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현장실습, 이젠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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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현장실습, 이젠 그만!
  • 나보배
  • 승인 2017.04.17 07: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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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칼럼] 나보배 / 인하대 융합기술경영학부 2학년
 

지난 1월, 한 현장실습생의 비보가 세상 밖에 퍼져나갔다. 고객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상담업무를 보던 실습생은 정작 본인이 겪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빗발치는 고객들의 욕설과 하루를 짓누르는 실적의 수치는 결국 낭떠러지로 몰고 간 것이다.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분노했고, 악습에 몸서리쳤다. 목숨마저 앗아가는 청년들의 일자리, 그곳서 버티어야하는 사회의 모순을 보면 너무나도 안타깝다. 7년 전, 필자가 실습생으로 학교 밖 사회에 첫 발을 딛었던 때, 그리고 1년 전 현장실습생에 대해 분노했던 때가 떠오른다.

 

7년 전, 고3인 나는 진학이 아닌 취업으로 진로를 결정하면서 현장실습을 수행했다. 해기사 자격면허를 위해서는 1년의 경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의무나 다름이 없었던 과정이었다. 혹독하기로 유명했던 현장실습이 남 일 같았다. 하지만 나도 결국 5주 만에 포기하고 학교로 돌아왔다. 당시에는 실습생에 대한 인식이 직업교육을 받는 교육생의 관점이 아닌, 말단 직원쯤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팽배했다. 실습생 기준에 맞는 교육은 커녕 단순 반복 작업과 고된 육체노동을 지시하는 일이 잦았다. 설거지와 식당 청소까지 도맡아했다. 2년 넘게 배운 이론지식은 현장에서 무용지물이었다. 그저 참고 버티는 것만이 허락되는 곳이었다. 견디기 힘들만큼 느껴진 자괴감에 우울증 증세가 오고 혼자 우는 일도 많았다. 해상 생활 특성상 잦은 배멀미에 피를 토하기도 했다. 몸도 마음도 지치다 못해 완전 무너졌다. 하지만 현장에선 그저 의지가 부족하고 나약한 사람으로 평가했다.

 

현장실습을 중도포기하고 돌아 온 학생은 역적 취급을 받았다. 당시 나는 중도포기를 이유로 무기한 징계와 더불어 학교 기숙사 문에 징계사유와 내 이름이 적힌 공고문이 걸리는 고초를 겪었다. 실습과정과 관련 없는 업무와 위험스런 작업 그리고 보장 받지 못한 휴식시간 등의 부조리에 대해 이야기해도 선생님들은 들어주지 않았다. 나는 그저 ‘부적응자’이자 학교의 명예를 더럽힌 ‘역적’에 불과했다. 해결되지 않는 억울함은 결국 자책으로 이어졌다. 또 한 번의 도전 끝에 1년의 실습과정을 마치고, 외항선사에서 4년간 선박 기관사로 근무했다. 4년의 시간은 억울함과 자책을 잊게 했고, 금전적 여유와 대학진학으로 보상받은 듯 여겼다.

 

그러던 중 작년 9월, 한 언론사의 기사를 보면서 잊었던 감정이 다시 떠올랐다. 열악하기 짝이 없는 실습환경에 대한 언론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교육기관과 중앙부처의 반응은 핑계와 궤변을 반복할 뿐이었다. 이에 대해 고교 동문 SNS에 거칠게 항의했다. 실습생이 겪는 부조리에 대해 학교의 책임이 크다는 주장을 했다. 결국 돌아오는 대답은 7년 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색깔논리로 해석해 빨갱이라는 소리까지 들어야했다. 동종업계에 몸담는 또래의 선배들이자 동료라는 사람들의 냉소와 비난에 크게 낙담했다. 하지만 서울의 한 단체가 내 활동에 대해 관심 가져준 덕에 유명 인터넷 언론사에 3편의 기획칼럼을 게재할 수 있었다. 보다 감정을 억누르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그 덕에 현장실습의 문제들에 대해 다시 한 번 대중들이 상기할 수 있었다. 국정감사에서 해양수산부 장관도 이 문제에 대해 인지하고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와중에도 내 주장에 비난의 목소리를 놓지 않던 사람들이 바로 일부 전·현직 해기사들이었다.

 

이번 콜센터 실습생의 비보를 계기로 교육기관의 책임이 대두되었다. 1997년, 직업교육훈련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직업교육훈련 촉진법’이 제정되었고 여러 차례 개정을 거듭해 권익증진의 취지가 강해졌다. 하지만 노동현장에서 청년들은 실습생과 비정규직으로 여전히 성취감이 아닌 고통을 겪고 있다. 인천의 경우도 교육부가 발표한 ‘2016 전국 특성화고 현장실습 실태 점검 결과’에서 현장실습 부당 적발 사례는 50건으로 전국 4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청소년노동인권조례도, 청년조례도 없는 도시다운 결과였다.

 

더 이상 실습생이라는 이유로 모든 것을 감수하라고 강요해선 안된다. 현행법인 직업교육훈련 촉진법이 잘 지켜질 수 있도록 기업과 노동자 그리고 노동부의 노력이 요구된다. 특히 특성화(전문계) 고교는 이번 일을 계기 삼아서라도 현장실습생을 실적의 수단으로 여기지 말고, 실습생의 권익을 대변하고 유능한 기능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해야 할 것이다. 필자가 겪은 7년 전의 암담했던 기억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았으면 한다.

 

홍수연양의 명복을 빈다.  



<SBS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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