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시심 가득한 '구부러진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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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시심 가득한 '구부러진 길'
  • 최일화
  • 승인 2017.09.22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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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시단] 구부러진 길 / 이준관

구부러진 길
 
                              이준관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구부러진 길을 가면
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
감자를 심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날이 저물면 울타리 너머로 밥 먹으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구부러진 하천에 물고기가 많이 모여 살듯이.
들꽃도 많이 피고 별도 많이 뜨는 구부러진 길.
구부러진 길은 산을 품고 마을을 품고
구불구불 간다.
그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또한 좋다.
반듯한 길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
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
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
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가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

 
<감상>
 
오늘은 민족의 고유 정서가 배어 있는 시 한 편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한국 문화의 특징은 곡선의 문화입니다. 서양의 직선 문화에 비하면 무척 정감이 있고 여유롭다고나 할까요. 지붕의 선이 둥글고 묘지의 형태가 둥급니다. 지금은 일직선으로 도로가 개설되지만 옛길은 모두 구불구불 했습니다. 그 곡선 속에 우리 문화의 원형이 있습니다.

예부터 수많은 시인들이 길을 노래했습니다.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을 써서 세계인의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한하운 시인은 <전라도 길>을, 김소월 시인은 <가는 길>을, 윤동주 시인도 <새로운 길> 썼습니다. 현대의 시인들도 마찬 가지입니다. 신경림 시인은 시집 『길』을 펴냈는가 하면 시 <집으로 가는 길>을 쓰기도 했습니다.

길만큼 다양한 의미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말도 흔치 않을 것입니다. 독자님들은 어떤 길이 떠오릅니까? 세계인이 순례하는 “산티아고 가는 길”도 생각납니다. 나는 지금도 고향의 논두렁길, 밭두렁길을 생각하면 어린 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되살아나곤 합니다.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고향 가는 길을 생각하시며 고향의 추억, 부모님과 형제자매의 사랑을 마음 가득 담아 보시기 바랍니다. 민족의 나아갈 길, 평화통일의 길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준관 시인: 전북 정읍 출생.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시 당선. 1974년 《심상》신인상 시 당선. 시집 『가을 떡갈나무 숲』 『부엌의 불빛』 『천국의 계단』외 다수. 김달진문학상, 영랑시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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