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박물관이 품은 문화유산은 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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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박물관이 품은 문화유산은 쓰레기
  • 최종규
  • 승인 2010.09.29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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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이케자와 나쓰키, 《문명의 산책자》

“인류가 이룩한 물질적, 기술적, 사회 구조적인 발전”을 가리킴을 ‘문명(文明)’이라고 합니다. “세계의 모든 사람”을 일컬음을 ‘인류(人類)’라고 합니다. 온누리에 손꼽는 몇 가지 커다란 ‘문명’이 있다고 하는데, 커다란 문명을 돌아보면 모조리 ‘큰 도시를 이룬 터전’입니다. 수수하거나 조촐하게 농사지어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든지, 짐승을 사냥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놓고는 ‘문명’이라 하지 않습니다.

갖가지 전기·전자 제품을 쓰는 사람을 가리켜 ‘문화인’이라 합니다. 영화를 보고 책을 읽으며 텔레비전을 들여다보는 사람을 두고 ‘문화인’이라 합니다. 하다못해 손전화를 안 쓴다거나 셈틀을 안 쓴다거나 하면 ‘원시인’이라 합니다. 극장에 갈 일이 없거나 텔레비전을 집에 들여놓지 않거나 하면 ‘원시인’이라 합니다.

“대영박물관에서 떠난 13갈래 문명 기행”이라는 이름이 붙은 《문명의 산책자》라는 책을 읽으며 ‘문명’이란 무엇을 말하고 ‘문화’란 어떤 대목을 가리키는지 자꾸자꾸 알쏭달쏭합니다. 몇 가지 흙그릇이나 돌연장을 남겨야 문명이 되는지 궁금합니다. 어마어마하게 큰 무덤이나 건물을 지어 놓아야 문명을 이룩한 셈인지 아리송합니다. 조용히 살며 쓰레기(문화재) 하나 안 남기는 삶이란 무엇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습니다.

《문명의 산책자》를 쓴 일본사람은 당신 두 발로 이 땅을 단단히 디디며 살아가려는 수수한 몸가짐을 보여줍니다. 이 책 하나는 퍽 알뜰히 엮었습니다. 어디 모자라거나 어줍잖은 구석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문명을 찾아나선다는 사람”이 찾아나선 문화재라는 물건이 얼마나 어떻게 문화재답다 할 만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인류가 이룩한 발전이 드러난 물건’이란 무슨 잣대로 잴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문화재로 삼는 ‘유물’이란 “남겨 놓거나 대물림을 하는 물건”이기도 하지만, 땅에서 캐낸 ‘쓰레기’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몇 백 해가 흐르거나 즈믄 해가 흘렀어도 썩거나 바스라져 흙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고 남아 있으니 ‘쓰레기’인 셈입니다. 사람들은 ‘값어치’를 따져 비닐봉지하고 문화재는 다르다 말하지만, 앞으로 즈믄 해가 흐른 뒤에는 오늘날 우리가 이토록 많이 쓰는 비닐봉지를 놓고 ‘2000년대 생활문화 발자국’으로 삼아 문화재가 될는지 안 될는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래, 똑같은 비닐봉지 가운데에서도 2005년 대구 중구청에서 쓰던 쓰레기봉투하고 2008년 광주 동구청에서 쓰던 쓰레기봉투하고 2010년 인천 서구청에서 쓰던 쓰레기봉투를 따로따로 뜻깊은 문화재로 삼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2100년쯤 ‘비닐봉지 박물관’을 누군가 세운다면 이런 비닐봉지는 얼마든지 문화재가 됩니다. 2010년 오늘날에도 1970년대 새우깡 과자봉지나 1980년대 초코파이 과자봉지는 얼마든지 문화재 노릇을 합니다. 아니, 문화재 노릇을 톡톡히 하며 무척 비싼 값에 사고팔립니다. 쓰레기통에 처넣으면 그예 쓰레기입니다만, 1985년 서울 은평구 갈현동에서 쓰던 ‘까만 봉지’라는 자취가 남아 있으면 이런 비닐봉지 또한 얼마든지 문화재로 삼을 수 있습니다. 어제 구멍가게에서 사다 마신 깡통맥주를 안 버리고 서른 해쯤 놓아 둔다고 생각해 보셔요. 아니, 스무 해나 열 해만 그대로 놓아도 ‘어, 옛날엔 이랬구나.’ 하면서 문화재 구실을 합니다. 베스킨라빈스 얼음과자 주걱이든 700원짜리 얼음과자 막대기이든, 어떻게 바라보거나 다루느냐에 따라 쓰레기가 되거나 문화재가 됩니다.

.. 일본 음식은 미국과 거의 같은 수준으로, 음식이라기보다 공업 제품에 가깝다 ..  (25쪽)

이야기책 《문명의 산책자》는 영국에 있는 대영박물관에서 만난 문화재를 ‘박물관에 갇힌 유물’이 아닌 ‘이 문화재가 처음 있던 곳에서 어떤 모양으로 사람들 손을 탔는가’를 몸소 알아보고 싶어 지구 곳곳을 찾아다닌 발자국을 차곡차곡 담습니다. 아무래도 “공업 제품 아닌 밥”을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글쓴이라서, 유리 진열장에 처박힌 쓰레기가 아니라 사람들 손을 타는 살림살이를 만나고 싶었겠지요. 유리 진열장에 처박히면 무척 값나가거나 값비싼 쓰레기가 되지만, 사람들 손을 타는 동안에는 값어치를 따지지 않을 뿐더러 몹시 값싼 살림살이입니다. 할머니 적부터 쓰던 숟가락이란 집에서 늘 쓰면 그냥 살림살이이며 돈값으로 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런 밥숟가락 하나일지라도 박물관에 옮겨놓으면 비싸구려 문화유산이 됩니다. 자개장이든 노리개이든 무쇠솥이든 매한가지입니다. 살아가며 쓰면 소담스러운 살림살이인 지게이지만, 박물관에 들어서면 곰팡이가 슬고 좀이 먹는 나무쓰레기요 짚쓰레기입니다.

.. 인도에서는 나무가 있으면 그 아래 사람이 있다. 이런 햇살 아래에서는 나무 밑이 아니라면 사람이 있을 만한 곳이 없다. 인도인은 사람이 바깥에서 활동을 해 나가려면 우선 그곳에 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  (96쪽)

오늘 이 나라 한국땅 어디에서나 무섭도록 올라서는 아파트와 고속도로를 바라볼 때면 우리 스스로 ‘아파트와 고속도로를 문화재처럼 여긴다’고 느낍니다. 2020년이나 2030년이나 2050년에 새로 태어나 자라고 살아갈 뒷사람한테 오늘날 아파트와 고속도로를 문화유산으로 물려주고 싶어하네 하고 느낍니다. 우리는 우리가 바로 오늘 이곳에서 살아가는 그대로 뒷사람한테 물려주지, 우리가 살아가지 않는 대로 뒷사람한테 물려주지 못합니다. 우리가 참되고 착하며 아름다이 살아간다면 참되고 착하며 아름다운 삶자락을 물려줍니다. 우리가 자동차를 사랑하며 살아가면 뒷사람한테는 자동차를 물려줍니다. 우리가 더 많고 큰 돈을 바라며 살아가면 뒷사람한테는 더 많고 큰 돈을 물려줍니다. 우리가 따순 사랑과 너른 믿음을 어깨동무하며 살아가면 뒷사람은 따순 사랑과 너른 믿음을 물려받겠지요.

인도사람은 사람이 바깥에서 일하자면 나무그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고 말하지만, 나무 한 그루가 그늘을 드리우기까지는 몇 해가 걸리는가요. 나무는 어떻게 해야 심을 수 있는가요. 사람이 억지로 심을 수 있는 나무일까요. 씨앗 하나가 땅에 뿌리를 내려 줄기를 올리는 나날이란 무엇인가요.

쓰다 버린, 또는 쓰다가 버려진, 때로는 잘 쓰고 있는데 권력자가 일으킨 싸움 때문에 그만 망가지거나 나뒹굴고 만, 더군다나 큰 싸움을 일으키며 이웃나라한테서 빼앗은 물건이 제아무리 아름답거나 빛나거나 값있다 하더라도 이런 물건을 살피며 ‘인류 문명’을 따지는 일이란 부질없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문명에 앞서 내 삶과 이웃 삶과 동무 삶을 들여다보며 어깨동무할 고운 사람 하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 문명의 산책자 (이케자와 나쓰키 씀,노재명 옮김,산책자 펴냄,2009.8.25./2만 원)

겉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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