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그르르 대관람, 숭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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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그르르 대관람, 숭의동
  • 유광식
  • 승인 2017.10.27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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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유광식 / 사진작가


▲ 유광식_철거된 옛)수봉놀이동산(1979-2008)의 입구(위)와 놀이기구를 즐기는 가족과 시민들(아래)_2007


남구의 한복판, 숭의동은 남구청을 중심으로 자리한다. 중구와 동구 못지않은 격동의 역사가 숨 쉬는 곳이자, 어쩌면 싱크 홀처럼 푹 꺼져 있는 상태 같기도 하다. 중구과 동구, 그리고 남구의 분계인 도원역을 시작으로 빙글빙글 걸음을 옮겨 본다. 도원역 북쪽으로 언덕이 있는 마을과 마주한다. 마을의 꼭대기에는 부박한 삶의 기억이 남겨진 큰 건물이 있다. 옛)전도관 건물이라고 하면 도원역과 쌍두마차 격으로 거론되는 곳이다. 이젠 이곳도 재개발구역이지만, 볕 좋은 비탈면에서 멀리 경기장 안의 축구 경기를 흠칫할 수는 있다. 경기의 함성소리가 작아졌지만 옛)웃터골 못지않은 자연관람석 격인 비탈에서 잠시의 일탈로는 안성맞춤이다.

그 옆을 지나 내려오면 오래된 ‘숭의공구상가’가 나온다. 다닥다닥하니 보이지 않는 일꾼이던 각종 공구를 취급하고 있지만, 아쉬움도 파는지 싶다. 주변으로 주거아파트가 속속 지어지면서, 시큼한 쇠 냄새가 진동하기도 하고 절단소리가 들리는 이곳의 규모도 점점 좁혀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 곁의 숭의로터리에서 발걸음이 회전한다. 비상하는 학이 있는데 매연에 찌든 나머지 분수대에서 목욕을 하고 날아갔음 하는 바람을 안고 옛)남부역으로 내려간다. 최근 용마루 재개발로 인해 화물역 너머는 뒤엎어졌고, 수인전철역 ‘숭의’가 생겼다. 이젠 더 이상 ‘인천-논산’간 입영열차의 기적소리는 들리지 않고, 건너편 노란 집(옐로하우스)들은 올해 말 철거가 예정되어 그간의 시대를 접는다.


▲ 유광식_옛)전도관 남쪽 아래 허름한 가옥들(개는 항시 조심해야 한다.)_2011


▲ 유광식_산자락에 위치한 수봉아파트A(좌)와 수봉아파트B(중앙) 그리고 세단, 프린스아파트(우)(오후녁 채광이 기막히다.)_2016

▲ 유광식_옛)강원연탄 공장 맞은편 옐로우하우스 입구(부분적으로 축소되었고 올해 말 전면철거가 예정되어 있다.)_2011


숭의역에서 동쪽 방향으로는 있는 듯 없는 듯한 형체의 주인(주안-남인천)선이 있는데, 철로는 공원이 되어 옛 주인을 잃었다. 열심히 걸어가다가 10시 방향으로 남구청을 포함한 주변으로 독정이 마을(여의실)이 나온다. 옛)인천교육대학교가 자리했었던 만큼 글재주 좀 날렸을 사람이 많았을 것을 생각하면 그 때 사람들 다 어디 있을까 싶다.

인천 지형의 중심에 위치한 남구 그리고 숭의동. 그 호흡이 덩실덩실, 마음의 넓이도 덩달아 확장된다. 상상으로나마 높은 건물과 주차된 차량들의 모습들을 지우고 나면 어느 정도 동네의 평화로운 골격이 그려진다. 그렇게 걷다가 마주하는 작은 철도 위의 육교를 나는 은밀히도 아낀다. 목공예거리 중간에서 숭의1.3동을 이어주는 작은 육교인데, 도원역으로의 전기위험 표지판과 함께 굽은 철로의 풍경이 좋다. 숭의깡시장, 박문A, 극동A 등의 오랜 시간과도 접속하는 짧은 다리다. 고즈넉하고 아담한 느낌 때문인지, 뜻밖의 낭만이 다리위로 흐르기도 한다.


▲ 김주혜_오후녘에 경인선 위 육교에서 인천항 방향으로 바라 본 모습_2017

▲ 유광식_쇠퇴한 숭의청과물시장 일대 상가_2015


걸음은 어느새 제물포역 남쪽으로 향하여, 숭의4동 지역과 만난다. 제물포역이 급행열차의 정차역이 되자, 철도변가 주위로 건물이 높이높이 자라고 말았다. 인천 구도심에는 재개발의 영향이 크겠지만 빈집의 수가 많다고 한다. 큰 수선을 필요로 하는 집들이 아니다. 곧장 조금만 손보면 살 수 있는 집들이지만, 개발구역에 대한 기대감으로 계획자체가 일정기간동안 수선을 제한함에 따라 노후화 되고 있다. 특히 남구 숭의동엔 그러한 공간들이 무척 많다. 언제인가 그런 생각을 나눈 적이 있다. 우리가 인천에서 집을 사거나 오래 살게 된다면 어느 지역, 어떤 위치에 살면 좋을까라고 말이다.

둘이서 아는 만큼의 깜냥을 발휘해 여러 조건들을 종합해 본 결과, 좁혀진 곳은 숭의4동 지역이었다. 수봉산 자락 아래 볕 좋은 구릉 위 단독주택 하나 정도의 규모라면 크게 바랄게 없단 얘기를 반은 농담으로 반은 미래계획으로 남겨 둔 기억이 있다. 제물포시장이 쇠퇴하고 근처 집들이 공실되고 있는 시점이지만, 정서적 주거환경은 상당히 높게 평가해 본다. 도시에 살면서 주거와 개발의 두 트랙을 따로 떼어내어 생각한 적은 없다. 최근 '마을'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일부 마을활동은 체력활동인지 정치활동인지 의심스러운 경우가 감지되기도 한다. 결국 안전하고 행복한 주거환경의 조성일테지만, 우리 곁에는 이미 너무 많은 상업적, 사회적 요소가 침투해 있는 거다. 자연스레 짚어 온 생활역사가 아닌 경제논리의 마수에 걸려 그 활동들 또한 상당히 위협적인 도구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 유광식_제물포역 일대의 극장과 맨션_2016


▲ 유광식_수봉산 아래 숭의4동 일대(앞쪽은 거의 재개발구역이다.)_2017


제물포역을 지나 오르면 점점 언덕이 나오고, 굳건하게 서있는 저택들이 양 옆길로 자리한다. 양지바른 지대 위로 세워진 집들의 모습은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멋이 있다. 그 집들을 품어주는 낮고 넓은 산이 등장한다. ‘물 위의 봉우리’라는 수봉산(104m)의 명칭이 재미있다. 지금은 호국의 장소가 되어 여러 비들이 세워져 있다. 문화 및 체육시설들도 많고 정상에서는 남구를 한 눈에 둘러볼 수도 있다. 전에 이곳에 살던 비둘기도 군인도 이젠 모두 이사를 갔다. 그리고 과거 수봉산에는 서른 즈음의 생을 산 ‘수봉놀이동산’이 있었다. 8-90년대 인천의 아이들의 성지라고 했다는데, 변화한 시대는 존립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 터는 넓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당시 아이들의 아이들과 인천시민을 맞이하고 있을 따름이다.

요즘 거리를 걷다 보면 감나무를 많이 보게 된다. 나에게는 어렸을 적부터 감꽃 보고 열매 따 먹고 기어오르고 하던 나무인지라, 은근한 감색의 느낌을 무척 소중히 다룬다. 대문 안쪽으로 감나무 한그루만 보아도 그와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포근해지곤 한다. 집집마다 감나무가 자라는 마을은 또한 어떻겠는가? 도시에는 돌과 철의 비중이 나무에 비해 월등히 많은 것 같다. 바쁜 걸음에도 하늘과 주변 열매나무 한 그루 정도는 감상할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이마저도 적지 않은 노력이 필요한 시대다.) 인천 남구는 작년부터 구 명칭변경을 진행하면서 ‘미추홀구’로 지역의견을 수렴한 후 공표하였다. 인천은 매립의 결과인 옛 방위개념이 들어간 구 이름을 계속 사용해왔는데 지금에 와서는 현실적인 지리와도 맞지 않아 요상했다. 다음 해 남구의 단체장 선거출마를 다짐한 사람만 현재 15명이다. 과연 어떤 감이 떨어지고 어떤 감이 달콤하게 익어 매혹의 주황빛 홍시로 등극할 수 있을지는 빙그르르 대관람차에서 내려서야 알 것 같다.



▲ 유광식_수봉아파트B동(도화동)과 수봉아파트A동(숭의동)_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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