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처럼, 화수·화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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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처럼, 화수·화평동
  • 유광식
  • 승인 2017.07.14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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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유광식 / 사진작가
▲ 유광식_냉면골목 내 병원이었던 건물외벽에 그린 수채화 그림(그림의 주인공은 화평동 박정희 그림할머니로 알려져 있다.)_2015


최근 동인천-용산간 특급열차가 다니기 시작했다. 그 동안 서울을 다닐 때 급행열차를 주로 이용했는데 이번 특급열차로 10여분 더 빠른 이동이 가능해졌다. 동인천역은 인천이라는 정체성을 출발과 도착으로 묶어주는 중요한 위치지만 역사는 전면에 늘 ‘새롭게 태어나겠습니다.’라고만 선전하며 언제쯤 새로 태어날지 시간만 재고 있어 답답할 노릇이다. 북광장으로 나가면 대형 LED전광판 아래로 어르신들이 작동소음을 감수하고 비둘기들과 그늘을 나눠 쓰고 있다. 그 풍경을 무심히 지나 화도진도서관 방향인 북서쪽으로 올라가 본다. 

화평사거리를 지나 언덕길을 오르면 좌측이 화평동, 우측은 화수동이다. 화평동 냉면골목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인천의 음식거리이다. 15년도 더 지난 시절로 돌아가 보면, 행사 후 식사를 냉면으로 대신했는데 정말이지 많은 양에 놀랐고 내 입맛에는 아니구나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이전보다 늘어난 건 사람들 대신 자동차 같지만 여전히 면요리의 메카다운 면모는 이어지고 있다. 둘 다 이름이 참 곱다. 화수동엔 물 먹은 한 무리 꽃잎처럼 새초롬히 강인함이 존재하듯 옹기종기 집들이 묶여 있다. 기름집, 철물점, 선술집, 분식집, 노점을 보며 오르다 보니 어느새 화도진공원을 지나 도서관에 당도한다. 화도진도서관은 인천 시내의 다른 도서관들에 비해 향토자료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근대의 엽서자료는 나의 관심자료가 되었다. 이곳에는 바쁘게 살아온 시절을 뒤로하고 학창시절(사춘기) 공부하며 꿈꾸던 시간의 세련미가 어려 있다. 그래서인지 지하 매점에서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미묘한 느낌이 들곤 한다. 한편 가까이 지내는 지인 한 분은 이 도서관에서 자료검색과 독서를 많이 하는데, 간혹 이곳이 약속 없이도 만남의 장소가 되곤 했다. 


▲ 유광식_화평운교 지나 화수시장 입구 거리_2017


남쪽 화평사거리와 북쪽 화수사거리 사이의 지역이 화평동과 화수동이다. 그 중간 서쪽 언덕배기에 화수자유시장과 화수아파트가 있다. 화수자유시장 안쪽은 돔 형태의 모습이어서 그 공간적인 형태가 내 가슴을 뛰게 했지만 지금은 그 영화로움을 볼 수 없어 아쉽다. 그 앞 화수아파트가 그래도 우람하게 서 있긴 하지만 건물수명이 나의 마흔 나이와 맥을 같이하여 이 아파트도 곧 이삿짐을 싸야할 처지 같다. 화평운교의 평범한 모습을 한 번 흘깃하고서는 서쪽으로 걸어 화도고개로 들어서 본다. 화도고개 길은 이곳이 정말 현대적 시간을 거부하고 있는 듯한데, 영화세트장도 아닌 것이 심히 오랜 세월을 끊임없이 얘기하는 것 같다. 장사하는 분들의 호객하는 소리처럼 자글자글 말이다. 그 고개 끝에 서면 바람 한 아름 안고 고민이 시작된다. 길이 다섯 갈래나 되니 미리 목적지를 준비하지 않았다면 천상 관광객으로 노출되어 CCTV의 주연급 표적이 될 것이다.    


▲ 유광식_화수동 미륭아파트(30년 가량 된 단정한 아파트)_2015

▲ 유광식_화평운교 아래쪽 화수아파트(1978년 건축하여 오늘날 40년 된 고령의 아파트다.)_2014


화도교회, 기름집, 치킨집, 국수집, 연탄집, 미용실, 비디오만화가게, 이발소, 세탁소, 동사무소 등 많은 생활공간들이 포진되어 있는 화수동. 화도교회의 웅장하고 신기한 모양새 뒤로 가면 멀리 북항의 모습과 청라가 보이지만 이곳엔 피난민들의 행렬이 많았던 만큼 가까이 북한에 대한 망향의 탑처럼 화도교회는 묵묵히 고갯마루를 지키고 서 있다. 이곳도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주택재개발 공시가 되어 있다. 고개 넘어 좀 더 내려가면 화수의 ‘수’에 대한 의문점이 풀리는 장소에 도달한다. 쌍우물이 있는 곳인데, 이곳에서 꽃이 많이 필 것도 같다. 지금은 우후죽순 빌라들이 피어 있지만 말이다. 화수2동 주민센터 쪽의 줄사택과 한옥, 맨션, 빌라들 사이를 걷다 보면 언덕의 고저차가 주는 리듬감을 맛볼 수 있다. 자동차 통행이 택배트럭 말고는 많이 없어 거닐기 좋다. 화수사거리를 지나 두산인프라코어를 돌아야 나오는 화수부두는 네 발 자동차 없이 가기는 좀처럼 힘든 곳이다. 1년의 반을 배에서 지낸다는 선장님의 사모님이 운영하는 대복호에서 몇 번의 바다밥상을 먹기도 했다. (양철 양동이에 소주와 맥주를 푸짐히 넣어 준 것이 인상적이었다.) 


▲ 유광식_화도교회 뒤쪽 골목과 어느 주택_2015

▲ 유광식_만석초 후문 앞 무아문구 옆 빈집 표식_2015


화도진중학교를 지나면 미륭아파트가 나온다. 이 5층짜리 단지는 약간의 풍채가 돋보이는데, 길 건너 공장지대가 문제지만 조용하고 아늑해 보인다. 작은 평수가 있어 주택재개발 진행으로 인한 주변 어르신들의 이사가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 고향을 떠나기 싫은 건 모든 이의 기본 셈법이다. 근처 다른 아파트에도 속속 옛날 시간의 존재(어르신들)가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어디 한 번 찾아볼까라는 모험심이 발동해 혼자 웃게도 된다. 화수동이나 화평동이나 지명에서 주는 안정감이 있다. 사람들의 심성도 그럴 테지만 그보다는 산책자의 기분일 심산이 크다. 여전한 허름함과 위태로움, 퍽퍽하고 빼곡함은 굳이 설명이 없어도 노출된 풍경이 말해 준다. 과거 이곳에 머리방과 도둑이 많았다고도 한다. 물 머금고 자라는 꽃도 꽃이지만 머리방 들러 나오며 피는 기분이야말로 보다 화사한 꽃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를 시기하듯 도둑은 악연일 테고 말이다. 그 근처에는 주연급인 민들레국수집이 있다. 어려운 이웃들의 작은 음식 나눔의 장소인데, 2007년 서영남 수사님을 만나 인사를 나눈 적이 있다. 동그란 안경과 더불어 꽃 미소가 인상적이었다.  


▲ 유광식_화수동 미륭아파트상가(외벽에 쓰여진 문구가 이채롭다.)_2015

▲ Busybeeworks_화도교회 앞 민들레국수집(현재는 가까이에 시설을 확장하였다.)_2007


마을은 시끄럽다. 사람이 늘고 북적인다기보다 개발소문에 따른 동요와 분개가 있다. 최근 삼두아파트 주변에 <화도진중-인천송현초-삼두아파트> 지하를 관통하는 수도권 제2순환고속도로 건설에 의한 것으로 의심되는 싱크홀이 여러 곳 발생했다. 더 이상의 지명다운 분위기는 기대하지 못할 것도 같다. 미륭아파트 상가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 ‘휴식의 공간’. 그런데 현실은..? 고개를 떨구고 송현동 방향으로 걸어가다 보면 나이와 국적을 의심케 하는 마트 하나가 나온다. 'SDMART'. 간판을 차근히 헤아려 보면 삼두아파트 앞 삼두마트다. 재빨리 'MART'가 아닌 'ART'로 읽고선 피식 웃는다. 


▲ 유광식_삼두아파트 앞 삼두마트_2015


척박한 곳에서도 잘도 피어나는 민들레처럼 화수동과 화평동 또한 피어난 삶이 끈질기다. 크게 내세워지지 않지만 좀 더 견뎌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던져두게 된다. 동네는 깊게 뿌리 내릴 것이다. 이곳의 주인이 바뀌고 언덕들이 어느 날 사라져 있다고 해도 어떤 이들에게는 여전히 천진한 민들레 웃음 같은 고향으로 기억될 동네임을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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