옅어지는 녹음(綠陰), 송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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옅어지는 녹음(綠陰), 송월동
  • 유광식
  • 승인 2017.05.12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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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유광식 / 사진작가
▲ 유광식_인천기상대 입구 앞 어느 주택(노후되었으나 아직도 기능한다.)_2007


송월동은 자유공원(서북쪽)과 인근 차이나타운, 철길 건너 만석동 사이에 존재하는 비탈면의 동네이다. 나름의 위치에서 마을전경을 조망해 볼 수 있는데, 한쪽은 근현대 양식의 집들이고 또 한쪽은 한옥 집들이 있으며 나머지는 아파트와 빌라 단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다랭이논처럼 층층으로 구획이 잘 되어 있고 집들 사이사이로 모세혈관격인 길이 산세를 따라 활성이 짙다. 송월동은 소나무가 많다는 골로 알려져 있다. 산촌의 시절을 보낸 내게도 소나무와의 마주침은 이젠 매우 드문 접견이 되었다. 인간은 장소를 기억하는 자신만의 좌표를 무의식적으로 심어놓는다. 그 좌표에는 길과 건물, 상점도 있고 언덕과 나무도 있을 것이고 소리도 있을 것이다. 이름만 봐서는 송월동에는 우거진 나무숲이 어울릴 만도 하지만 이곳엔 과거 힘겹던 삶을 스케치하던 주택의 숲뿐이다.   


▲ 유광식_비둘기어린이집 입구에서 내려다 본 송월3가(저 때의 스카이라인은 무너졌다.)_2010


사람들은 ‘송월’ 하면 타월을 연상하기도 한다. “혹시?”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인데, 이는 부산과의 연계일 뿐 인천 송월동과는 관련이 없다. 한편 동인천역은 용산발 직통의 도착점이라 인천역으로 가려면 내려서 전철을 갈아타야 한다. 나는 그 거리의 부담이 없어 간혹 철길의 원호를 따라 곧장 걸어가기도 하는데, 그 여정을 품는 곳이 바로 송월동이다. 인천 북쪽에 숨겨진 보물섬과 같은 인상을 풍긴다. 인천역과 동인천역 구간은 반원구간이라 열차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서행한다. 그래서 기차바퀴 소리도 그리 세지 않다. 따딱! 하지 않고 다닥! 다~닥! 한다. 그 운율을 따라 살고 계신 분들은 이젠 백발노인이고 음식이 되었다. 작지만 옛 건축형식을 고스란히 간직한 작은 중화요리집(송월시장 뒤)은 맛과 분위기 따라 간간히 찾는 곳이 되었다. 맞은편 백반집도 좋고 그 옆으로 은성여인숙은 옆집과 낮은 지붕을 쪼개 오래된 듯 내부가 궁금하고 말이다. 자유유치원을 넘어 옛 선주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던 무리지은 한옥집들 사이를 걷는다. 가지런한 길 양옆으로는 특색 있는 모습의 대문들이 눈에 띄고, 안에서는 이러저러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토닥거린다. 아이들은 길로 나와서 자전거도 타고 술래잡기도 하고 고무줄놀이를 하기도 한다. 볕 좋을 적엔 빨래들이 앞 다퉈 대문 앞으로 외출하기도 한다. 이럴 적엔 마음이 한층 간결해진다.



▲ 유광식_기상대 입구 앞 가게들(동네 어르신들의 아지트로 매일 붐빈다.)_2013

▲ 유광식_만석고가 아래 한 중화요리집 양념통들(시대를 가늠케 한다.)_2017


기상대 입구 옆 송월교회에서 내려다보면 멀리 끄트머리에 흰곰이 일하는 공장이 보인다. 최근에는 하얀 곰이 새 옷을 샀는가(밀이 상했는지) 청록색으로 옷을 갈아입었는데 옛 멋이 줄었다. 처음 디뎠던 송월동 지역은 우물의 흔적과 좁은 길 사이로 근대식 건물의 정취도 느낄 수 있었으며 멀리 항만을 배경삼아 선셋(해넘이)의 장면도 좋았다. 인향야간학교는 깊은 샘처럼 주택가 맨 안쪽에서 발견되었다. 간간히 길가에 나와 담소를 나누는 어르신과 아이들이 있다. 인근 차이나타운 호객의 시끄러움과는 다른, 차분한 대화의 장을 목도할 수 있었다. 문득 바라보다 정말로 시인이 지낼 수도 있는 동네구나 싶다. 송월동엔 다른 곳보단 (옛)부촌답게 넉넉한 자리를 확보한 집들이 많다. 그리고 어김없이 나무 한그루가 심어져 있기도 하다. 몇 년 전부터 우뚝 솟은 나무의 수를(딱히 많지도 않기에) 세어보는 습관이 생겼다. 2014년에 동화마을이 조성되면서 동네는 지역의 관광장소가 되어 있다. 동화마을은 송월동방앗간도 앗아갔고 2층짜리 기다란 노인복지센터 건물도 잠식했으며 어르신들의 평상도 치워내야 했다. 시간이 켜켜이 쌓인 그 곳이 대비 강한 색깔로 치장돼 뒤범벅된 상황이 쓰렸다. 자라는 아이들에게 인공의 색보다는 자연의 색을 입혀 주어야 하지 않을까? 소나무 찾기가(자유공원 산책로 기슭에는 젖소를 비롯해 얼룩말, 사슴, 원숭이, 산양 등의 플라스틱 모형이 부동의 자세로 노닌다.) 하늘의 별따기 마냥 어려워진 송월동. 한적했던 골짜기에 명작동화의 조형물이 하나둘 들어오고 나서는 왜 하필 동화마을이어야 했는지, 동네와 동화마을 기획의도간의 연관성이 있긴 한 것인지, 원주민들의 의견수렴은 어땠는지 이견들로 웅성거렸다. 뒤이은 지역사회의 목소리와 행동 또한 컸음이다. 해당 기초단체장은 반대의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부에서 주는 상을 받아와 뻔뻔스럽게 자랑(홍보)을 한다. 노후화된 양옥집들이 무너진 자리엔 하나같이 5~6층 다세대 빌라주택이 세워져 조망도 가리고 이웃의 모습, 생활도 가려져 점점 삭막해지는데, 주말마다 되풀이되는 그 놈의 동화마을 타령은 잘못된 마을재생 사례로 길이길이 남겨야겠다는 생각이다.(여러분 생각은?)  


▲ 유광식_성호빌라 뒤 방치된 적산가옥_2015

▲ 유광식_목욕탕 옆 송월방앗간(지금은 다방으로 변모되어 쌀 대신 커피콩을 빻는다.)_2011


▲ 유광식_동화마을의 주 무대격인 지붕 낮은 구)송월노인복지센터와 도로변_2011


기상대에 올라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 자유유치원 오른쪽 길로 구불부불 끝까지 걸어 내려오면 건너편의 송월시장과 송월아파트(유독 4동 건물만 없다.)를 만나게 된다. 시장과 아파트가 지금은 낡고 허름해 보여도 옛 한철의 이야기가 숨어 있는 듯 뜨겁다. 세월이 지나 이제는 이곳과 건너편 한옥이 있는 자리에 모두 주택재개발 바람이 스며들고 있다. 시장은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고 차츰 무너져 내리고 있다. 저층아파트에 가면 이젠 순전히 어르신들만 많다. 간혹 가난한 신혼부부가 둥지를 틀고 있을 것이다. 덧붙여 잇자면 요즘 사회적으로 혼자 사는 경우가 많아지다 보니 ‘혼밥 세대’도 다수 있을 것이다. 핵가족사회가 문제시되던 고개조차 넘겨 이제는 미세가족화 되었다. 보이지도 않는다는 초미세먼지처럼, 이웃에 누가 사는지 궁금하지도 않고 서로 모르고 살면 좋다는 분위기(결국 병폐겠지만)가 팽배하다. 그래도 인간이지 않은가? 살 비비며 노는 현장을 지나칠 수는 없는 법이다. 아파트 한쪽에 마련된 놀이터에 아이들은 많지 않다. 어른들은 아이 없는 세상을 원망한다. 무엇이 다르고 어떤 것들이 바뀌어 채워져야 할까? 말 안 해도 모두가 고민 중임을 안다.    


▲ 유광식_한옥 유형이 밀집되어 있는 송월1가 주택가 골목_2012

▲ 유광식_송월아파트(12동 11개동 건물, 4동 건물이 없다. 불신의 숫자인듯 하다.)_2011

▲ 유광식_일부 철거된 송월시장 건물의 단면(3층 구조로 내부는 좁고 긴 미로였다.)_2017

▲ 유광식_송월아파트 맞은 편 아이성인 복합쇼핑휴식 건물(우측 계단은 시간의 터널이다.)_2011


언제부터인가 매일 아침 창문 너머로 바깥 풍경을 내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가시적으로나마 미세먼지의 육안측정을 위해서다. 그런데 마스크를 준비해 두면서도 써야할 상황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우리 사회는 작년 말부터 미세먼지 못지않게 혼탁한 시기를 지나다가 조기의 도움을 받아 새 환경을 조성했다. 어느 청소노동자분의 ‘염병하네!’ 외침이 ‘뚫어뻥‘ 못지않은 효과를 내는 것을 보면서 이 사회의 기능을 믿게도 되었다. 지역의 이야기를 배제한 행정과, 치적 쌓기가 유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이에 호응하는 무리들 모두 이번 투표결과로 인해 심판을 받고 청산되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진득한 모습이었을 송월동 일대가 짧은 시간 내에 파헤쳐지는 꼴을 보면서 정말로 수건을 갖고 때를 밀어야 할 곳을 수첩에 적어 보게 된다. 다시금 오월, 송월에 소풍을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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