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茶) 좋아 대만에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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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茶) 좋아 대만에 왔습니다
  • 박주현
  • 승인 2017.05.08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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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칼럼] 박주현 / 대만 중국문화대학교 교환학생


 

'차를 만들러 갑니다. 그래서 학교에 나올 수 없습니다.'

중간고사가 끝난 금요일이었습니다. 하늘은 맑았고, 날은 따듯했습니다. 그 날 저는 배낭을 메고 떠났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차를 직접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차(茶) 좋아 대만에 왔습니다. 교환학생으로 왔지만 학교에 가는 날보다 차 산에 가는 날이 더 많을 정도로 차를 좋아합니다. 어느 날은 하루 만에 몇 십 가지의 차를 마셔 잠들지 못하기도 했고, 차를 사는데 돈을 다 써 밥을 거르고, 먼 길을 걸어가야 하기도 했습니다. 봄차 시즌이 되어 직접 차를 만들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사방에서 봄의 냄새가 나는 듯 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기차를 타고 대여섯 시간을 달려 대만 중부에 도착했습니다. 대만 우롱차가 생산되는 지역, 난터우였습니다. 차 산에 가려면 그 곳에서 또 한참을 올라가야 했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시내를 조금 벗어나니 멋진 일몰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두근두근한 광경이었습니다
.

산길을 올랐습니다. 굽이진 돌길을 올라가다보니 해가 완전히 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주위를 밝히던 반딧불도 하나 둘 사라져 어느 샌가 한 마리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핸드폰 불빛 말고는 어떤 불빛도 없어, 모든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습기를 머금은 풀 냄새가 선명해졌고, 벌레들의 울음소리가 지척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미 어둠에 익숙해진 눈은 눈앞의 개구리와 벌레, 날짐승을 빠르게 좇았습니다. 뱀이 나오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는 동안, 등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습니다. 내 몸의 모든 감각들이 온전히 느껴졌습니다.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몸이 부르르 떨렸습니다.





저는 그 곳에서 꼬박 일주일 동안 차를 만들었습니다. 차를 따는 것부터 직접 만들어 맛을 보는 것까지. 한번 작업하는데 이틀을 꼬박 새야 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차 만드는 작업 하나하나를 눈에 담았습니다. 차를 다 만들고 난 뒤, 저는 흡족한 마음으로 학교에 돌아왔습니다. 베낭을 내려놓고 저녁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조금 늦게 눈을 떠 아침을 거르고 수업을 들으러 갔습니다. 생각해보면 별로. 바뀐 것은 없었습니다. 제 출석부에 결석 체크가 몇 개 생겼을 뿐이고, 책에서만 보던 일을 직접 해보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가끔 차를 따기 위해 갔던 그 밤의 새까만 길이 떠오릅니다.


생각보다 많은 갈림길을 지나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요. 보통은 모두가 걷는 큰 길을 걷지만, 가끔 사람이 잘 지나다니지 않는 샛길이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그 길 끝에 내가 좋아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꿈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적성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그것을 필요 없는 것이라 치부하기도 하지만요. 갈림길 앞, 선택의 순간입니다. 이 갈림길에 섰을 때, 우리는 고민합니다. 모두가 걷는 안정적인 길을 걸을 것인지, 일몰이 펼쳐지고 있는 모험의 길을 걸을 것인지요.


큰길을 벗어나는 일은 두려운 일입니다. 모험의 길은 생각보다 로맨틱하지도 않구요. 일몰은 금방 끝나버리고, 가로등 조차 없는 새까만 길이 펼쳐지기 일쑤입니다. 편의점이나 식당이 없는 것은 물론이지요. 가끔은 이 새까만 길이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는 길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들기도 합니다. 제가 산길에서 떨었던 것 처럼요.
 

그렇지만. 그 무서움을 알지만, 저는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걸어보았으면 합니다. 이 길을 걷는다고 해서 생각보다 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우리 사회가 '다름'을 '틀림' 이라고 말하는 사회이기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좋은 옷, 좋은 차와 집이 정답이라고 말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어쩌면, 그 정답을 좇느라 자신의 행복이 무엇인지 잊어버렸을지도 모르니까요.
 

저는 산에 올라 차를 만들면서 참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지금,

당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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