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종도 2천년 전 국제무역 중간기지였다"
상태바
"영종도 2천년 전 국제무역 중간기지였다"
  • 이혜정
  • 승인 2010.09.12 19: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술대회서 발표 … 교과서 개정해야 할 상황



취재:이혜정 기자

인천 영종도가 2천여 전인 기원 전후 시기에 동아시아 국제무역의 중간기지 구실을 했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10일 인천 중구 아트플랫폼에서 '영종도의 고고학'이라는 주제로 열린 학술대회에서 한강문화재연구원 박성희 실장은 "영종도는 기원 전후 시기에 무역을 위해 낙랑(평양)에서 출발해 가야(김해)나 일본을 향하던 선박이 거쳐가는 중간기지였다"라고 말했다.

박 실장은 "낙랑식 화살촉과 토기, 중국 화폐인 오수전(五銖錢)이 영종도에서 발견된 것이 그 증거"라고 덧붙였다.

그는 "전국 각지에서 발견된 낙랑식 화살촉 개수가 20개가 안 되는데 영종도 한 곳에서만 22개가 발견됐다"면서 "지금까지는 경남 사천 늑도가 기원 전후 한반도의 대표적 무역 중간기지로 인식됐지만 이번 조사결과를 계기로 영종도가 대표 기지인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영종도가 신석기 시대 유적지로 밝혀진 것도 이번 발굴조사 결과의 중요한 성과다.

영종도 발굴조사팀은 3년간 조사를 통해 영종도 전역에서 신석기 시대 주거지 150여개와 빗살무늬 토기, 갈돌, 갈판 등 신석기 시대 유물을 발견했다.

박 실장은 "대표 선사 유적지로 알려진 서울 암사동에 30여개 선사 주거지가 있다"면서 "암사동보다 5배나 많은 주거지가 발견된 영종도가 선사 유적지로서 대표성이 더 강하다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조사 결과는 지금까지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워왔던 내용을 뒤집는 것"이라면서 "영종도가 선사와 기원 전후 시대를 설명하는 기준으로 새롭게 설정돼야 한다"라고 밝혔다.

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이 주최하고 인천도시개발공사가 후원한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숭실대 사학과 최병현 교수를 비롯해 영종도 고고학조사 전문가 9명이 발표에 나섰다.

학술대회는 신석기시대부터 원삼국시대에 이르는 대표적 5개 유적에 대해 지난 3년간 발굴성과를 보고하고, 영종도 지역의 선사와 고대에 이르는 문화적 성격과 의미를 살펴보는 순서로 진행됐다.

대회를 준비한 김창수 인천학연구원 상임연구위원은 "이번 학술대회는 우리나라 중서부 지역 고대문화의 새로운 기준을 제공하게 될 것으로 평가된다"라고 말했다. 

운북동 2호 주거지 출토 오수전과 철경동촉. 기원 전후 영종도를 중간기착지로 한
중국 군현과 한반도 중남부 지역 간 활발한 교역과 교류를 증명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