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스-뽀츠 과수원, 도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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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스-뽀츠 과수원, 도원동
  • 유광식
  • 승인 2017.08.11 07: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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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유광식 / 사진작가
▲ 유광식_도원동 40계단 옆의 한 빌라_2014


어떤 정보를 잔뜩 짊어지고 산책을 해야 할 것만 같았던 시절이 있었다. 첫 발을 디딘 인천의 모습에 그랬다. 항공사진과 로드뷰 같은 서비스가 두루 이용되다 보니 맛집이나 경관 좋은 장소는 그 옛날 입으로 통하던 소문의 시절을 벗고 수소문이 되어 버린 요즘이다. 디지털의 영향이 상당하다. 하지만 산책은 그리 정해진 계획보다는 당도하는 기분에 따른 감흥을 우선하는 걸음인 것 같다. 인천에 유입되어 낯선 장소를 탐색하며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정보를 모으던 나는 또 한 번의 산책길에 오른다. 나는야 자꾸 산으로 간다. 

웃터골의 영광이 옮겨진 도원역 앞 숭의(도원)운동장을 시작으로, 일명 모모산(もも/복숭아의 일본말, 강점기 시절 불림) 자락인 도원동 일대를 한 바퀴 돌아본다. 역 지하보도에서 나와 누가 볼 세라 좌측 좁은 골목으로 뛰어 올라가면 과거 죽산 조봉암 선생의 거처였던 옛 부영주택을 볼 수 있다. 또한 도원동에는 동남쪽 방향으로 여러 체육경기장이 포진되어 있다. 야구장은 문학동으로 이사를 갔고 축구장, 배구장, 수영장 등이 인천 체육사의 명맥을 증언하고 있다. 또한 50m 높이라는 산 중간 둘레를 한 바퀴 돌아 볼 수 있는 어렵지 않은 루트가 있다. 대신 이곳에는 가볍지 않은 검푸른 기운이 다소 엄습한다. 산 정상 부근에는 광성중고교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제는 관람석 구실을 했던 후문 자리에서 건너편 전도관 아래의 허름한 집들만 관람이 된다. 새 축구장은 지붕이 덮어씌워져 더 이상 경기 간접관람은 어려울뿐더러 잦은 경기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 유광식_기슭에 자리 잡은 옛 부영주택_2017


▲ 유광식_도원동 축구전용경기장과 너머 구)전도관이 위치한 숭의동_2012


여전히 인천 내에서 평이 좋다는 인천시립도원수영장이 40년이 다 되었다. 그 명성이야 이젠 문학동 박태환수영장으로 옮겨 갔는데, 수영장 아래 ‘뉴월드 아파트’가 명성을 끝내 지켜내지는 못한 모양이다. 내부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윗길로 걸으며 세모 지붕 아래 수영놀이를 지난 시절의 개울가 수영과 견주어 생각하곤 했다. 돌이켜 보면 도시에 올라와 살면서 수영도 못했고, 졸업 후엔 축구도 못했다. 길 아래 비탈진 면에는 율목동 못지않게 빌라들이 아슬아슬 지어져 있다. 과거 도시가 그랬구나 아니, 인천이 이랬구나 하는 상상은 주택들과 골목의 분위기에 빠져들면서 점점 생생해진다. 70계단 위에서 건너편의 율목동을 바라보다가 자연스레 우측으로 짙게 연필선을 그은 뒤 발길을 튼다. 나는 기울어진 집 한 채의 삶이 궁금해졌다.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어진 주택을 보며 삶의 기울기는 분명 곧았을 것이란 내밀한 에너지를 느낀다. (바로 위 사랑교회가 있어 사랑을 듬뿍 받았을 것이다.) 이곳은 서쪽의 볕이 몽땅 내리쬐는 구역이긴 하다. 동네 지명의 유래를 통해 이곳이 영험한 복숭아나무와 관계가 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모모산에서 개복숭아 하나 보이지 않는 길을 걷고 있자니 시간만 애꿎다. 보각선원이 어쩌면 복숭아의 이미지를 대변하는 것도 같았다. 그 옆 도원교회와 함께 한 엉덩이씩 맡아 열매를 맺는 건 아닐까 상상해 봤다. 영험한 장소이니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교회 앞길의 사랑이발관은 은근한 므흣함으로 가슴을 친다.


▲ 유광식_양조장 터에 지어진 40년산 도원수영장과 우측 뒤 뉴월드 아파트_2017

▲ 유광식_서쪽 볕 좋은 기슭에 지어진, 살짝 기운 오래된 주택_2013


뚱딴지같지만 모모산 정상에 서면 삼국지의 결의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럴 곳처럼 정상에 서서 먼 곳 응시하며 행복을 다짐하지만, 그럴 찰나에 학교 운동장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공놀이가 반갑게 눈길을 끈다. 동네 공놀이 역사가 프로축구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에서다. 자신들의 학교를 마다하고 형들이 있는 중고등학교 운동장에서 공놀이를 하는 걸 보면 깡다구도 있어 보이고 말이다. 물론 집에서 가까워서일 것이다. 학교명을 읊조리다 보면 운동장 아래에 빛나는 로켓이 숨어 있지는 않을까 싶다. 유독 ‘광성’이라는 주택명이 많다. 어느 지인분의 추억 어린 고등학교이기도 한 그곳이다. 복숭아나무는 벽화에서 자라고 대신 무궁화나무가 체육과 연관해 눈에 많이 띄었다. 작은 산, 그 단단함이 말해 주듯이 풍경을 동여매며 도원동을 돌고 돈다. 아련한 몽롱함이 돈다.


▲ 유광식_광성중고교 운동장에서 공놀이 하는 아이들_2011


산 아래쪽에는 맛있는 순댓국밥집이 두 군데 있다. 익히 알려져 있는 곳이라 유명한데, 1년에 한두 번 가게 된다. 둘이 가서 칼칼한 국밥 하나, 소주 한 병씩 맛있게 깐다. ‘진국’이라고들 한다. 오래도록 깊게 우려낸 국물 맛을 칭하는 것처럼 도원동은 진국 같은 면이 있다. 인천 체육의 진국이었던 도원동 체육시설들은 여전히 유효는 하다. 이곳에서 기본을 쌓은 체육인재들은 전국과 세계 곳곳에서 진한 땀을 흘린다. 도원동에 복숭아나무는 보이지 않았지만, 지나온 무수한 삶속에 키워냈을 열매들이 지금도 계속 자라나고 있다. 인천 체육의 산실이었던 이곳이 장소가 이전되고 용도 변경되는 시련이 있었지만, 그 맥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시민들은 시설을 이용하고, 아이들은 여전히 꿈을 키운다. 

한편, 축구장 아래에 큰 집 한 채가 있는데 바로 ‘홈+’ 대형 상점이다. 계층의 다변화와 시장질서의 혼란을 뚫고 들어선 마트와는 달리 길 건너 숭의평화시장은 허름한 모양새에 안타까운 심정만 더해진다. 상생평화조약은 깨진지 오래된 것 같고 평화시장은 최근 몇 년 전부터 문화공간으로 탈바꿈, 문화시장으로의 면모를 갖춰 나가고 있다. 이 일대에 닿으면 과거 기억의 시장기가 돈다. 이웃 숭의동에 문화 장소성이 확대된 현상이 이와 연관이 없지 않다. 조만간 바람이 불 것도 같다. 인고의 땀방울이 다디단 열매를 만들 듯, 그 맛도 과연 그러할 듯싶다.


▲ 유광식_도원동 70계단 위 주택가 도로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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