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개쳐진 기억들, 경동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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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개쳐진 기억들, 경동 일대
  • 유광식
  • 승인 2018.01.26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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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유광식 / 사진작가

▲ 유광식_인천기독병원 입구(이 앞 우측 교차로는 ‘싸리재’ 경동에서 인구유동이 가장 많은 곳이다. 여기서 신포동, 신흥동, 답동, 율목동, 배다리, 동인천역 등으로 갈리는 중요한 목이다.)_2016


2014년 봄, 경동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재개발과 재건축이 어느덧 나의 삶과 함께 하고 있는 것인지, 그 전에 살던 집도 결국 재건축을 하게 되었고, 경동은 몇 안 되는 선택지중의 하나였다. 자주 다니던 동인천 지역이었지만, 또다시 낯설었다. 동인천역에 내리면 좁고 기다란 검은 지하보도를 지나 <하나은행-용동큰우물-용동슈퍼-구)신신예식장> 코스를 걸으며 집으로 향하곤 했다. 고갯마루 건너편 답동성당의 종탑을 보고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했다. 조용한 오솔길을 오르듯 했던 경동집은 이젠 과거의 흔적이 되었지만, 집 주변의‘신신’이라는 간판 이름에 유독 기분이 좋았던 것을 때때로 회상하게 된다. 주변 지인 분들의 부모님이 신신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는 이야기를 간간히 들으면 귀가 솔깃해졌었다. 과거의 신신예식장은 이제 요양원이 되어 있지만, 여전히 우람한 자태로 언덕 위에 서있다. 많은 하객들이 언덕 위의 예식장을 바라보던 순간을 상상할 만한 자태가 아직 남아있는 것이다. 새로운 인생의 시작을 축하하던 출발의 공간이 어느새 삶을 정리하는 공간으로 바뀌게 된 것을 보면, 터의 역사란 또 돌고 돌 것인지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 유광식_구)신신예식장 주차장에서 서쪽 내리교회 방향으로 위치해 있는 장기 숙박업소 및 구멍가게:금보슈퍼(신신예식장의 명성인 듯 주변에는 신신이라는 상호명이 많이 분포하고 있다.)_2015


경동이 신포동보다는 그 존재감이 크지 않을지 모르지만 교통, 금융, 문화, 의료, 생활, 숙박 등으로 오랜 시간 북적북적 했음을 걷는 걸음 속에 느낄 수 있다.‘싸리재’는 예전에 서울로 가는 중요한 길목이었고, 지금도 신포동과 배다리 구역을 긴밀하게 연결하고 있다. 5년 전에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하면서 묵었던 공간은 주인아저씨가 살던 집으로, 이후‘싸리재’라는 카페 공간으로 새롭게 변신하였다. 커피에 빠지고 음악에 빠지셨던 아저씨는 한 때 남한의 해안선을 주말마다 걷는 도전을 하셨는데, 남은 해안선에 대한 계획은 어떠신지 궁금하다. 백반집, 국수집, 삼치집도 소개시켜 주시던 자상한 아저씨였다. 근처 옛 얼음창고에서 전시를 열적에는 쇼핑수레도 빌려주셨는데, 그 마음이 어느새 경동의 이미지로 남게 될 줄은 몰랐다. 이제는 싸리재 고개를 생각하면‘싸리재’카페가 떠오를 만큼, 또다시 중요한 동네의 장소가 되었다.


▲ 유광식_용동 칼국수 거리(이제 세 곳만 남아 있다. 중앙의 고집칼국수는 고집이 꺽였는지 폐업하였고 갈비집이 되었다. 새집칼국수는 첫째, 셋째 일요일에 초가집칼국수는 둘째, 넷째 토요일에 쉰다.)_2013


함께 붙어 있던 용동의 모습도 경동과 그리 다르진 않다. 지금도 우리은행을 비롯한 몇 몇 은행이 있기도 하고, 바로 길 건너의 동인천역과 매우 근접하다. 용동은 또한 많은 사람들의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다. 예전엔 이곳에 음악다방들이 있었고, 사람들은 여럿이 이곳에 모여 맥주를 마시며 우정을 나누기도 했다.‘로젠켈라’나 ‘마음과 마음’과 같은 곳들은 옛 인천의 명동이었던 동인천 지역에 향수가 있는 이라면 누구나 알 만큼 대단했다. 용동은 인천의 거대 의료기관인 길병원의 모태가 되고 지금은 기념관이 된 산부인과가 있던 지역이기도 하다. 교회도 있고 절도 있는, 그만큼 맛집도 많은 동네다.


▲ 유광식_용동의 남아 있는 여인숙들(골목집은 영업을 하지 않고 뒤쪽 김제여인숙이 운영되고 있다. 송미松美 여인숙은 길 안쪽에 위치했었는데 좌우측 집들을 허문 후 주차장 조성으로 말미암아 외부로 노출되었다. 경동과 용동엔 숙박업소가 많은 잠자리라서 그런지 조용함이 묻어나기도.)_2012, 2011

▲ 유광식_용동의 중심가(산부인과 기념관, 동인천 길병원, 큰우물, 외부로 노출된 송미여인숙 등이 주차난국 속에 위치한다. 주차장 부지에 ‘마음과 마음’주점도 한 때 자리했다가 팔렸다.)_2018


경동과 용동은 옛 추억을 떠올리며 길을 걷다가도, 군데군데 상실되고 변형된 그림자를 짙게 느끼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경동에는 5층 건물이 통째로 비어있는 곳이 그 주변으로 세 건물이 넘는다. 모두 산부인과 건물이다. 더 이상 영유아의 울음소리가 아닌 어르신들의 신음소리가 많아진 시대상이 슬프게 다가오지만, 어르신들이 평온하길 가끔씩 기도하고 그랬던 것도 같다. 결혼과 관련한 예식장과 양복점, 한복점 등은 버틸만한 깜냥이 아니고서야 다 밀렸고, 병원과 요양원, 약국만 성업하는 추세다. 그나마 옛 여인숙 건물을 리모델링해 교회가 들어선 경우가 좀 이례적이었다. 일부 기와지붕 가옥이나 창고 등이 몇몇 사람들에 의해 그 가치가 지켜지고 있다지만, 대세에 이끌려 집을 부수고 높은 빌딩집을 짓는 패턴은 당분간 지속될 게 뻔하다. 주변의 여인숙 운영은 장기투숙인으로 영업을 이어가고 있고, 안쪽에 있던 ‘송미松美 여인숙’은 주변이 다 헐려 그 모습이 본의 아니게 밖으로 노출되는 형국이 되었다. 용동 큰우물은 박제되었고, 향수를 머금던 ‘마음과 마음’은 더 이상 마음을 잇지 못한 채 철거되었다. 전반적으로 옛 번성의 색채가 옅어져 회색조가 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 유광식_구)신신예식장을 알려주는 대형 이정표(외벽 도색으로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다.)_2012


경동과 용동의 현재 모습은 담담하면서도 상당히 쓸쓸한 풍경이다. 그나마 굽이굽이 골목길이 위안해 주지만, 그마저도 자동차가 빼곡히 띠를 두르며 조이고 있다. 언제부터 자동차가 사람보다 먼저였는지 화가 치밀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사는 집 가까이에 극장이 있다는 사실에 단조로울만한 시간을 주물럭주물럭 한다. 이곳 사람들은 다른 지역보다 옛 극장에 대한 추억이 각별한 것 같다. 동인천역 주변으로 많은 영화공간들이 있었지만, 현재 시설이 운영되고 있는 곳은 애관극장과 미림극장 두 곳 뿐이다. 사는 곳 주변에 문화시설이 부재하면 도시의 삭막함을 더욱 깊숙이 느끼게 된다. 그렇게 되면 사는 곳에 대한 애착을 느끼기가 어려워지고 만다. 그에 비하면 경동과 용동은 작은 동산에 각종 시설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음이 다채롭다. 옛 얼음창고였다던 소극장 ‘플레이캠퍼스(대표:장한섬)’는 옛날만큼의 성시를 이루진 못하더라도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지역의 장소인데, 사람들은 이를 알 턱이 없다.  



▲ 유광식_애관극장 후문 주차장 앞(신포동에서 놀다가 늦은 저녁 이 길을 통해 집으로 향하곤 했다. 좌측 주차장은 현재 최신 모텔이 신축되어 영업중이다.)_2015


▲ 유광식_오래된 약국 옆의 펜스에 나붙은 현수막들(이미 없어진 극장명을 사용하는 것이 이채롭다.)_2015


요즘 가상화폐가 사회적으로 이슈다. 당국은 엄중처벌을 예고하지만, 화폐를 채굴하는 광부의 증가를 과연 온전히 막을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게 된다. 어찌될는지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이와는 별개로 인천에서는 아슬아슬한 관망이 있다. 최근 인천 중구 경동의 애관극장이 매물로 나온 것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곧장 성명서를 내며 극장주에게 호소하기도 하고 시에 관심을 요청하고 있지만, 그 결과를 알 수는 없다. 미림극장은 실버극장으로 방향을 잡아 나가고 있다지만 애관극장은 멀티플렉스 극장으로, 그 수지타산을 맞추기가 녹록치 않았다. 그나마 이제까지 버텨왔음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극장이 매물로 나오게 된 것에 대한 많은 이들의 이해와 우려는 그 후 정해진 수순이었다. 몇 년 전 대한서림이 사라진다고 했을 때 각계인사들이 민원 아닌 민원을 주장하여 그 맥을 연명하게 되었지만, 이번 건은 좀 더 어려운 경우로 보인다. 마음이야 극장을 그대로 운영할 수 있는 분이 있었으면 하겠으나, 행여 ‘중구나라 우주상사’인 구청측이 극장을 매입하여 또 다른 주차장으로 만들지는 않을까 조바심이 난다. 이와 유사한 일들이 동인천 권역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기에. 중구청은 인천 민주시민문화의 역사가 깃든 인천 가톨릭회관을 매입해 몽땅 건물을 부수고는 주차장으로 변신시키는 중이고, 우현로35,39번길을 각국거리조성이라는 엉뚱한 사업을 내세워 국거리도 안 되는 자주색으로 물들여 놨다. 이 과정에서 옛 동방극장 건물도 이용가치를 논할 새도 없이 사라졌다. 신포동 금강제화 앞 대형 트리사업은 또 어떤가. 파괴와 상실의 시간이 너무도 곁에 붙었다. 이제는 단순한 상실이 아닌, 실종된 장소와 풍경들에 말문이 막히며 분노가 일어난다.

 

▲ 유광식_용동슈퍼 앞. 오래된 스포츠카를 보유한 어느 (세입?)사람의 기와 얹은 집과 그 옆 빌딩집 신축현장(요즘은 작은 공간이라도 어쩌면 그렇게 집을 재빨리 올리는지 모르겠다.)_2016


동인천 주변은 과거 인천의 원도심으로서, 지금도 많은 근현대 건물과 사적들이 밀집되어 있다. 세월의 풍파를 어쩌겠는가. 오래도록 방치된 공간의 건물은 하나둘 사라지기 마련이다. 한편으로는 늘 일이 벌어졌을 적에야 사람들이 나서지만 늦어버린 형국 또한 탓할 일은 아닌 듯싶다. 언제부턴가 인천 중구 지역에 살다 보면 패배감만 안는 건 아닐까도 생각했다. 오래된 숨들이 피어 자라는 경동의 곡률만큼은 차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우뚝하니 서 있기를 바라지만, 그에 앞서 지역의 유휴공간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 되었으면 한다. 또한 오래된 것들이 결국 사라지는 것이 아무리 자연이라 하더라도, 그 사라짐에 앞서 함께 벗하며 사는 이들에게 그 계획을 말하고, 함께 미래를 모색하는 일이 중요해 보인다. 상실과 실종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변화와 개선된 보존이라는 가치에 귀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이미 숱한 상실을 겪어서 믿기지 않는 미래의 풍경이지만 말이다. 내게는 아직도‘싸리재’ 카페의 릴테잎에서 넘쳐흐르던 오래된 팝송의 멜로디가 짙은 갈색톤 공간을 휘돌아 귓가에 맴도는 것만 같다.



▲ 유광식_Cafe '싸리재'의 릴테잎과 재생기(60분 정도의 길이에 옛 시대의 팝송이 녹음되어 있다. 주인아저씨는 아이들이 아날로그 감성을 성장기 한번은 느낄 필요가 있다고 얘기하셨다.)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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