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넘버 032 : 인천으로 정체성 갖기, 인천에 정체성 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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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넘버 032 : 인천으로 정체성 갖기, 인천에 정체성 담기
  • 이건우
  • 승인 2017.09.11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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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칼럼] 이건우 / 서울시립대 1학년

 

리듬파워의 행주가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6’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행주가 속한 그룹, 리듬파워는 데뷔부터 약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꾸준히 이들이 자고 나란 인천을 샤라웃(shout-out, 존경의 의미로 언급함)해왔다. 최근 쇼미더머니6 결승곡 ‘돌리고’에서도 ‘아르바이트했던 부평, 주말이면 갔던 구월동, 내 초심은 역시 출신을 외쳐 I Town'이라며 자신의 정체성을 인천에서 찾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힙합 리스너에게 리듬파워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말은 ‘인천’이다. 리듬파워 이전에는 서울 이외 지역 출신 뮤지션이 출신 지역으로 자신을 정체화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리듬파워는 출신 지역과 활동 지역으로 자신을 정체화한 최초의 힙합 뮤지션이었다. 리듬파워는 인천을 샤라웃하면서 서울중심적인 사회의 일반적인 모습과 다를 바 없던 한국힙합을 바꿔 놓았다.

 

그러나 리듬파워와 비슷한 시기에 인천에서 나고 자란 청년·청소년 다수는 자신의 정체성을 인천에서 찾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들의 생활은 인천보다 서울을 향해 있거나 서울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인천 출신’이라는 소속감을 갖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이들 역시 서울 근교 다른 도시에 사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인천이 서울과 무엇이 다른지 못 느끼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나고 자란 지역의 영향을 분명히 받았지만 이 영향을 ‘인천’만의 무언가로 부르거나 인천사람이 보편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고 쉽사리 말하지 못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굳이 인천에서 정체성을 찾을 필요가 없을까? 그렇지 않다. 우리는 인천으로 정체성을 가져야 하고 인천에 우리 정체성을 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우리의 삶이 서울중심주의로 인한 피로와 소외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는 공간 재현(representational of space, conceived space)과 재현 공간(representational space, lived space) 개념을 제시하며 공간의 이중성을 이야기한다. 그가 말한 공간 재현은 인식된 공간(conceived place)이다. 인식된 공간은 처음 도시계획가가 기존 질서에 부합하게 규정된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는 공간에 있는 사람은 수동적으로 기존 질서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러나 공간에 있는 사람이 항상 수동적이지는 않다. 공간에 있는 사람은 능동적으로 공간을 다시 만들어 나갈 수도 있다. 이를 재현 공간이라고 한다. 공간에 있는 사람이 기존 질서에 저항하여 능동적으로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차이를 만들어낸다.

 

이 개념을 인천에 직접 적용해보자. 지금 서울 옆에 있는 인천이 갖는 의미는 어느 순간 만들어졌다. 서울에서 거의 모든 생활을 마치고 인천에 돌아오는 모습, 서울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싶어 하는 인천 학생들. 누군가 의도적으로 만들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원래부터 있었던 모습이 아니라 만들어진 모습인 것은 분명하다. 르페브르의 표현에 따르면, 이러한 모습의 인천은 공간 재현 즉, 인식된 공간이다. 인식된 공간으로서의 인천은 서울중심주의라는 기존 질서를 철저히 따르고 있다.

 

그러나 리듬파워가 샤라웃한 인천은 어떠한가? ‘월미도 바이킹 플로우 니 귀를 오르내리고 (...) 서울신사들은 못 베껴 내 싼티 전 국토를 짓밟어 난 인천의 현 상태’ 이 가사는 2010년 리듬파워 데뷔작 ‘인천상륙작전’의 가사다. 이 가사에서 리듬파워는 자신의 기억이 담긴 월미도에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이 상징적인 장소를 통해 자신을 정체화한다. 또 자신이 부여한 의미를 통해 서울중심주의라는 기존 질서와 자신과 자신의 공간, 인천을 차별화한다. 이 과정을 통해 리듬파워는 인천을 서울 변두리 도시가 아니라 서울신사들을 제치는 인천사나이가 있는 재현 공간으로 만들었다.


 

 


이처럼 재현 공간을 만드는 일은 기존 질서에서 벗어나 자신이 속해 있는 장소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다시 이 장소에 정체성을 담는 작업이다. 이 작업은 삶의 주도권을 다시 잡는 작업이기도 하다. 서울로 통학·통근하는 인천을 사는 우리가 항상 피곤하고 공허함을 느끼는 이유는 단순히 인천과 서울 사이의 거리에만 있지 않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서울로부터 삶의 주도권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인간은 가장 가까운 관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찾는다. 그러나 우리는 서울에 주도권이 빼앗긴 삶을 살고 있기에 가까운 관계에서 정체성을 찾기 어려워 소외감을 느낀다. 그래서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는 공간, 인천을 재현 공간으로 만들어 삶의 주도권을 서울로부터 되찾아야 한다.

 

2014년 발매된 ‘월미도의 개들’ 수록곡 ‘만루홈런 인천 remix'에서 행주는 ’백넘버 032‘를 외친다. 어김없이 인천을 샤라웃하며 ’백넘버 032‘로 자신을 정체화한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리듬파워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천에서 나고 자랐다면 한 번쯤은 월미도에서 바이킹을 타 본 기억, 차이나타운에서 짜장면을 먹어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 기억들이 앞서 말한 ‘인천’만의 무언가다. 우리는 소소한 경험에서 인천이 우리에게 준 영향을 찾고 다시 인천에 우리의 정체성을 담을 수 있다. 이 과정이 리듬파워처럼 인천을 서울과 차별화된 재현공간으로 만드는 작업이다. 더 많은 인천사람이 이 작업을 반복하여 행주와 같이 ‘백넘버 032’를 달 수 있어야 한다. 언젠가는 이 수많은 ‘백넘버 032’가 서울로부터 빼앗긴 삶의 주도권을 되찾아오길 바래본다.

 

참고문헌

앙리 르페브르. 『공간의 생산』. 양영란 옮김. 에코리브르. 2011(La production de l’espace. Anthropos. 2000)

박소영. 앙리 르페브르 : 도시의 일상. 대학원 신문.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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