그 즉시 SNS는 물론 프랑스 르몽드, 영국 가디언 등 언론을 통해 전 세계에 퍼져나갔습니다. 세상에 나온 지 일주일 만에 브라질에서만 3만여 명이 이 지역 석유채굴에 반대하는 청원을 브라질 정부에 제출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의 석유채굴은 변함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석유가격이 오르면 채굴은 속도를 더할 것입니다. 에스페란자가 한 달 가까운 시간 동안 한 일은 간단합니다. 해저의 사진을 찍어 널리 보여준 것에 불과합니다.


존재한다는 것을 하나의 사실로 만들어 알리는 것은 중요합니다. 일본 후쿠시마 앞 바다의 해저를 조사하는 것 만큼이나 말이죠. 우리는 실제 존재하는 것을 모르고 살 때도 있고, 존재를 애써 외면하고 싶어 하기도 합니다. 석유회사는 산호지대를 외면하고 싶겠지요.
 

이번 캠페인은 외면하고 숨겨오던 산호의 존재를 알린 것입니다. 그로인해 사람들은 이 지역에서 석유를 채굴해도 되는지 거듭 다시 생각할 것입니다. 법정에서 작은 사실이 진범의 유죄를 결정적으로 증명하는 것처럼 이 곳에 산호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인류가 석유를 버리고 재생가능에너지로 탈바꿈하는 거대한 움직임에 두고두고 큰 동력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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