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한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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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한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삶
  • 최종규
  • 승인 2010.10.04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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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성수선, 《밑줄 긋는 여자》

 내 둘레에서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쓴 책이 나온 이야기를 듣고는, 이이 책을 책방마실을 하며 사들일 때 느낌은 사뭇 다르다. 잘 모르는 사람이 쓴 책을 읽을 때하고 조금이나마 안다 싶은 사람이 쓴 책을 읽을 때는 조금 다르다.

 그렇지만 조금 안다 싶은 사람이 쓴 책을 읽는들 이이를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 읽을 때보다 잘 헤아린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꽤 잘 안다 싶은 사람이 쓴 책을 읽는들 이이를 조금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읽을 때보다 잘 받아들인다고 여기지 않는다.

 삼성정밀화학이라는 일터에서 해외영업을 맡으며 살아가는, 그러니까 요즈음으로 치면 ‘여느 회사원’인 성수선 님이 내놓은 《밑줄 긋는 여자》(2009)라는 책을 읽다. 글쓴이를 안다는 까닭 하나 때문에 이 책을 사서 읽는다. 그러나 나로서는 글쓴이를 아주 잘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조금 안다고 말하기조차 쉽지 않다. 밥자리와 술자리를 몇 번 함께한 적이 있다고 얼마나 안다고 할 수 있는가. 얼굴을 안다고 하면 될까. 때때로 헌책방마실을 즐기는 분임을 안다고 하면 될까.

 아는 이 책이라 해서 늘 장만하지는 않는다. 아는 이 책이라 해서 더 사랑하며 읽지는 않는다. 나로서는 내 마음을 사로잡는 책을 읽고 싶을 뿐이다. 나는 내 삶을 일구는 손발에 기운이 나도록 돕는 책을 만나고 싶을 뿐이다.

 《밑줄 긋는 여자》라는 책은 책이름 그대로 ‘책을 읽을 때에 밑줄을 그으며 읽은 여자’ 한 사람이 살아가며 느낀 이야기를 적바림한다.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다. 꼭 글쓴이가 살아가는 만큼 이야기를 풀어낸다.

 “어렸을 때 우리 아빠는 보쌈을 사오시곤 했다. 아빠 회사 앞에는 몇 십 년 전통 원조라는 유명한 보쌈집이 있었는데, 거기서 술을 한잔 하실 때마다 우리 얼굴이 어른어른하셨나 보다. 물론 어렸을 때는 아빠의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투정을 부렸다. ‘치킨도 있고 햄버거도 있는데 아빠는 왜 만날 보쌈만 사오세요?’(16쪽)” 같은 대목을 읽으며 나 또한 밑줄을 긋는다. 나는 “아빠의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투정을 부렸다”라는 글월에 밑줄을 긋는다. 왜냐하면 나 또한 우리 어머니 마음이나 아버지 마음이나 옆지기 마음이나 아이 마음을 제대로 읽는다고는 느끼지 않으니까. 그러면 나는 투정을 부렸던가? 글쎄, 투정을 부릴 새가 어디 있을까. 어린 나날, 아버지한테 투정을 부렸다가는 몽둥이가 날아왔을 텐데. 늘 일에 눌려 고단한 어머니한테 어떻게 투정을 부릴 수 있는가. 학교와 집에서 여러모로 힘들던 형한테 투정을 부릴 수 있을까. 나로서는 투정을 부린다는 어린 나날을 받아들일 수 없다. 다만 내 둘레에서 ‘엄마 아빠한테 투정 부리는 동무’를 보며, ‘이야, 저렇게도 살아가는 식구가 있네?’ 하고 놀라기는 했다.

 “《삼국지》를 열 번 넘게 읽었다고 떠드는 사람들 중에 처세를 잘하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 나 하나 살아 보겠다고 남을 속이고 피해를 준다면, 나 하나 잘되겠다고 남을 헐뜯고 이간질한다면 결국 다 함께 망할 뿐이다(66쪽).” 같은 대목을 읽으며 밑줄을 긋는다. 글쓴이 성수선 님은 그야말로 ‘여느 회사원’이다. 문학책을 즐겨읽는 분이면서 처세책 또한 곧잘 읽는다.

 사람들이 제대로 못 느껴서 그렇지, 처세책도 읽기에 따라 ‘문학을 읽는 마음’이 된다. 문학책도 읽기에 따라 ‘처세를 살피는 마음’이 된다. 어느 책을 골라서 읽든 내 마음이 흐르는 대로 받아들인다. 어느 책을 마주하든 내 삶이 나아가는 대로 곰삭인다. 《삼국지》라는 책을 읽으려 한다면 이 책에 담긴 줄거리대로 지식을 줄줄 외우는 읽기가 아닌, 내 삶을 한결 아름다우며 훌륭한 쪽으로 이끄는 읽기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삼국지》이든 《태백산맥》이든 《토지》이든 읽는 분들이 당신 마음을 아름답거나 훌륭한 쪽으로 이끌고자 하는지는 아리송하다. 사람들은 참말 왜 책을 읽는가. 뭐 하러 책을 읽는가. 사람들은 참으로 왜 영화를 보는가. 뭣 때문에 영화를 보는가.

 내 삶을 볼 줄 모르면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본들 마음이 뭉클할 수 없다. 내 삶을 가꿀 줄 모르면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본들 마음을 살찌울 수 없다.

 “난 내 꿈이 뭐였는지조차 잊은 채 살고 있었는데, 선생님은 졸업하고 한 번 찾아오지 않은 제자를 그토록 기다리고 계셨다(143쪽).” 같은 대목을 읽으며 빙긋 웃는다. ‘글쟁이로서 대단한 이름값’이 없는 여느 회사원인 성수선 님은 꿈을 잊었다고 털털하게 이야기한다. 아마, 적잖은 여느 회사원은 술자리에서 술잔을 부딪히며 ‘내 꿈이 뭐였더라? 나 이렇게 살아도 되나?’ 하고 읊조리다가는 이튿날이 되면 말끔히(?) 양복 차려입고 일터로 달려가 ‘회사에 큰돈 벌어다 주는’ 쳇바퀴 일거리에 매일 테지. 씁쓸하게 읊던 ‘내 꿈은 뭐지?’는 언제나 술자리에서나 읊는 말일 뿐, 정작 당신 삶으로는 받아들이지 않으며 언제까지나 당신 삶을 흘리고 말 테지.

 《밑줄 긋는 여자》는 대단한 책이 아니요 대단한 책일 까닭이 없으며 스스로 대단한 책이 되고자 바라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를 바란다. “……을 읽다가 그만 펑펑 울어 버렸다(166쪽).”고 하듯 글쓴이 삶을 조곤조곤 털어놓으며 말문을 열기를 바란다. 애써 연 말문을 맞은편에서 고즈넉히 맞아들여 주기를 바란다. 여느 회사원으로 살든, 땅을 부치며 살든, 네모난 교실에서 똑같은 지식을 아이들한테 집어넣으며 살든, 날마다 바쁘게 살림하며 바깥사람한테 밥 차려 주고 빨래 해 주며 집 치워 주면서 살든, 저마다 곱고 사랑스러운 넋임을 느끼어 만나자고 말문을 열기를 바란다.

 우리들은 우리 삶을 빛내는 빼어난 세계명작 한 가지를 오른손으로 읽는다면, 우리 삶에 깃든 작은 빛줄기를 꾸밈없이 사랑할 수수한 ‘삶 이야기 담은 책’ 한 가지를 왼손으로 읽어야 즐거우며 어여쁘리라 본다. 즐거우며 어여쁘게 살아가고픈 사람이라면 훌륭한 얼과 수수한 넋을 나란히 사랑하며 아낄 수 있어야지 싶다.


― 밑줄 긋는 여자 (성수선 씀,웅진윙스 펴냄,2009.7.1./12000원)

겉그림. 회사원 삶을 보내는 이라면 즐겁게 만나 볼 만한 책 하나. 자기계발서 백 권보다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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