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다리신보> 마을공동체 회복을 위한 마을사진신문, 다시 만들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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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리신보> 마을공동체 회복을 위한 마을사진신문, 다시 만들수 있을까?
  • 강영희
  • 승인 2017.10.19 07: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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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리 통신 11] 다시 걷는 발걸음을 위해 ...
10월 14일 배다리에서는 만국시장이 열렸다. 인천in에서는 <터덜터덜 걷기>가 재개되는 날이기도 했다. 인천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다양한 행사들이 펼쳐졌다.



@2010년 10월 <인천in>터덜터널 걷기 - 연천 DMZ 트레킹을 함께하며 찍은 사진들


2009년 지역주민예술가들과 함께 한 ‘지역공동체 창작공방 다행多幸_하다’라는 활동을 바탕으로 ‘지역공동체창작활동연구서’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활동에 참여했던 사람들과 함께 공간을 만들고, 각자의 재능을 마을과 나누며 성장시키고, 자립도 하자는 창작공방을 만들었다. 그때 사진을 주로 찍었던 필자는 일상의 마을사진과 한 두줄 이야기가 담긴 소식지를 여유가 생길 때마다 냈었다. 그것이 2012년부터 2014년까지 3년간 마을 예술가, 활동가들과 함께 만드는 ‘마을공동체 회복을 위한 마을사진신문 - 우각로신보, 배다리신보’가 됐다.




배다리의 일부인 창영동 일대를 중심으로 ‘Art in city 2007 우각로 프로젝트’라는 지역환경개선을 위한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있었다. 2006년 겨울 동구관통산업도로 반대 활동이 준비되었던 시기에 도원역 인근에서 ‘퍼포먼스 반지하(이하 '반지하')’가 운영하던 ‘언덕을 오르는 바닷길’에 찾아오신 곽현숙 아벨서점 대표님과 산업도로 관련 이야기를 나누면서 준비된 사업이다.

당시 인천 전지역이 동시다발의 재개발로 소시민들의 삶이 위협받던 시기였다. 배다리도 ‘금곡동 일대 재개발 문제’와 ‘동인천 북광장 일대의 개발사업’에 배다리 헌책방 거리 일대가 수렴될 상황이었고, ‘송도~청라 경제자유구역을 잇는 직선 산업도로 사업’을 우연히 알게 된 지역주민이 주변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도움을 청하며 도로를 막기 위한 노력을 시작할 때였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주민들은 손바닥만 한 집 한 채를 고스란히 개발업자들에게 빼앗길 위기였고, 순환개발이 아니라 인천지역 전체에 개발이 들어가는 바람에 이사 갈 곳도 마땅찮은 상황에서 평생 일터까지 도매금으로 넘어갈 위기였다.

지금의 ‘스페이스 빔’이 있는 (구)인천양조장 건물은 당시 아벨서점 사장님이 책방 창고로 쓰면서 일부를 다듬어 ‘아벨전시관’을 가꾸어 사용하고 있었다.

당시 송림동 철탑 인근에서 ‘지역교육문화센타 희망터’라는 단체에서 ‘인천인권영화제’ 관련 활동을 하던 필자가 일하던 공간에 서구 가정동에 살면서 인천 구도심 일대를 기록하며 다양한 활동하던 ‘공존을 위한 공공문화 표현집단 - 퍼포먼스 반지하’라는 이름의 친구들이 찾아오면서 그해 ‘인천인권영화제’를 함께 준비했고, 철탑 옆 ‘나눔의 집’에서 ‘송림동 그림수필’이라는 이름의 문화예술교육활동과 축제를 진행했다.

그 활동의 일환으로 배다리에서 ‘인천공부방연합’과 함께 청소년이 되면 공부방을 다닐 수 없었던 당시의 청소년들을 위한 인문학교육 ‘언덕을 오르는 바닷길’이라는 이름의 수업을 아벨서점 곽 사장님의 배려로 ‘아벨전시장’에서 진행되다. 또한 운봉공고 영화동아리 청소년들과 ‘다큐멘터리_직업’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이를 계기로 이 청소년들이 지속적으로 자유롭게 관련 공부를 하고 활동하도록 돕는 공간을 도원역에 인문학교실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공간을 마련해 활동하고 있었다.

그런 공간에 찾아오신 곽 사장님은 인천에서의 배다리를 지켜야하는 의미를 ‘반지하’ 사람들과 나눴고, 이를 함께하기 위한 방법으로 노무현 정부가 펼치던 ‘지역환경개선을 위한 공공미술 프로젝트 <아트 인 시티>’에 ‘우각로 프로젝트’를 간이로 지어진 건물을 임대해 배다리 ‘문화공방’으로 꾸미고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인천 동구와 배다리의 역사적 사회적 의미와 가치를 공부하고 다양한 문화예술활동을 하던 예술가들을 설득해 ‘문화예술을 통한 재개발 및 도로반대 활동’ 프로젝트 팀을 구성하고 진행했다. 지역 공동체의 의미와 내용을 축적하며 각종 난개발로 피폐해지고, 해체되어가는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국에 소개해 지역공동체의 의미와 이를 지켜나가는 배다리에서의 활동을 지속했다.

이렇게 ‘우각로 프로젝트’가 마을 공간을 아름답게 가꾸며 지역과 어울리는 노력이었다면 이와 함께 ‘지역사회에서 예술하기’라는 이름으로 생활문화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했다. 이는 지역 주민들 중에서 문화예술관련 활동을 하고 있거나 하고 싶은 사람들을 모아 그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함께 공부하고 활동하는 과정수업이다.

그리고 이 수업을 통해 그들이 활동할 공간의 필요성을 느꼈고, 개인이면 부담이 될 수 있는 공간을 ‘여럿이 함께’ 마련해 공동체를 구성하고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담은 것이 ‘지역공동체 창작공방 다행多行+幸하다’라는 샘플링 프로젝트였다. (당시 ‘다행이다’라는 이적의 노래가 있는데 ‘많이 걷다’가 ‘많이 움직이다’라는 의미와 통해 우리는 ‘다행’하자라며 이름을 제안한 것이 필자라는 것은 사족이지만 그래서 지금 마을사진관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주민들과 함께 쓰레기가 쌓이는 마을의 빈 공간을 공원으로 만들고, 무너져가는 벽을 고치고, 아이들이 오고가는 커다란 회색 벽에 그림을 그리고, 보도블록을 걷어내고 꽃과 나무를 심고, 이웃들을 불러 차를 나누고 식사를 함께하고, 버려진 나무들을 모아 필요한 물건들을 만들고, 공터의 붉은 흙을 걸러 염색도 하고, 마을 곳곳을 찾아다니며 아이와 할머니들 앞에서 직접 만든 노래를 부르며 공연도 하고, 여름밤에는 주차장에서 영화도 함께 보고, 마을 골목에서 연극 공연도 하고, 할머니네 호박도 따드리고, 할아버지댁 전기도 고쳐주고 ... 그렇게 일상이 축제인 듯 축제가 일상인 듯 지내왔다.



얼마 되지 않은 돈을 고스란히 쏟아 부으며 활동했고, 공간과 일상을 유지하는 게 매순간 수월치 않았지만 그렇게 도로를 막아냈고, 공동체를 지켜왔고, 문화가 일상이 되는 가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것에 의미를 두며 살았다. 최소한의 생활과 공간 유지를 위해 일반인이 상상하기 힘든 비용으로 연명하고 있는데 유지하고 있는데 시나 구에서 돈 받고 하는 거 아니냐는 소리를 아직도 듣는데 참 억울하다는 마음이 드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십 수 년 함께 즐거움을 나눴던 어르신들은 하나 둘 병들고, 귀천하셨고, 함께하던 예술가들, 활동가들도 생활비를 벌기 위해, 새로운 활동을 위해 떠나기도 했고, 그동안 이곳을 오고가며 기웃거리던 사람들이 적잖이 들어왔다가 나가기를 반복했다. 더러는 1년 겨우, 더러는 4-5년 이상을 사는 거 보면 배다리의 삶이란 호불호가 확실히 갈리는 곳이란 걸 느낀다.

얼마 전 서울의 합정동과 익선동을 들러볼 기회가 있었다. 합정동에서는 일반 주택을 그대로 살린 식당, 사무실, 카페, 상가 등의 모습이 신기했었고, 사진을 한참 찍으러 다닐 때 복작거리던 종로 뒷쪽 조용하고 한가로운 한옥들과 골목을 보고 참 좋았던 기억이 있었는데 그 좁은 골목길, 그리 넓지 않은 한옥을 개조한 상가며 카페에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사람들이 복작복작 거리는 모습을 보며 그곳을 피하듯 빠져나왔다.

다시 뉴스테이 재개발과 뉴딜이니 하는 도시재생사업, 말도 안 되는 도로를 다시 만들려는 일로 배다리 뿐 아니라 구도심이 시끌시끌하다. 마을을 관광지나 볼거리로 겉치장을 부려 지자체장의 성과로 만들려는 태도에 온통 쑥대밭이다. 4번을 쓰고 방치된 아시안게임경기장이 마을 한가운데 있는데 유지하는 것도 힘든 상황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물동량 거의 없는 아라뱃길이며 4대강 유역의 곳곳은 이용할 사람이 없어 페허가 되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번주 일요일부터 마을사진 신문만들기 강좌를 한다. 또 주민들과 함께하는 사진수업도 한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안하기로 했지만 올해 초에는 유튜브를 이용한 마을방송국 기획을 공모에 내서 선정되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그간의 활동을 곱씹어보고 있다.

어제는 지난해 재개발이 해제된 금창동 지역에 마을 공동체 회복을 위한 사업을 하자는 제안이 왔는데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기에 왜 어떻게 있어왔나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마을이 무엇이고, 공동체가 무엇이고, 문화란 예술이란 일상이란 축제란 또 무엇인지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수업을 위한 웹자보를 만들다보니 ‘멈짓’하는 나를 발견했다. <나와 마을, 다행하다> '다시, 그럴 수 있을까?' 하는 마음과 '부디 그러하기를' 하는 마음이 오고간다. 그렇게 매순간 흔들리며 가는 나는, 우리들은 아직 살아있는 나침반의 바늘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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