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기차길 옆 텃밭'과 '골목집 부추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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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기차길 옆 텃밭'과 '골목집 부추꽃'
  • 최종규
  • 승인 2010.10.03 19:01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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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이야기 ①] 여름골목에서 가을골목으로

 어느새 여름골목에서 가을골목으로 접어들었습니다. 날씨는 해마다 어지러워지고 앵돌아지며 여름이 여름인지 가을인지 알 수 없고, 가을이 가을인지 겨울인지 봄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틀림없이 무르익은 가을입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며 가을이 가을이라고 느끼기는 쉽지 않습니다. 옷을 몇 벌 껴입거나 민소매를 반소매로 바꾸거나 반소매를 긴소매로 바꾼다고 철이 바뀌었음을 느낀다 하기 어렵습니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땅을 내려다보며 날씨와 바람과 햇살과 물을 고루 돌아보는 가운데, 풀과 나무를 살필 때에 비로소 철바뀜을 안다 할 수 있습니다.

 골목동네 사람들은 봄부터 겨울까지 늘 바쁩니다. 노상 바지런히 손을 놀립니다. 꽃잔치집을 이룬 어여쁜 골목집을 봄부터 겨울까지 거의 날마다 마실을 해 보면, 적어도 백 가지가 넘는 꽃과 푸성귀를 꽃그릇마다 알뜰살뜰 가꾸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어쩌다 한 번 들여다볼 때에는 ‘어, 대단하네?’ 하고만 느끼지, 이 대단한 꽃잔치집을 이루려고 어느 만큼 손길을 보내며 마음길을 쏟는지 알아챌 수는 없습니다. 집살림을 꾸리는 어머님들이 날마다 밥을 차리고 옷을 빨며 집안을 쓸고 닦으며 치우는 데에 품과 마음을 어떻게 바치는가를 제대로 알아채는 사람이 적듯, 골목동네 삶자락이 얼마나 고운가를 가슴으로 참다이 느끼는 사람이 적습니다.

 자가용을 몰며 고속도로를 달릴 때에 시골마을 삶터를 느낄 수 없습니다. 자전거를 몬다 하더라도 씽씽 내달리기에 흠뻑 빠지면 길가 가게들은 볼지라도 길가 안쪽 살림집 터전은 보지 못합니다. 두 다리로 걷더라도 내가 가려는 데로만 빨리 가려고 걸음을 재촉하면 거님길 바닥 구석자리에 뿌리를 내린 작은 들꽃 하나 알아보지 못합니다.

 가만히 보면, 커다란 도시이든 작은 도시이든 오늘날 한국땅 사람들은 자가용으로 다니기에 익숙해지고 말았습니다. 자가용이 아니라 하더라도 버스나 전철로 다니기에 길들었습니다. 자전거로 움직이거나 두 다리로 오가는 사람 숫자는 몹시 적습니다. 더운 날 더운 날씨를 느끼며 이삼십 분은 느긋하게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몇 안 됩니다. 추운 날 추운 날씨를 느끼며 한두 시간은 한갓지게 두 다리로 걷는 사람은 얼마 안 됩니다.

 느긋할 때에 비로소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봄대로 여름대로 가을대로 겨울대로 맞아들입니다. 한갓질 때에 바야흐로 골목을 느끼고 골목이웃을 만나며 골목집을 껴안습니다.

 돈을 넉넉하게 벌고 나서야 느긋한 삶이 아닙니다. 할 만한 일거리가 없어야 한갓진 나날이 아닙니다. 알맞게 살 만큼 알맞게 벌고 알맞게 나누면 언제라도 느긋합니다. 돈을 바라며 하는 일이기 앞서 사랑을 바라며 하는 일이라면 즐거우며 느긋합니다. 더는 안 다니는 기차길에 나무와 비닐을 엮어 고추말리기 할 자리로 삼는 골목사람 손길에서 골목사랑을 느낄 수 있으면 내가 디딘 이 터전을 새로운 눈길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오로지 동네사람 아니고는 지나다닐 일이 없을 한갓진 골목에 과자봉지 하나 구르지 않으며 부추꽃 곱게 피어 있는 모습을 마주할 수 있으면 내가 고향으로 삼는 이 삶터를 따스한 눈결로 어깨동무할 수 있습니다.

 꽃 한 송이는 꽃집에도 있으나, 골목동네 어디에나 넉넉히 있습니다.



 1. 인천 남구 숭의1동. 2010.9.3.17:15 + F10, 1/60초
 
 인천 중구 신흥동3가와 남구 숭의1동에는 ‘수인선’이라는 이름이 붙은 철길이 놓여 있습니다. 지난날에는 날마다 수많은 기차가 지나다녔으나 이제는 하루에 꼭 한 번만 지나갑니다. 이렇게 기차 다니는 횟수가 줄며 동네사람들은 드디어 ‘시끄러운 기차소리’에서 풀려났고, 시끄러운 소리에서 풀려나기 무섭게 기차길 둘레를 동네텃밭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수인선을 다시 놓는다며 올 2010년 봄에 공무원(시청인지 구청인지 동사무소인지)들이 동네텃밭에 자갈을 죄 뿌려놓아 동네텃밭을 깡그리 망가뜨렸습니다. 그런데 여름이 되고 가을로 접어들면서 이 ‘망가진 동네텃밭’은 새삼스럽게 다시 텃밭으로 바뀝니다. 기차가 안 다니며 끊어진 철길은 동네사람이 고추말리기를 하는 좋은 터가 됩니다.

 2. 인천 동구 만석동. 2010.6.3.17:39 + F11, 1/80초
 
 새벽부터 밤까지 전철이 오가며 시끄러운 만석동입니다. 제가 살던 창영동 옥탑집 또한 새벽 네 시 오십 분 무렵부터 밤 한 시가 넘도록 복복선 전철 소리 때문에 몹시 시끄러웠습니다. 이 시끄러운 철길 옆 골목집 사람들은 빈 집터를 텃밭으로 바꾸어 놓고 알콩달콩 돌봅니다.

 3. 인천 동구 화수1동. 2010.6.3.16:31 + F8, 1/50초
 
 인천이든 부산이든 대구이든 서울이든, 골목동네를 제대로 들여다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어렵지 않습니다. 쉽지 않은 까닭은 ‘스스로 골목사람으로 살지 않으’면서 ‘골목길 사진만 찍으려고 자가용을 몰고 나오기’ 때문입니다. 어렵지 않은 까닭은 ‘스스로 골목사람으로 살’면서 언제나 ‘두 다리로 느긋하게 마실을 다니기’ 때문입니다. 화수시장 끝자락 어두운 길을 가로지르면 바야흐로 꽃골목이 펼쳐집니다.

 4. 인천 중구 신흥동1가. 2010.9.1.12:11 + F11, 1/80초
 
 가을로 접어들면 골목마다 ‘부추꽃’이 올망졸망 하얀 웃음을 베풉니다. 이 하얀 꽃이 부추꽃인 줄은 얼마 앞서 겨우 알았습니다. 옆지기 어머님이 “어머, 부추꽃이네.” 하면서 예뻐해 주는 소리를 곁에서 듣고 비로소 알았습니다. 정구지이든 부추이든 나물로 먹을 줄만 알았지, 이렇게 어여쁜 꽃을 피우도록 꽃그릇 한켠에 얌전히 기를 줄은 모르며 살아왔습니다.

 5. 인천 중구 신흥동1가. 2010.9.1.12:11 + F11, 1/80초
 
 부추꽃이 피어나는 둘레로 온갖 풀과 꽃과 나무가 자랍니다. 가을로 접어든 골목동네에서는 부추꽃만 어여쁘지 않습니다. 온갖 가을꽃이 한결같이 어여쁘며, 이 꽃을 돌보며 골목길에 쓰레기 한 점 떨어지지 않도록 아침저녁으로 쓸고 치우는 골목이웃 손길이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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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규 2010-10-13 05:11:25
부추꽃에는 '두 가지' 있습니다. 흔히 아는 잘디잔 꽃이 한 줄기에 여럿 달리는 부추꽃이 있는 한편, 이처럼 한 줄이에 한 송이씩 큼지막하게 달리는 부추꽃이 있어요. 노란 민들레와 하얀 민들레가 있고, 수수꽃다리에도 여러 갈래가 있는데, 왜 부추꽃은 '한 가지'만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박유순 2010-10-03 23:51:54
부추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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