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교사', 그들은 왜 직장을 떠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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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교사', 그들은 왜 직장을 떠나는가?
  • 이병기
  • 승인 2010.10.07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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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보육교사의 고백] 어린이집의 '비리 백태'

취재: 이병기 기자

월차나 연차는 다른 나라 이야기다. 생리휴가는 언감생심. 점심 때 아이들을 챙기다 보면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알 수도 없다. 보육교사가 항상 아이들과 붙어 있어야 한다면 화장실은 언제 가란 말인가.

최저임금보다 약간 높은 보수에 하루 10시간을 꼬박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이들은 '보육교사'라 불린다. 단지 아이들이 좋아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고 묵묵히 일하는 그들이지만, 이제는 우리의 소중한 자녀들을 돌봐주는 이들의 열악한 처지를 한 번 쯤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박소영(가명)씨는 올해로 8년차 보육교사다.

인천의 한 민간 어린이집에서 근무하는 박씨는 아침 8시에 출근하면 저녁 6시까지, 30분 늦게 나가면 7시가 넘어 퇴근한다. 그가 다니는 어린이집에는 60여명의 아이들과 9명의 보육교사가 생활하고 있다.

박씨는 "우린 근로자에도 포함되지 않고, 교사로서 혜택도 없다"라고 말한다.

교육청 소속인 초·중·고나 유치원 교사와 달리 아무런 연고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그들과는 "대우가 다르다"고 토로한다.

"월차나 연차, 생리휴가는 방학 중에만 더해서 쓸 수 있어요. 하지만 어린이집의 경우는 구청에서 방학도 하지 못하게 해요. 어린이집을 만든 취지가 맞벌이 부부를 위해 만들었기 때문에 항상 개방해야 한다나요. 올해는 아이들이 한 명도 없는 곳을 선생님 혼자 나와 지켰어요."

휴가도 일반 회사처럼 이어서 쓰지도 못하고. 처음 입사할 때는 주5일 근무인줄 알았지만, 나중에 원장이 말하길, 주6일 근무해야 한단다. 토요일도 오전 8시에 나와 점심을 넘기고 들어간다.

물론 법적으로는 하루 8시간, 초과 근무에 대해선 시간외 수당을 지급해야 하지만, '민간 어린이집'에는 원장의 말이 법이다. 당연히 근무시간외 수당은 기대하기 어렵다.

"보육교사는 원장이 되지 않으면 돈을 벌지 못해요. 유치원 정교사는 호봉제로 하기 때문에 급여가 많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거든요. 8년 전 기본급이 팔십 얼마였는데 지금도 같아요. 다만 다른 항목으로 월급이 조금 늘죠." 

박소영씨가 현재 맡고 있는 아이들은 2세 7명. 그러나 이는 명목상일 뿐 방 하나에 교사 3명과 21명의 아이들이 함께 생활한다.

"이렇게 지내다 보면 내가 7명을 책임지는 게 아니라 21명 모두를 돌보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차라리 7명만 돌보는 게 좋은데, 한 방에 있으니 교사 3명 개개인이 21명의 아이들을 돌보는 것과 마찬가지죠. 집에 돌아오면 머리가 멍 해서 바로 쓰러져요."

보육교사들의 처지를 조금이나마 아는 사람들은 "그들에겐 점심시간이 없다"라고 말한다. 보육교사들의 점심시간은 정신 없이 아이들 밥 먹는 것만 챙기다가 끝난다. 박씨는 "도대체 어떤 회사가 점심시간에 일을 시키냐"라고 불만을 터뜨린다.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가는 것 역시 쉽지 않다.

"보육교사 대부분이 애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예요. 아이들을 아끼는 보육교사가 자기가 병원을 간 사이에 다른 반 선생님과 아이들 속에 자기 반 아이들이 있다면 걱정이 안 되겠어요? 그 선생님도 자기네 반 아이들부터 챙길 텐데요. 이럴 때 보면 착하고 남에게 모질게 대하지 못하는 보육교사들을 원장들이 악용하는 것 같은 생각도 들어요."

얼마 전 박씨도 아이들이 나오기 전 시간에 맞춰 병원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일부 아이들은 8시부터 나오기도 하는데, 때마침 그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아이가 다치는 일이 일어났다. 모든 잘못은 박씨만의 책임으로 변했다.

어린이집 보육교사 중에는 전공이 아닌 교사들도 상당수다. 1년 과정만 거치면 아이들을 돌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부 원장들은 경력이 오래된 보육교사들을 꺼려하는 경향도 있다고 한다.

"솔직히 아이들 돌보는 일은 처음 들어온 교사도 가능해요. 애들이 좋아서 시작하는 사람들. 이미 보육교사가 힘들다는 얘기를 듣고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힘들어도 참고 하는 거죠. 원장도 처음 들어온 사람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내가 보육교사지만 아이들이 불쌍해"

일부 원장들의 부조리한 행태 고발도 서슴 없었다.

"원장들이 뒤로 받지 않아도 될 돈을 학부모들에게 받거나, 이미 원비에 포함된 항목도 또 받는 경우가 있어요. 심지어는 개인이 사용하는 돈도 어린이집에서 사용한 것처럼 꾸미죠. 국공립 어린이집도 어렵긴 하지만, 원장이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어요. 민간은 너무 쉽죠. 영수증은 거래처에서 눈 감아 주는 경우도 있고, 지인을 통해 가짜를 만들기도 해요. 서류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죠."

하지만 구청이나 상급기관에서 감사가 나올 경우 다른 어린이집에서 사전에 연락을 해줘 대처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런 대처는 국가가 실시하는 '평가인증(제도)'에도 구멍을 뚫는다. 평가인증은 정부가 영유아에게 전문적인 보호와 수준 높은 보육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평가인증지표를 기준으로 해당 보육시설이 현재의 수준을 자체적으로 점검하고, 개선한 후 이를 평가해 인증을 부여하는 제도다.

좋은 취지로 시작된 제도지만,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보육교사는 항상 아이들과 함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교실에만 있어야 해요. 점검을 나오면 교사가 아이들 옆에 붙어있어야 하는데, 밥은 누가 가져다 주나요? 평가인증이 열리는 딱 하루만 주방 아주머니가 가져다 주시는 거예요. 이후에는 다시 보육교사가 직접 다 하죠."

그는 아이들이 사용하는 세면대만 봐도 평가인증의 허술함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아이들이 사용하기엔 턱없이 높고, 그렇다고 교사가 사용하기엔 낮은 세면대 같은 기본적인 시설조차 점검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것이다.

충격적인 사실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박소영씨는 어린이집에서 일한 지난 8년 동안 단 한 번도 집처럼 따끈따끈한 어린이집에 있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번 여름에 좀 더웠나요? 에어컨이 고장 났는데 원장은 고쳐주지도 않아요. 그냥 놔둬도 어린이집은 굴러가니까요. 학부모가 전화라도 하면 교사들이 막아요. 하루는 한 학부모가 아이에게 땀띠가 생겼다고 전화가 왔어요. 그럴 땐 '감기 걸린 다른 아이가 있어 세게 틀지 않았어요'라든지, 아이들은 항상 감기를 달고 사는데 '감기가 유행이예요'라고 하죠. 또는 '애들이 이동하는 차 안이 더워 땀띠가 생겼나 봐요'라고 시치미 뚝 떼죠."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먹을거리'도 안전하지 않았다.

"전에 있던 어린이집 원장은 그래도 아이들 음식은 최고로만 했어요. 하지만 대부분 어린이집이 형편 없죠. 음식도 대충대충 만들고 식단과 다른 음식이 나오는 경우도 많아요. 잡곡밥이 나온다고 해놓고 쌀밥이 나오는 거죠. 솔직히 교사들도 먹기 싫을 정도예요. 아이들은 잘 모르니 주는 대로 먹는 거죠. 먹을 걸로 장난 많이 쳐요."

그는 자기 아이가 생기더라도 최대한 데리고 있을 때까지 버티다가 어린이집에 보낼 것이라고 했다. 박씨는 "내가 보육교사지만 아이들이 정말 불쌍하다"라고 말한다.

더군다나 박씨가 일하는 어린이집의 경우 21명이 함께 있기 때문에 아이가 울어도 토닥거려주지 않는다고 했다. 한 명을 안아주고 달래면 다른 아이들 모두가 칭얼거리기 때문이란다. 박씨는 "아이가 5명만 되어도 내 품에서 잘 돌볼 수 있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노동시간 감소가 급선무

인천여성회 부회장이자 보육전문위원인 김혜은 부회장은 "보육교사들의 낮은 급여도 올려야 하겠지만, 그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시간"이라고 말한다.

김 부회장은 "어린이집 원장이나 학부모 등은 모두 협력기구가 있지만 보육교사들은 전무한 실정이다"면서 "교사들의 근무시간을 줄이고, 그들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김 부회장은 "이들은 점심시간까지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는 등 높은 노동강도로 근무하고 있다"면서 "유치원 교사와는 달리 보육교사는 긴 시간 동안 식사도 못할 뿐더러 화장실도 편하게 가지 못하는 형편"이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보육교사들의 평균 근무시간은 10시간 정도다. 보통 회사원들이 점심시간 1시간을 쉬는 것과는 달리 아이들과 함께 밥을 먹는 교사들은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 김 부회장은 교사들의 근무시간을 줄이기 위해 '정규직 대체교사'를 투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또 "3년에 한 번 이뤄지는 평가인증이 보육교사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면서 "시설 크기별로 차이가 있지만, '수 십가지 평가항목들을 점검하기 위해서는 교사를 바꿔야 한다'는 말도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국공립 어린이집에 비해 민간의 경우 통제가 어려운 실정"이라며 "이들에 대한 처우 개선 방안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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