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풍노도 같던 80년대,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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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풍노도 같던 80년대,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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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9.13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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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 다른 노소영과 송영길의 '솔직 토크'


노소영 관장(오른쪽)과 송영길 인천시장이 8일 '빛 접촉'이란 프랑스 출품작을 함께 만지며 웃고 있다.
이 작품은 두 사람 이상의 관객이 인터랙티브 공을 만지면 몸에 흐르는 에너지를 인식해 각기 다른 소리와 빛을 낸다.
만지는 사람들의 숫자와 건강·감정 상태에 따라 빨강·파랑·녹색 등 다양한 색깔로 변화하는 게 특징이다.
인천국제디지털페스티벌에 출품된 100여 점의 작품 중 하나다.  
 
'색깔'이 완전히 다른 '노소영'과 '송영길'이 만나 솔직하게 환담했다고 중앙선데이가 보도했다. 다음은 이 신문의 보도내용이다.
  
노소영(49) 아트센터나비 관장과 송영길(47) 인천시장. 1960년대 태어나 80년대 대학을 다닌 486세대다. 그러나 삶의 궤적은 완전히 달랐다. 대통령의 딸과 민주화 투사. 극과 극이었다. '독재 타도'를 외치던 송 시장이 학생운동·위장취업 등으로 수배당하거나 옥살이를 할 때 노 소장은 미국 유학(82∼91년)을 하고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결혼했다. 노 관장이 결혼 뒤 사회활동을 자제하고 교육·예술 분야에 빠져 있을 때 송 시장은 사시(94년)에 합격해 변호사 생활을 하다 정치권에 뛰어들었다. 공자가 천명(天命)을 알았다는 나이 50을 앞두고 전혀 다른 색깔의 486이 만났다. 계기는 인천 송도신도시 투모로우시티에서 열리는 '인천국제디지털아트페스티벌'(9월 30일까지)이었다. 노 관장은 '모바일비전-무한미학'을 주제로 열리는 이 페스티벌의 총감독을 맡고 있다. 두 사람은 예술과 경제, 민주주의와 통일, 건강, 인생관을 화제로 거침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대담 도중 송 시장은 "노 관장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고 싶다"면서 자신의 아이폰(KT)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러자 노 관장은 "(SK텔레콤이 채택한) 안드로이드폰이 아니네요"라며 미소를 지었다. 대담은 8일 저녁 송도파크호텔 뷔페레스토랑에서 1시간30분 동안 진행됐다.

 

-디지털 아트는 무엇인가.
▶노 디지털 아트는 밑으로부터의 소통, 개방, 민주성을 띠고 있다. 전시 작품들을 봐도 의료기구, 건축소재 등 다양하기 짝이 없다. 많은 아티스트는 저작권 소유에도 반대한다. 컴퓨터 프로그램 같은 소스를 공개해 모든 사람이 공유하자는 것이다.

▶송 디지털 아트란 작가와 관객이 소통하는 새로운 예술이라고 이해했다. 지금은 없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보다 소비자의 눈 높이에 맞춰 얼마나 편하게, 멋스럽게 만드냐가 관건이다. 예술도 상호작용과 창조성, 산업으로 연결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얼마 전 노 관장이 디지털 아트를 적용한 노래방을 만들고 싶다고 했는데 송도 신도시에 만들면 어떨까 싶다.

▶노 아직 협찬할 노래방 주인을 못 만났다. 그렇다고 내가 차릴 수도 없고.(웃음) 예술이란 삶과 생활을 풍요롭게 하고 업그레이드하는 것이다. 산업사회에서 지식사회로, 다시 창조 사회로 가면서 디지털 아트는 촉매나 매개자 역할을 한다. 신기술과 하드웨어를 인간과 가깝게 만들어 준다. 추석 연휴 때 자녀들과 함께 꼭 관람할 것을 권하고 싶다. 우리 세대는 책을 보고 자랐고 텍스트와 이론·이념을 중시했다. 하지만 네트워크(N) 세대는 지식의 흡수, 소통, 재생산 방식이 다르다. 이들은 오감을 통해, 더 나아가 영감·직감까지 동원해 세상을 총체적으로 인지한다. 그런 아이들이 디지털 아트 작품을 보면 어른보다 훨씬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다.

-예술을 통해 어떻게 지역경제를 활성화해야 하나.
▶노 예술은 더 이상 소비가 아니다. 사회간접자본이자 생산요소이고 창조산업이다. 영국 런던에선 5명 중 1명꼴인 200만 명이 창조산업에 종사한다. 50% 이상이 대졸자이고 85%가 5인 이하 사업장에서 일한다. 연평균 성장률도 7%를 넘는다. 창조산업은 광고, 건축, 디자인, 패션, 영화, 출판, 소프트웨어, 컴퓨터 게임 등을 망라하는데 약방의 감초처럼 디지털아트가 꼭 들어간다. 예를 들면 게임업체가 제품을 개발할 때 독특한 색감과 스토리를 넣는 것이다. 우리도 청년실업을 해소하려면 창조산업을 키워야 한다. 한·중·일 3국의 예술을 비교하자면 한국은 소통과 감정이 풍부한 편이다. 반면 중국은 대륙적이나 사람의 감정을 배려하는 맛이 약하다. 일본은 치밀하지만 기계적이다. 송도 신도시가 이런 틈새를 잘 활용했으면 좋겠다. 영상디자인이나 영화산업을 잘 앉히면 차세대 먹을거리 산업이 될 수 있다. 송도 신도시에 창의성을 키워주는 교육이나, 인테리어·가구·자재 등 건축의 모든 것을 망라하는 산업을 육성하는 것도 좋지 않나 생각해 본다.

▶송 인천은 바다와 하늘과 땅이 연결되고 통합된 지역이다. 팔도 백성이 모여 사는 곳이어서 개방성과 융합을 품고 있다. 하지만 철학과 스토리, 예술적인 측면이 부족했던 것 같다. 인천이 국제도시로 도약하려면 2014년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아시아 각국 문화가 인천에서 제각각 살아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서 하나로 융합해야 한다. 미국의 한인타운, 중국의 조선족 사회가 좋은 사례다. 인천에는 6만4000명의 외국인이 살고 있는데 그런 작은 커뮤니티들을 활성화하겠다. 송도 신도시는 1500만 평인데 20조원 이상을 투입했다. 상상력을 가지고 차근차근 개발하되 정치적 쇼를 위한, 실행 불가능한 프로젝트를 하지 않겠다. 정보기술(IT) 관련 기업들을 많이 유치하고 싶다. 예술과 문화도 중요하다. 뉴욕 맨해튼이 월스트리트만으로 유명해진 것은 아니다. 센트럴파크와 박물관이 있고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사람이 송도에 와서 마음껏 창의성을 발휘하는 곳으로 만들겠다.

-정치인 송영길, 행정가 송영길은 어떻게 다른가.
▶노 송 시장에 대해선 그동안 잘 몰랐다. 솔직히 정치에 관심도 없고 정치 관련 뉴스도 보지 않는다. 그런데 송 시장이 디지털 아트 행사장에서 직원과 관람객, 꼬마들까지 챙기고 악수하는 모습을 보면서 서민적이라고 느꼈다. 마음이 열려 있고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것 같다.

▶송 책임감과 고민하는 각도가 달라진 것 같다. 국회의원을 할 때보다 모든 분야에 걸쳐 더 큰 책임감을 느낀다. 태풍이 불고 폭우가 내리면 제대로 잠을 잘 수 없다. 거대담론을 생각할 시간은 줄어든 대신 서민생활이나 추석 물가, 장애인 복지 등 구체적인 사안에 집중하게 된다.

-80∼90년대는 질풍노도 시대였다. 두 분의 삶이 많이 다른데 486세대에게 무엇을 남겼다고 생각하는가.
▶송 식민지와 분단, 전쟁을 겪으면서 한국은 60년이란 짧은 시간에 산업화와 민주주의를 이뤄냈다. 전 세계를 다녀봐도 그런 나라는 거의 없다. 대우 옥포조선소에 간 적이 있는데 옥포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첫 해전을 치른 곳이다. 이순신 장군이 세계 2위 조선소가 들어선 옥포를 본다면 얼마나 감개무량할 일인가. 우리 세대는 각기 다른 주장과 입장이 있었지만 억압과 예속을 벗어난 자유로운 시대를 만들려 했다. 이제는 애들과 많이 소통하려 애쓴다. 딸은 재수생이고 아들은 중3인데 요즘엔 세븐이나 레인보우 같은 젊은 가수들의 노래도 조금씩 이해된다. 행사장에 나가면 중·고교 학생들과 사진도 찍고 트위터도 한다.

▶노 과거는 중요하지 않다. 미래를 얘기하고 싶다. 내게 20대는 암울한 시기였다. 마치 유배(exile)당했다고나 할까. 내가 선택한 삶은 아니지만 9년간 외국생활을 하면서 배운 것도, 본 것도 많다. 서울대 공대 입학(80년) 직후 등 뒤에서 손가락질하는 것을 느껴 학교를 제대로 못 다녔다. 그때 불평등 문제를 많이 고민했다. 그래서 경제학, 특히 노동경제학에서 해답을 찾으려고 했다. 빈부격차는 왜 생길까? 20대의 고민이었다. 그래서 얻은 결론이 교육격차였다. 교육에 관심을 갖다가 인적 자본의 요소인 창조성에 주목했다. 어떻게 하면 인간이 자신의 잠재력과 창조성을 개발하고 나눌 수 있을까? 그런 관점이 예술로 이어져 왔다.

▶송 전직 대통령의 딸이자 재벌가의 사모님이란 선입관을 갖고 있었는데 젊은 시절에 불평등 문제를 고민했다니 정말 뜻밖이다. 노 관장이 디지털 아트를 통해 대중과 격의 없이 소통하는 모습이 저절로 나온 것 같지 않다.

-타임머신을 타고 80년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최근 조사를 보니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답이 가장 많다고 한다.
▶노·송 돌아가고 싶지 않다.(웃음)

▶노 유학을 가지 않았다면 아마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지 않았을까? 요즘엔 학교도 나가고 디지털아트를 하면서 잃어버린 청년기를 되찾는 기분이다.

▶송 나는 사실 외국 유학도 하고 많은 나라를 돌아보고 싶었다. 어릴 때 꿈은 외교관이었다. 외국어도 열심히 공부하고 다양한 경험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학생운동을 하느라 그런 것들을 못한 게 무척 아쉽다.

-요즘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나.
▶송 날마다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이 순간에 충실하게 살려고 한다. 매일 아침 살아온 날짜를 헤아려 왔는데 오늘은 1만7338일째다. 오늘 내게 주어진 삶에 감사한다. 바쁘다 보니 가족에게 미안할 때가 많다.

▶노 지난해 큰 병을 앓고 난 뒤 어떻게 하면 잘 죽을까 생각해 본다. 그렇다고 슬프거나 우울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나는 기독교를 믿는데 죽음을 생각하면서 삶을 더 소중히 대하는 것 같다. 요즘엔 고민보다 바람을 많이 갖게 된다. 폭력 없는 사회, 개인이 행복한 사회, 남을 배려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건강 관리는 어떻게 하나.
▶노 일주일에 두세 번 수영을 하는데 한 번에 두 시간, 3㎞ 이상 한다.

▶송 집에서 지하철을 타러 가면서 20분간 걷고 시청 앞 헬스에서 30분쯤 뛴다. 조찬 모임이 있는 날이면 그마저 할 수 없어 아쉽다.
-정치권에서 화합과 통일을 많이 얘기하는데.

▶송 이제는 탈(脫)이념 시대다. 남북 문제도 있는 사실 그대로 볼 필요가 있다. 북한 체제가 붕괴되더라도 통합을 이루려면 30년 이상의 긴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가 새터민과 다문화가정을 융합시키는 훈련을 쌓아야 한다. 북한 주민이 어느 정도 살게 해줘야 화합과 통일을 얘기할 수 있다. 피를 나눈 형제끼리도 격차가 너무 벌어지면 한자리에 모이기 힘들지 않은가.

▶노 얼마 전 영국 회사에서 한국 직원을 뽑으려고 인터뷰를 하면서 ‘리더십이 무엇이냐’고 물었는데 아무도 제대로 대답을 못했다고 한다. 리더십이 뭔가. 남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고 자신을 낮추는 것 아닌가. 남 앞에 서는 것만 리더십이 아니다. 아이들을 점수경쟁으로 내모는 교육으론 안 된다. 통일 역시 여러 가지로 앞선 우리가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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