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다리에서는 '느릿느릿,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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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리에서는 '느릿느릿, 천천히'
  • 강영희
  • 승인 2017.11.16 05: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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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리통신 13] 10년 동안, 배다리를 찾는 사람들



한동안 좀 뜸했던 배다리 탐방객들이 많이 늘었다. 개별적으로 오가는 사람들도 많았고, 단체로 오는 분들도 적지 않다.

지난 주말에는 정읍에서 온 정읍고 학생들이 <문학기행>을 스스로 기획해서 왔다며 들렀다. 우신양복점이 유명해서 사진도 찍고 이야기도 듣고 싶다고 왔는데, 주인아저씨가 외출한 상황이라 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다고 하니 아주머니께서 아이들을 카페로 보내신 것. 어떻게 우신양복점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지 궁금했는데 하루 일정이라 바삐 움직이는 아이들과 인솔 교사의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어 마을 사진책과 마을신문, 마을엽서. 마을지도까지 선물로 안겨주었다.

 



@정읍에서 문학기행을 온 정읍고 학생들과 인솔교사
 


또 4일과 11일 두 차례에 걸쳐 토요일 아침에는 인천지역 초, 중고등 학교 역사교사들이 원도심 답사를 도원역에서 시작하면서 마을의 생태공원이고 텃밭정원인 공간에 대한 설명을 원하셔서 ‘배다리 관통 산업도로’의 과정과 상황에 대한 설명을 30분 정도 했다.




@2010년 여름, 한점갤러리, 초등 교사가 아이들과 함께 한점갤러리에 들렀다.

 

10여 년 전에는 공공미술, 지역공동체 미술과 관련해 다양한 마을공동체 활동가들, 당시 문제가 있었던 배다리 산업도로와 관련해 주민들을 지원하고 지지하는 개인과 단체 사람들이 찾아오기도 했었다.

 

그 즈음부터 2-3년가량 마을공동체 관련 현장학습을 오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 이후에는 인천항에 정박하는 페리호의 여행코스에 들어가기도 하고, 인천둘레길 코스가 되면서 바쁜 걸음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여행객들이 종종 있었다.

 

‘배다리 헌책방 거리’와 ‘감리교 여선교사 기숙사, 최초의 사립학교 ‘영화학당’, 인천 최초의 공립보통학교이자 인천 독립만세운동의 시발점이면서 강재구 소령과 미술사학자 고유섭의 학교인 '창영학교'의 이야기 등이 포함된 길이 그 여행코스와 둘레길 코스가 된 이유다. 요즘에는 메이저리거 류현진의 모교로 유명해진 동산고등학교와 연결되기도 한다.

 

학생들과 함께 공공미술, 지역공동체 등과 관련해 연구하는 사람들도 계속 찾아왔고, 한 대학의 교수는 배다리에 대한 애정과 관심으로 여름과 겨울방학에 문화인턴을 뽑아 배다리의 문화공간에서 활동하도록 보내기도 했다.

 

도로 반대 활동을 함께 했던 인천지역의 단체가 마을에 들어오는가 하면, 지역소재 학교의 교사가 골목답사팀을 만들어 배다리를 시작으로 인근의 골목답사를 시작하기도 했다.

 

배다리 산업도로 공사가 중단되고, 문화 공간이 좀 늘어나면서 배다리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좀 달라졌다. 산업도로 반대투쟁의 과정을 듣고자 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마을에 온기를 더하는 벽화가 생겨서 이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생겼고, 여전히 벽화거리가 어디에 있냐며 찾아온다.
 




@10년 동안 멈춘 도로를 다시 개통하겠다고 해서 지난 9월 다시 관통도로 폐기를 요청하며 주민들이 다시 집회와 텐트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물론 배다리에 벽화는 있지만 벽화거리가 따로 조성된 적은 없다. 마을에 사람들이 자주 오고 가는 길에 있는 회색 콘크리트 벽들에 활기를 더하기 위해 그리게 된 게 이 마을 벽화의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여고생들의 통학길에 ‘고양이의 등굣길’ 그림이 있고, 창영초 아이들이 오고가는 길 옆에 학교 아이들과 함께 그리고 만든 타일벽화, 민방위교육장 옆 썰렁했고 무채색이었던 벽에 이 마을의 옛 모습과 골목을 그려 넣는 식이었기 때문이다.

 


@마을의 모습이 담긴 충인상회 벽화

 

마을을 가꾸고, 고치고, 다듬는 손이 있으면 덜 상하고, 오래된 것들도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소박한 생각에서 시작한 벽화 그리기와 고치기, 화단 가꾸기가 그래서 외부인들은 잘 모르는 골목길 안 ‘비밀의 화원’을 만들어 놓기도 했다.

 

산업도로 반대투쟁 과정을 통해 배다리 이름이 곳곳에 전해지면서 이 곳 창영학교를 다녔다는 2-3대가 찾아오기도 하는데 4-50년 전에 살았다며 찾아오는 분, 2-30년 전에 살았다는 우리 세대, 요즘엔 2-30대 청년들도 어려서 살다가 떠났다며 찾아오기도 한다.




 


이들은 금곡동 창영동 일대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경인전철 복복선 공사와 산업도로와 주차장 공사 등으로 떠나게 된 젊은 층이나 그들의 부모 세대들이다. 때때로 그 부모의 부모세대들이 창영학교를 졸업했다며 죽기 전에 다시 와볼 줄 몰랐다며 들러 가는 분들도 계셨다.

 

다양한 시대의 서민들에 건물이 있고, 공터에 언덕 모습까지 남아서 영화촬영이나 드라마 촬영을 종종 오기도 하는데, 특히나 지난해 드라마 ‘도깨비’의 열풍으로 여전히 많은 이들이 찍고 스쳐가는 코스가 되었다. 도깨비 열풍이 생각보다 거세서 내 작은 갤러리카페에 대만 여행객이 길을 찾느라 들러 가기도 했다.


 

@인천지역 초중고 역사 선생님들이 배다리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둘러보고 있다.

 

지역의 대학생들도 다양한 학과에서 과제로 배다리 산업도로와 문화, 공동체등에 대해 잠시 물어보고 갔고, 가톨릭 노동사목의 책읽기 모임을 하는 분들도 종종 곳곳을 다니는데, 지역을 잘 아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을을 둘러보고 싶다고 해서 2-3시간가량 마을 골목골목을 걸어 다니며 마을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인근 주민들과 마을 골목을 걸어보고, 문화공간들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들으며 마을신문을 만들고 있다. 일상의 공간이니 모를 곳이 없기도 하지만 이웃 공간들도 쉽게 발을 들이는 시대는 아니어서 자세히는 몰랐다며 흥미로워 하셨고, 재미있다고 하셨다. 마을을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분도 계셨다.




@마을주민들이 마을 곳곳을 둘러보며 공부하고 있다.

 

상황이 안돼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못한 새 이웃들 중에서도 마을을 자세히 알고 싶다며 마을답사가 있으면 불러달라고도 하셨다. 자동차로 지날 때는 재개발 될 동네인가 했는데 걸어서 돌아다녀 보니 좋더라며 인사를 건네는 분들도 종종 카페에 들른다.

 

팍팍한 도시 속에서 만나는 시골풍경 같아서 푸근하고 따듯하다고 한다. 나비가 생활사전시관에 오르는 가파른 계단에 써 놓은 ‘느릿느릿 천천히’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과 함께 배다리 산책길의 표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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