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는 자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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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자들을 위하여
  • 안정환
  • 승인 2017.05.15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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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칼럼] 안정환 / 해병대 병장·연세대학교 의공학부

  지난 21개월 동안 많은 사람들과 함께 했다. 전역으로 헤어졌고, 이제는 내가 떠나갈 차례였다. 힘든 일이야 많았지만 동기와 후임들에게 서로 의지하며 버텨온 순간은 인내를 배우고 나를 지탱하게 만든 힘이었다. 전역은 이 모든 기억을 하나의 선으로 압축해 추억 속에 차곡히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물론 사회와의 연결고리를 다시 맺고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군대에서는 전역을 앞둔 장병들이 제각기 사회생활을 준비한다. 누구는 아르바이트로, 누구는 복학으로, 누구는 여행을 계획하며 꿈에 부푼다. 군대의 과업을 모두 수행하면서 말이다. 물론 부대 특성에 따라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1주일 정도 기간이 주어지는 곳도 있지만 근무인원이 부족한 격오지나 다른 파견 부대는 전역 전까지 근무를 서다가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는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 군인이지만 그 전에 사회로 나가야하는 청년들이기도 하다.

 

해병대에서는 전역 예정 군인들을 위해 반기나 분기에 1번 취업박람회나 창업 강의들을 진행한다. 이 외에 타군들도 군 인프라넷 인터넷 강의나 야간대학 학업비지원 등으로 전역예정 군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돼 있다고 알고 있다. 전역 예정 군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단, 이것들은 대부분 간부 전역 군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고 사병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적응 프로그램들은 부대 자체적으로 주는 기간을 제외하곤 없는 편이다. 사회나 학교와의 괴리감은 그대로인 채 석방되듯이 전역하는 것이다.

 

최근 들어 군인 장병들의 월급인상이나 병영생활 환경개선 등의 복지차원에서 처우가 나아지긴 했으나 이후의 케어에 대해선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21개월의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했던 청년들이 사회로 다시 복귀해야할 때의 중압감이란 입대를 앞둔 청소년들의 근심만큼이나 두렵고 막막하다. 본인의 진로와 계획에 여러 어려움을 이겨나가는데 개인들에게만 맡길 것이 아니라 제도적인 구축으로 사회적응 시스템이 필요하다.

 

구체적인 예시를 들면, 제도적인 측면에서는 전역 후의 청년들을 지원자에 한해서 2주간의 진로교육 및 상담을 들 수 있다. 달리 군대 자체적으로도 부대 내의 전역을 앞둔 장병들의 계획을 고려해 여행이나 공부를 원하는 이들에게 사이버 지식정보방을 자유롭게 이용하게 하거나, 운동을 준비하는 장병들에게는 적절히 작업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또한 군대와 사회와 학교가 따로 개별적이지 않고 연계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정착된다면 장병뿐만이 아니라 군 입대를 앞둔 청소년들도 근 2년간의 공백에 자신의 진로를 걱정하는 마음을 한 시름 덜어줄 수 있을 것이다.

 

입대하기 전에 술자리에서 2~3살 더 먹은 형님들이 술김에 뱉은 말이 기억난다. 군대는 버리는 시간이고 전역해도 자신의 입지만 좁아질 뿐 좋을 거 하나 없더라. 이제는 나 또한 전역을 바라보고 있는 이 시점에서 내 후배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군대에서 배운 것들은 많지만 과연 사회에서까지 통용되는 것들이 있을까 불안하다. 부디 전역이 가까운 장병들을 고려한 사회적응 프로그램이 안착돼 군대에서의 21개월을 ‘버리는 시간’이라는 기존 통념을 희석시키고 청년들의 부담감을 덜어줄 활력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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