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다리, 서까래와 처마가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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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리, 서까래와 처마가 드러났다!!
  • 강영희
  • 승인 2017.11.02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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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리 통신 12] 옛 것을 살리는 안목과 식견, 삶터에 대한 애정을 기다리며

아침 집회가 끝나고, 농성장 설거지 꺼리를 가지고 '요일가게'에 들렀다가 우각로를 따라 작업실로 가는 길, 배다리 '나눔가게'<돌고(庫)>가 사라졌다.

 

@한옥 앞에 간이 점포를 걷어내니 드러난 한옥 지붕과 서가래, 처마 _2017년 11월 01일 오전


2015년 9월 '배다리 도시학교 시민 도시 상상 혁신 캠프' 참가자들이 사회적 가치와 교류를 논의하다가 사용하지 않은 빈 점포를 발견하면서 이를 활용하자는 의견을 모았고, 빈 점포의 주인인 인천양조장 주인집의 배려로 개보수를 하고 운영방안을 마련해 문을 열었다.
 
이 공간은 아벨서점 곽현숙 사장님이 주인 할머님의 배려로 잠시 책 점포로도 사용하던 자리였다고 전에 인터뷰에서 들려주신 적이 있다.
 
안채로 들어가는 대문 옆 공간이라 인천양조장 어르신과 가족들이 이 건물을 팔고 이사를 가게 되면서 이 공간이 어떻게 될까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했는데, 오늘 아침 헐리고 만 것이다.
 
나누고 싶은 물건을 가져와 이름과 사연을 간단히 쓰고 선반이나 물건에 배치하고, 맘에 드는 물건을 가져갈 때도 전해준 사람에게 감사의 메모를 남기고 가져간다. 가게는 24시간 열려있고, 간간히 프로젝트 진행자였던 '스페이스 빔'이 간간히 청소도 하고 관리도 해왔다. 만 2년이 지날 즈음 건물 전체가 팔렸고, 그러고도 두 달이 지났다.

 

@나눔가게 '돌고'_2015년 10월


건물을 구입한 분은 건물에 세 들어 살던 '유한상사' 사장님이었는데 기존 한옥 안채를 그대로 살려 살림집으로 쓰신다고 하셔서 다행이다 싶었는데 ‘돌고’는 없어질 것이라고 들었다. 그 날이 오늘이었다.
 
그 간이 점포를 걷어내니 멋진 한옥의 서까래와 처마가 드러났다. ‘돌고’가 사라진 건 아쉬웠지만 한옥의 한쪽 용마루 귀퉁이와 대문만 봐오던 필자로서는 ‘정말 멋지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처마 아래 간이점포를 만들었던 판자를 걷어내고, 점포 뒤편으로 있던 안채 쪽 방의 벽을 터서 점포와 붙여서 새 단장하고, 양조장 건물로 들어가 있던 불에 탄 사무실 공간도 함께 정비해서 한옥과 어울리는 품목을 정해 세를 놓으실 생각이라고 하셨다.
 
양조장이 개인에게 팔린다고 할 때의 걱정스러움은 서서히 날아가고 있다. 다행히 안목도 있고, 식견도 넓은 새 주인장이 한옥도 고쳐 쓰고, 한옥 처마를 활용한 가게까지 만든다고 하니 집도, 배다리도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점’ 갤러리카페 일부를 세놓아 쓰시기로 하신 분이 십 수 년 만에 배다리에 왔는데 남아있는 것들 많은데 사라질까봐 걱정스럽다는 말씀을 하셨다. 본인이 숭의동에 사는데 배다리로 넘어오는 길에 있는 전도관 주변의 골목길과 옛 집들이 사라지고 있어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크다며, “왜 고쳐 쓰지 않고 없애지?” 하며 사라지기 전에 사진을 찍어두어야겠다고 하신다.
 
필자는 무조건 그대로 두자는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새로 만들었어도 시간이 지나면 금이 가고 무너지고 삭아가는 현상은 자연스럽다고 본다. 그런 것을 조금 더 오래 보전하는 방법이 살아가는 사람이 지혜롭게 가꾸고 다듬고 사람의 온기와 손 도움으로 보강하는 과정이 더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위험에 노출 되었다면 당연히 새로 만드는 것도 방법이긴 하다. 하지만 건물을 새로 짓기 위해 집을 사서 방치하고 폐가를 만드는 방법을 동원한 투기꾼들도 적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멀쩡한 집도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갈아엎고 아파트로 만들어온 시대가 지나고 있다.
 
오래된 시간을 지닌 건물과 물건들에 대한 시선들은 한때 부수고 버려야한다는 것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몇 년 전 부터는 옛 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게 ‘향수’와 ‘그리움’, ‘추억’, ‘’따뜻함‘, ’고향‘의 그것이 되고, 요즘 세대들에게는 ‘새롭고‘, ’특별하며‘, ’남다르고‘, ’독보적‘인 매력적인 것이 되었다.
 
얼마 전 들렀던 홍대 근처와 합정역 인근의 식당과 카페, 책방 등 다양한 점포들이 8-90년대 주택을 그대로 살려 쓰는 것이 많이 부러웠다. 그들에게 놓인 조건에서 최대한 비용을 아끼고 만드느라 그랬겠지만 정말 젊은이들이 많이 오가고 있었다.
 
창영초교 앞에 새로 들어선 건물은 동구청에서 만든 건물이라고 하는데 주택 4-5채를 밀어내고 만든 것이다. 오래되어 위험하기도 했지만 그 다음에 세워진 건물이 꼭 그렇게 다세대주택-빌라 같은 모양이어야 했을까?
 
길을 낸다고 오래된 건물을 다 밀어냈는데 붉은 벽돌을 그대로 살린 터널 형태의 길과 건물이면 어땠을까? 건물을 보강하고, 건물사이를 거미줄처럼 다리를 이어서 만드는 건 어떨까? 송현터널은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니 주민들이 다양하게 활용할 수도 있고, 공원이 없으니 식물원이 들어서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가도로도 있다고 하니 테라스 카페가 공중정원이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낡고 오래된 빈 점포 뒤에 이렇게 멋진 한옥 처마와 서까래가 있다니 행운이다. 하지만 ‘네 잎 클로버의 행운’이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세 잎 클로버의 행복’은 우리가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닐까? 

아무것도 없고 아무도 살지 않는 사막 위의 뚜다닥 지어낸 라스베거스의 신기루가 아니라 옛 도시를 살려쓰는 파리나 런던, 하이델베르크나 로마의 그것처럼 오래된 삶터를 살려내는 정성과 애정, 섬세한 손길과 고민이 아닐까? 




 
@강남의 가로수길은 그 빛을 잃고, 익선동 등 옛 마을들이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곳도 기존의 원주민들이 살아가는 삶을 돌보지 않은 탓에 얼마나 계속될 수 있을지 모른다. 2017년 10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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