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가족 준비하는, 가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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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가족 준비하는, 가정동
  • 유광식
  • 승인 2017.04.14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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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유광식 / 사진작가
▲ 유광식_효정Apt에서 바라 본 중앙Apt. 101동 옥상 부분(당해년도 발파해체/ 잠 청하던 부엉이, 어디로 이사 갔을까?)_2013


작년 7월, 인천지하철 2호선이 개통된 이후로 서구 주민들은 예전보다 편리하게 이동 중이다. 때를 같이해 이사를 온 만큼 나 또한 매일 이용하게 되었다. 이제 서구는 남북의 방향으로 지상로에는 자동차(경인고속도로)가, 지하로에는 철도가 지나게 되었다. 그 가운데 지점인 서인천IC 부근에 가정동이 있다. 경인고속도로가 부평(혹은 인천)을 향해 굽어지는 곳. 변두리 같은, 산 밑 그곳으로 최근 루원시티(Lu 1 City) 도시개발사업이 10년의 공백을 깨고 착공에 들어간다는 소식이다. 봉수가 있었던 축곶산. 들판이 자리 잡던 그곳에는 이제 잡초 아닌 네모 반듯한 건물이 무성하게 자라날 것이다. 가정동은 현재 2/3가 벌건 토양이 노출되어 있는 시린 장소이다. 가정스럽지(발음상) 않은 이 모습은 바로 옆 아파트 단지 ‘e편한세상’과는 대조적인 이미지를 풍긴다. 들판은 루원시티 도시개발사업으로 인해 이미 오래 전 자취를 감췄고, 경인고속도로 직선화사업과 함께 청라로 뻗은 도로는 가정동을 남북으로 갈라 매섭기만 하다. 축곶산 위 봉수대, 낮에는 연기로 신호를 보내기 위해 들판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인데, 너른 들판은 시방 너른 공사판이 되고야 말았다. 가정1동 주민센터가 한복판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다.


▲ 유광식_효정Apt에서 내려다 본 서남쪽 가정지구(분주히 흙나르는 도시의 소꿉놀이)_2013


▲ 유광식_복도식 효정Apt 612호. 가정용 방송스피커와 열쇠꾸러미_2013


서구의 다른 구역들도 그러하듯이, 가정동도 산등성이에 빼곡히 집들이 자리한다. 조망이 한강변 아파트에서처럼 반지르르하지는 않지만, 서해 일몰의 보랏빛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과거 1980년대 초부터 많은 건물이 조성되었던 곳이 30년 정도 건물수명을 다한 후 루원시티 개발이 싹튼 게 아닐까. 이후 10년을 공친 사이 청라가 앞질러 진주인척 했고, 이제 와서야 착공한다고 하니 오랫동안 벗겨진 땅에 어떤 가족이 유입될 지 자못 궁금하다. 가정동에 대한 기억이라면 지인분의 이삿짐을 여기서 배다리로 옮겨 날랐던 적이 있는데, 어느덧 10년 전이다. 지도로 가늠하니 가물가물해도 생각이 난다. 정동진에 샘이 났는지 정서진이라고 명명된 가정중앙시장에서 맛난 도넛을 저렴한 가격에 먹은 기억과, 고속도로 위 철렁철렁 긴 육교를 통과(직선격이라 자동차들은 돌진하는 것처럼 느껴진다.)하던 일, 시원하게 굽이쳐 도는 서인천IC에서 나와 또 한 번 굽이쳐 돌던 가정오거리 지하차도, 그리고 뭔가 붕~!하니 떠있던 침체된 상가 분위기가 있었다. 한편 원적산 산중턱을 깎아 만든 한신 그랜드힐 빌리지는 계단식 빌라촌으로, 무려 40개동이나 자리한다.(마치 이륙을 준비하는 것처럼.) 이 곳 사람들은 얼마 후 그 옛날 천마가 비상했다던 착각으로 고층건물이 비상하는 장면을 목격할 것이다. 그 한편에 고개를 떨구며 서 있던 실국화 무리가 반갑기는 했었다.  


▲ 유광식_가정오거리 인근의 잔해(용치를 설치해 놓은 것처럼 경계의 분위기가 짙다.)_2012


요새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얼마 전 황사마스크를 선물 받았다.) 인근 공단과 자동차 매연으로 인해 가정동은 길목에서 시름시름 앓는다. 가정동은 인천 내에서도 그리 존재감이 있지 않고 지나치는 위치라서 사람이 없을 것도 같지만, 산비탈(아래도) 양지바른 곳곳에 어찌나 집들이 많은지 모른다. 그 중턱의 샛길을 걷는 건 어렵고 막연하지만, 그 위 원적산 둘레길을 따라 걷는 건 그 앞 풍경과 함께 그나마 먼지 걱정 덜 수 있는 걸음이다. 산으로 오를수록 지붕은 회색(슬레이트), 급히 지어진 다세대 빌라(간혹 예쁘고 멋진 이름이 있다.)의 지붕은 초록색(우레탄)이고, 한신 그랜드힐의 적기와(풍) 지붕, 작은 공장의 푸른 판넬 지붕과 더불어 이채롭다. 또한 주택밀집지역이라 소형트럭에서 야채방송이 자주 ON-AIR 상태다. 요즘은 건너 건너 슈퍼마켓이지만, 방송 따라 맛 따라가는 어르신과 식당들 또한 여전히 많다. 간석동에 살 적에는 아침마다 뜨거운 손두부 방송이 있었다.(이것도 10년 전이고 이젠 없다.) 근래에는 채널이 하나 늘었다. 바로 중고가전 구입 방송이다.(치열하다.)   

▲ 유광식_적벽돌이 인상적인 한신 그랜드힐 빌리지(저층이지만 무려 40개동이 즐비해 있다.)_2017


2013년 가정동 루원시티 사업지구 내 효정아파트(철거 이전)에 오른 적이 있다. 옥상에 올라 멀리 청라와 작은 실개천, 봉수대로 건설현장, 서인천IC 부근, 신현동, 축곶산(천마산) 등을 바라보고 내려오는 데 신 맛이 났다. 그리고 이사 나간 아파트 내엔 아이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겨졌는데, 어른들보다는 아이들의 기록이 훨씬 역사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얼마 후 그 건물은 이웃인 중앙아파트와 함께 철거완료의 상징격으로 발파되었다. 한 번은 그곳을 지나다가 접시 하나를 주웠다. 각종 경기를 하는 호돌이가 빙 둘러 그려진 대한항공사의 88서울올림픽 기념물이었는데(1988년도에 서울로 이사를 왔다.) 오늘날 내가 아련히 챙기게 되는 기념물이 되었다. 가정동 현장을 누비다 보면 전문적이지는 않지만 꼭 고고학자가 된 기분이다. 가정중앙시장역 앞 ‘콜롬비아 공원’을 보았을 때, 처음에는 그 모습에 의아했어도 뒤이어 공원의 역사 앞에 숙연해지곤 한다. 우리 사회는 6.25 세대들과의 관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변에서 듣기로, 인천은(특히 서구) 문화의 불모지라고 한다. 이 문제에 프로그램 부재, 접근의 불편이 지목되었다. 가정동 역시 곳곳에 단절이다. 문화공간은 부족하고 비탈면은 위험하고 그 중간 고속도로는 떡 자르듯 경계를 짓는다. 처음 서구문화회관을 육안으로 보았을 적(발견이 맞을 듯)에는 이렇게 크고 좋은 시설이 왜 숨겨져 있을까 하고는 의아스러움을 떨치지 못했다. 그러면서 무언가 불편해 보였다. 서구는 하반기에 서구문화재단을 출범시킨다. 시설관리공단과 문화원, 문화회관을 끌어 모아 문화재단을 구성하기로 계획했고, 얼마 전 시로부터 설립 ‘적정’ 평가를 받았다. 기존의 인력과 시설, 프로그램을 모아 우려낸다고는 하는데,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에는 불모지에 단비와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우범 아닌 출범을 기대한다.


▲ 유광식_가정동 산자락 서구문화회관(문화의 문턱은 높아만 보인다.)_2016


▲ 유광식_나이 쉰살이 다 되어가는 경인고속도로(서구를 직선으로 관통한다.)_2017


너른 들판 너른 공사판은 으레 그러하듯 이해관계가 얽힌다. 방패연을 만들 적에는 마지막으로 연줄 매듭을 짓게 되는데, 네 개의 줄을 길이대로 한 데 모아 잘 묶어야 균형을 잃지 않고 안정된 모습으로 멀리 날릴 수 있다. 잘 묶지 못하면 연은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끊어져 날아가 그날 밤을 산 속 나뭇가지 위에서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이해관계라는 것이 이와 똑같다. 요새 시나 국가가 여러 일들을 펼치면서 사람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만큼, 그들은 삶의 공간 조성과 사업결정과정의 투명화를 위해 더없이 노력해야 한다. 새로운 터를 닦고 건물을 지어 인간을 들이는 것이 어디 녹록하겠는가? 원적산에서 빨갛게 속살 드러낸 가정동 땅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누군가 휘저어 놓은 땅 같기도 하다. ‘LU 1’, 최고만을 외치는 사회는 언젠가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가정동은 발음만으로도 따뜻한 공간을 연상시킨다. 앞으로 어떤 사람들이 새 가정佳渟의 구성원이 될까? 떠났던 아이들이 다시 돌아오지는 않을까. 2017년 4월에 봄이 온다.


▲ 유광식_효정Apt 어느 집 아이방 벽면(이 아이의 우주가 평화롭다.)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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