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이웃에게 한가위는 더 쓸쓸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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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이웃에게 한가위는 더 쓸쓸할 뿐…
  • 이병기
  • 승인 2010.09.20 0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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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함께 살 수 있는 날은 언제쯤 오려나!


조성환씨가 살고 있는 남구 학익동 판자촌.
뒤편으로 자원봉사자들이 그린 벽화가 보인다.

취재: 이병기 기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이 다가왔다. 1년 내내 배를 곯던 시절에도 추석만큼은 평소보다 넉넉히 배를 채울 수 있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보는 친척들은 서로 반갑게 이야기꽃을 피웠다. 

지금까지도 추석은 설날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명절이다. 집집마다 명절 음식을 마련하고 송편을 나눠 먹는다. 고속도로는 성묘를 다녀오는 차들로 북적인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즐겁게 추석을 맞이하지는 않는다. 멀리 볼 필요도 없이 우리 동네 한 켠만 봐도 피붙이 하나 없이 쓸쓸하고 외로운 명절을 보내는 이들이 있다.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하며 사는 이들에게 추석은 그냥 '빨간 날'일 뿐이다.

자식이 있어도 '홀몸'인 이들…명절은 '쓸쓸하고 외로워'

조정기 할머니지난 16일 인천시 중구에 위치한 성 미가엘 복지관에서 할머니 세 분을 만났다. 이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책 한 권을 읽은 듯하다.

"명절이 오니 쓸쓸하고 외로운 생각이 더 들지. 맘이 편치 않아. 씁쓸해. 집도 없고 절도 없이 사글세방에 사니 더 그래."

조정기(82) 할머니는 전동에 위치한 15만원짜리 월세방에서 혼자 산다. 얼굴에 가득한 잔주름이 할머니의 세월을 말해준다.

"혼자 산 지는 7~8년 됐어. 남편은 죽고 아들이 두 명 있는데, 큰 아들은 사업에 실패하고 신용불량자가 됐지. 작은 아들은 몸이 아프고. 다 나가서 살아. 동사무소에 사정을 얘기하니까 돈이 나와. 그나마도 작은 아들 병원비에 쓰라고 조금 줘."

조 할머니는 1~2년 전부터 박스를 줍고 있다. 몸이 불편해 매일은 못하지만 꾸준히 하고 있다. 할머니 말로 '여러날' 박스를 모아 번 돈은 2천~3천원 정도. 조 할머니는 이 돈으로 "커피도 사 먹고, 부탄도 산다"고 한다.

할머니 집에는 가스가 없다. 집에서 밥을 먹어야 할 때면 휴대용 가스렌지를 쓴다. 여러 날 박스를 주워 모은 돈으로 부탄가스를 사서 불을 피운다.

자식이 있는 큰 아들 역시 부모를 챙길 형편이 되지 않는다. 몸이 불편한 작은 아들은 오히려 어머니에게 병원비를 도움받는다. 추석이 와도 아들 집에서 밥 한끼 먹고 오는 게 명절의 전부다.

"자기 전에는 '오늘 저녁에는 죽을라나' 해. 그러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아직 살았구나' 하고 사는 거야. 누가 도와줄 사람이 있나, 병원비가 있나. 건강하게 잘 있다가 조용히 죽는 게 제일 낫지."

윤순옥(77, 송월동) 할머니 역시 혼자다. 1979년부터 30년 넘게 혼자 살고 있다. 군인 장교였던 남편은 도박에 빠져 퇴직금을 날렸다. 이혼은 불가피했다.

하나 있는 아들은 명문대를 나왔지만, 데모를 해 취직을 못했다고 한다. 다행히 학교 선생인 아내를 만나 아이를 키우고 있지만, 벌이가 없는 가장은 집에서 눈칫밥 신세일 뿐이다. 윤 할머니는 "아들이 처가집에서 XX 노릇만 한다"라고 한탄한다.

"2002년부터 배급(기초생활수급비)이 끊겼어. 자식이 있어서 그런가봐. 하지만 아들이 보태주진 않거든. 며느리 혼자 벌어 아이들 학원이다 뭐다 쓰는데 무슨 돈이 있겠어. 남들 다 받는 9만원 가지고 한 달 사는 거야. 점심은 여기서 먹고 저녁은 소망의 집에서 먹어. 이곳에 올라오는 것도 다리가 아파 월수금은 동사무소에서 먹지."

윤순옥 할머니가 먹는 약은 무려 8종류다. 뇌종양 약부터 시작해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남들 다 받는 9만원에서 병원비를 내고 나면 남는 것은 먼지 뿐이다. 2002년까지는 아동지킴이를 하기도 했지만, 뇌종양으로 쓰러지면서 지금은 몸을 움직이는 것도 힘겹다. 윤 할머니의 지난 석 달 간 가스비는 모두 합해 1610원이다.

김윤태 할머니"지금은 벌지도 못하니까 1년 열 두 달 과일 하나 못 먹어. 반찬도 하나 없어 남들이 버린 곰팡이 핀 묵은지 갖다 먹으며 살아. 한 달에 30만~40만원 받는 사람은 부자야. 난 지금 9만원에 딱 10만원만이라도 더 줬으면 좋겠어. 아들은 전화하면 한숨만 쉬고. 어떤 때는 울기도 해." 

자신이 우는 얼굴이 알려지면 혹여라도 며느리가 피해를 입지 않을까 싶어 사진 게재를 만류한다. 윤 할머니의 추석 역시 아들 집에서 밥 한끼 먹고 오는 것이 전부지만, 처가집에 가야 하는 며느리 눈치에 맛이 날까 모른다.


세 할머니 중 가장 고령인 김윤태(84, 전동) 할머니는 자식이 6명이나 되지만 처지는 다른 이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학고방'에 산다는 김 할머니는 올해로 혼자 산 지 42년째다.

김윤태 할머니도 4년 전까지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돼 매월 40만원 가량을 지원받았다. 그러나 4년 전부터는 딸의 취업으로 보조금이 12만원으로 줄어든 상황. 몸이 아픈 딸은 직장을 그만뒀지만 보조금은 그대로다.

6남매 모두 시집 장가를 보냈지만, 세 딸은 결혼에 실패해 혼자, 혹은 친구와 함께 산다. 월세방에 사는 아들 역시 부모를 도울 형편은 되지 못한다고 한다. 할머니는 매 끼니를 복지관에서 해결한다.

명절때는 자식들 집에 가서 밥 한끼 먹곤 했지만, 지금은 가는 것도 힘들다. 그나마 복지관에서 주는 10kg 쌀과 겨울에 건네는 석유로 위안을 삼는다.

다시 바다로 나가고 싶은 마도로스의 꿈


임상윤 씨

방 문을 열자 곰팡이의 쾌쾌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천정 구석구석에는 검게 핀 곰팡이들이 자리잡고 있다. 침대와 서랍 하나가 살림의 전부였다.

임상윤(54)씨는 뇌병변 장애 3급이다.

통영이 고향인 그는 계모 밑에서 살다가 구박을 견디지 못하고 13세에 집을 나왔다. 어린 나이 남의 집에서 머슴을 살다가 스물이 못 된 나이에 처음 배를 탓다. 이후 30년간 배를 타며 어깨 넘어 기술을 배우고 5급 기관장에 올랐다.

그러나 지난 2007년 항해 중 사고로 머리를 다친 이후 그의 삶은 엉망으로 변했다.

"그날은 파도가 높아 배가 나가면 안 되는 날이었어요. 선장이 무리해서 나가다가 큰 파도를 만나 배 안에서 사고를 당한 거죠. 그때 빨리 병원에 와서 치료만 받았어도 이 정도까지는 되지 않았을 거예요. 머리를 다치고 17시간 만에 인하대병원으로 왔으니까요. 선장이 원망스럽죠."

20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이미 두 아이가 있는 여자였지만 서로를 아끼게 됐고, 그의 나이 33살에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즐거운 시간도 잠시. 6년 전 사랑하는 아내를 간암으로 먼저 보내고 2년 후 머리를 다쳤다.

아내가 죽은 후 아들들은 그와 아내의 재산을 자신들의 명의로 돌렸다. 그동안 모아 둔 재산은 지금은 남이 된 아들들의 사업비로 날라갔다.

사고를 당한 후에도 불운은 계속됐다. 지인의 소개로 만나 마음을 준 여성에게 몇 개월 사이 보상금의 절반을 빼앗기다시피했다. 그 여자 집에서 거의 감금되다시피 생활을 하다가 겨우 빠져나왔다고 한다.

임씨는 "어차피 죽었을지도 모를 목숨인데 돈이나 원 없이 써보고 죽자"면서 인생을 포기했다. 괴로운 마음에 불법 게임장에 다녔고 2천만원이 넘는 돈을 날렸다. 후회는 언제 해도 늦는 법이었다.

그에겐 명절이 되면 생모가 살아 있고 여동생이 한 명 있어도, 아내만 생각난다. 가족이 남보다 못하다고 말한다. 그가 몸이 성했을 때 생모는 용돈을 주는 아들을 반겼지만, 다친 이후 찾았을 때는 차갑게 외면했다.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몸 한 쪽과 맞바꾼 보상금은 이제 곰팡이 나는 방 한 칸의 전세금으로 남았다. 다행히 국가에서 나오는 보조금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추석이 됐지만 만날 친척도, 풍성하게 차려진 음식도 그에겐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임씨는 "배를 다시 타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30년 동안 함께한 바다로 나가고 싶어 했다. 바다로 나가 돈을 벌어 노후를 고향에서 보내고 싶다고 소망했다.

"적어도 굶어 죽진 않으니까…"


조성환 씨

남구 학익동 598-6번지 일대는 무허가 집들이 빼곡히 들어찬 판자촌이다. 사람 두 명이 어깨를 맞대고 지나가기도 비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집들이 늘어서 있다. 재개발을 앞둔 이곳에 조성환(74)씨의 구멍가게가 있다.

구멍가게 안쪽 허름한 방 하나가 조성환씨와 아내의 보금자리다. 그리고 같은 판자촌 내, 걸어서 1분 거리에는 그의 아들과 손자가 살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현재는 조씨의 손자만 살고 있다. 그의 아들이 또 정신병원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정신이 있을 때는 멀쩡해. 점잖고. 그러다가 이상해지는거야. 남의 집 보일러 선을 끊기도 하고, 여자 돈을 뺏기도 해. 부모도 몰라봐. 가게 앞에서 '네(아버지)가 병원에 보내서 내가 이상해졌다'면서 날 눕혀놓고 때렸어. 동네 반장이 와서 말렸지. 병원에 안 보낼 수가 있나."

조씨에 따르면 지난 1995년 잇따라 사업에 실패하고 아내와 이혼까지 하면서 아들의 정신이 이상해졌다고 한다. 하나  있는 손자는 이혼 후 며느리가 데려갔지만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때부터 조씨의 손에 자랐다.

병원에 가 있는 둘째 아들 말고도 세 아들이 더 있었지만, 한 명은 어릴 때 목숨을 잃고 지금은 3형제만 남았다. 두 아들 역시 형편이 어려워 부모를 돌볼 처지가 못된다고 한다.


 조씨의 손자가 혼자 살고 있는 집에는 연탄보일러가 방 옆에 있어 가스가 샐 우려가 높다.

"수급자로 돼서 생활비가 40만원 나와. 둘째가 어떻게 알고 통장을 막 내놓으라고 하는 거야. 뺏길까봐 손자 앞으로 해놨지. 돈은 손자가 관리하고. 아내와 나는 여기(구멍가게)서 뜯어먹고 살아. 동네 사람들 상대로 하는데, 하루에 2만원 벌 때도 있고 3만원 벌 때도 있어."

조씨는 둘째 아들도 걱정이지만,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중인 손자가 대학에 가고 싶어해 고민이다. 마음 같아서는 열번이고 보내주고 싶지만, 형편은 그렇지 못하다.

당장은 올 겨울이 문제다. 손주가 사는 집은 연탄보일러로 난방을 하고 있는데, 보일러실과 방 사이 문이 낡아 연탄가스 냄새가 방까지 들어온다고 한다. 집에 들어가면 입구에서부터 가스냄새가 난다. 복지관에서 가스가 들어오지 않도록 새로 문을 달아준다고 해 기다리고 있다.

"바라는 거는 없어. 지금도 동사무소에서 나와 벽지도 발라주고 장판도 깔아줬거든. 복지관에서도 도와준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와서 조사하고 형편 얘기도 들었어. 내가 돈을 잘 벌어서 애들 아파트도 사주고 그랬어야 덕을 볼텐데…
. 그렇게 못했으니 바라지도 않아. 적어도 지금 굶어죽진 않으니까."

조씨는 "두 식구가 많이 먹지도 못한다"면서 명절 음식은 필요 없다고 했다.

용현시장, 대형마트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


용현시장

"내 생각엔 해마다 5~10%는 사람이 줄어드는 것 같아. 시장 주변에 4곳의 주차장이 있긴 한데, 도로변이 아닌 안쪽에 있어서 사람들이 불편해 하거든. 추석때면 구청에서 좀 봐줘야 하는데, 딱지는 다 끊어. 상품권도 올해는 딱 한 장 받았다니까. 대형마트 들어오면 진짜 지장이 많겠지. 그쪽 동네(숭의운동장 부근)에서도 사람들이 오는데, 마트가 생기면 오겠어?"

남구 용현시장에서 10년 넘게 생선장사를 하는 한 상인의 말이다.

남구 용현동에 위치한 용현시장 상인들은 대목인 추석을 앞두고도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 인천시가 숭의운동장 주변을 개발하면서 대형마트 입점을 계획하고 있기 때문이다.

용현시장의 경우 차로 10분 거리 인하대학교 근처에 이미 대형마트가 있는 데다가 숭의운동장에까지 대형마트가 들어서면 두 마트 사이에 낀 샌드위치 형태로 된다. 그나마 있던 손님도 대형마트를 찾으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추석을 며칠 앞두고 16일 찾아간 용현시장은 슬슬 손님이 들어올 시기건만, 하릴없이 앉아 있는 상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릇가게를 하는 이용우(52)씨는 "우리는 명절과는 크게 상관이 없고, 결혼이나 이사가 많은 봄과 가을에 손님이 많은 편"이라며 "하지만 시장에 전체적으로 손님이 끊기다 보니 타격을 입지 않을 수가 없다"라고 말한다.

닭을 판매하는 한 아주머니도 "불과 몇 년 사이에 매출이 2/3 정도 줄어든 것 같다"면서 "지금쯤이면 슬슬 사람들이 오고 장사가 돼야 하는데 사람이 없다"라고 하소연했다.

아주머니는 "재래시장에는 나이 든 사람들만 오고 젊은 사람들은 편리한 마트만 간다"면서 "지금도 힘든데 대형마트가 들어와선 절대 안 된다"라고 말했다.


재래시장이 대형마트보다 싸지만 손님들이 별로 찾지 않는다.

간혹 손님과 흥정하는 상인들도 보이지만, 대부분의 상인들은 옆 가게 상인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멍 하니 거리를 바라보고 있다. 일부는 언제 올지도 모르는 손님을 맞기 위해 채소와 생선을 다듬는다.

정육점을 하는 40대 상인에게도 가슴에 쌓아둔 얘기가 술술 나왔다.

그는 "같은 품질 꽃등심의 경우 마트는 평균 5만원 정도이고, 우리는 4만8천원에 파는 등 재래시장이 더 싸지만,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면서 "해가 지날수록 사람이 줄어든다"라고 했다.

그는 또 "대형마트도 문제지만 명절 때만 되면 뉴스에서 꼭 나쁜 고기를 속여 판다고 나와 타격이 크다"면서 "모든 정육점이 그런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많이 보는 시간에 그런 방송을 하고, 재래시장이 싸다는 뉴스는 밤 늦게만 한다"라고 하소연했다.

비단 재래시장 상인들의 어려움은 용현시장만이 아닐 터이다. 추석을 앞 둔 상인들의 한숨이 늘어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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