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다리의 봄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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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리의 봄맞이
  • 강영희
  • 승인 2018.03.22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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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마을 정원 어떻게 가꾸어 가야할까?


배다리의 봄, 눈 내리다.


오늘은 춘분. 제법 절기 값을 하던 날씨는 꼬인 발걸음처럼 갈팡질팡이다. 꽃샘추위는 그러려니 했는데 심지어 하루 종일 눈이 내리고 멈추길 반복했다. 오랜만에 손끝이 다 시린 하루였다. 그래도 쌓이지 않고 녹아 스며드는 이 도시 사람들은 그만 오라고 할 만큼 비가 와야 한다며 적잖은 비를 엄마는 반겼다.




3월 들어서면서 시작한 봄맞이 대청소가 아직도 끝나질 않았다. 공간적인 제약으로 모든 물건을 내놓고 청소하다보니 비가 오거나 날이 좋지 못하면 진행이 어렵다. 물론 정리정돈이 체계적이지 못하고, 잘 버리지 못하는 성향이 있기는 하지만 올해는 유난히 일이 겹친다.

 

볕 좋은 날, 먼지 한 번 털고 햇빛 살균하고 들여놓는다 생각하고 시작한 일이라 큰 덩어리로는 그럭저럭 마무리 됐다. 하지만 각종 서류와 종이와 책, 소품들, 필기구, 그림도구, 공구에 자잘한 물건들이 참 많기도 하다.

 

무엇인가 작업할 수 있는 재료들이라 버리지도 못하고, 마구잡이 공짜로 내 놓아도 누군가에게는 쓰레기가 될 물건을 건네고 싶지는 않다. 벼룩시장이라 하더라도 무조건 싸게 내놓지 않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결국 버릴 수 있는 물건이 거의 없어 구획만 이리 바꾸고 저리 바꾸고 있는 모양새다.

 


도시 속의 마을정원, 어떻게 가꿀까?



@공터를 정리하는 공무원과 공공근로 주민들
 


새해부터 매주 금요일 아침 집회 후 텃밭 정원 청소도 하고, 주변 이웃들에게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말고, 함께 가꿔가자는 전단지도 돌렸다. 지독한 가뭄으로 고생한 배다리 텃밭 정원 땅도 이어지는 봄비에 부드러워졌다.

 

금창동이 재개발 해제가 되면서 이런저런 사업 제안이 들어와 논의하느라 겨우겨우 청소만 하는 사이에 구청이 대대적으로 정리를 하고 청소를 했다. 늦었지만 주민들이 논의한 내용을 전달해 고랑을 중심으로 동쪽 언덕은 구청이 가꾸고, 서쪽은 주민들이 도모해 새로운 정원 가꾸기를 시도해 보기로 했다.



@2007년 도로부지를 둘러싼 철책안으로 들어가 돌을 고르고 텃밭을 가꿨다.


작년 이맘때는 ‘경작금지’ 현수막이 텃밭 한 가운데 꽂히면서 관 주도의 일률적 꽃밭조성을 시도하려던 구청의 계획에 주민들이 필사적으로 제동을 걸었다. 적잖은 갈등을 겨우겨우 조절한 차에 다시 주민들이 설치한 놀이터를 철거하면서 재차 갈등이 빚어졌고, 거기에 더해 지독한 가뭄으로 아름다운 꽃은 피우지 못한 채 한 해가 지났다.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들이 달라서 주민과 주민, 구청과 주민들 사이에 이런저런 힘겨루기가 있었다. 관리의 편리함과 드러내기에 좋게 같은 꽃을 가꾸려는 구청과 이런 저런 꽃을 심어 가꾸려는 주민, 생태계의 힘을 믿고 자연 그대로 자유롭게 자라게 해야 한다는 주민들이 그랬다.

 

‘이 것 아니면 저 것’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각자의 미적 감각에 맞춰 다양한 방식의 노력을 해볼 만한 넓이니 각자의 아름다움을 존중하자는 것. 물론 관은 관리의 편리함과 전시성 행정의 생리상 한가지로 하고 싶겠지만 주민들의 의견을 존중해줬고, 그냥 방치된 느낌을 줘서 쓰레기가 버려지는 상황이 연출되지 않으면 생태적이고 자연적인 방식도 허용키로 했다.



@2010년 철책을 걷어낸 후 모습
 


큰 고민 없이 그대로 두고 청소하는 정도의 노력만으로 자연스러운 마을정원을 생각했었던 ‘주민들이 가꾸는 마을정원’의 경우 ‘공터가 방치되어 해충이 들끓고 쓰레기가 버려진다.’는 민원이 생길 정도로 잘 알지도 못하고 잘 관리도 못해 실패한 경험이 있다.

 

이에 배다리 텃밭정원 흙의 특징과 도시 가운데 있는 특성이 무엇이고 여기에 맞는 경작 방법은 뭘까? 주민들이 자기 생업과 가정생활을 하면서 함께 가꾸는 방법은 무엇일까? 주민들이 기본적으로 적은 상황에서 얼마나 참여가 가능할까? 도시에서의 정원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주민들은 얼마나 관심이 있을까? 자연적인 정원 가꾸기 강좌에 주민들이 얼마나 함께 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얼마나 노력과 관심을 기울일 수 있을까? 잘 가꿔낸다면 어떤 모습일까? 다시 실패하면 어떻게 해야할까?

 

혼자 풀 수 있는 문제도 아닌데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결과에 대해서는 어떤 누구도, 무엇도 확언할 수 없으니 결국 과정이 아닐까? 바라는 결과가 나온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이 경우 결과보다는 과정의 의미다. 각자의 삶을 이어 붙이는 과정이 어떻게 펼쳐질지가 관건이다.

 

어떤 모자이크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각자의 삶이 어떻게 함께 어우러질 수 있을지 십 수 년째이지만 여전히 변하는 상황과 조건들로 가늠할 수 없다. 가늠할 수 없어서 흥미진진한 세상이고 삶이겠지만 그 시간이 길어지니 슬그머니 집과 마을은 별일이 없으면 좋겠다.
 


이번 주 금요일에는 꽃씨를 심고, 다음주 금요일(3/30)에는 농성 천막 대청소를 하기로 했다. 그 날은 천막행동 200일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그렇게 다시 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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