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낯섦, 송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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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낯섦, 송림동
  • 유광식
  • 승인 2018.03.23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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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유광식 / 사진작가
▲ 유광식_수도국산(만수산)에서 동쪽 방향으로 바라 본 송림동 일대(활터고개)_2016

송림로터리에는 파란색과 녹색의 시내버스들이 끊임없이 운행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로터리여서 그런지 차량의 유입이 자연스럽다. 거리에는 아케이드 같은 상점과 시장이 있어 송림동의 오래된 풍경에 친근한 리듬감을 부여한다. 새로운 상점들과 물건이 거리에 보이더라도 오랜 송림동의 풍경 속에 자연스럽게 묻히고 만다. 동구를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송림로터리를 중심으로 분지형을 이루고 있다. 꼭 커다란 냉면그릇 같다는 생각이다. 요즘은 헬기 대신 드론을 이용해 상공에서 사진을 많이 찍는 풍조로, 예전에는 길 사이사이로 보이는 사람들을 찍은 사진이 주였다면 이제는 익명성이 강조되어 ‘닭 쫓던 개’ 지붕만 정말 많이 쳐다보게 되는 시절이 된 것도 같아 씁쓸은 하다. 
현대시장 건너편에 구)현대극장이 있다. 지금은 간판을 나부끼며 영화가 아닌 생활용품 판매를 절찬리에 상영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영화관 이름인 ‘현대’라는 상호명도 주변에 많이 남아 있다. 나는 영화 한 편 관람하지 못했지만 빨간 타일이 머금은 시간의 깊이만큼이나 애잔한 마음이 이는 건 봄 마냥 어쩔 수가 없다. 이곳을 거쳐 간 사람들로 보이는 거리의 인상에는 굴곡진 것들이 많다. 닭알탕을 파는 거리가 현대시장 건너편에 자리하고, 거울이나 각종 양은그릇들이 늘어져 손님을 기다리기도 한다. 여름이면 빨간 자두를 비롯한 각종 과일들이 수북이 쌓여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꽃게철엔 농협 앞의 노상에 꽃게가 수 놓인다. 수수해서 그냥 지나칠 풍경들이지만, 먼 훗날 언젠가 한 번씩 떠오를만한 아련한 일상의 기억이 될 듯 싶다. 한편 겨울철만 되면 송림로터리 중앙에는 대여섯 그루의 키만 멀대 같이 크고 앙상한 소나무가 전구트리에 휘감겨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보는 내내 마음이 착잡했다. 우리는 나무에게 어울리지 않는 치장을 강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많던 소나무, 소나무 많던 마을의 소나무는 병충해라도 입은 것일까?         

 
▲ 유광식_송림6동 깊은 골목 생활로에서(어수선하지만 명료한 삶의 정치가 깃들어 있다.)_2018

▲ 유광식_현대시장 맞은편 구)현대극장 건물(간판명이 남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반갑다.)_2008

송림동의 소나무들을 찾아서 걷는다. 송림로터리에서 북쪽으로 오르면 재능대학교가 있는 큰 언덕, 부처산을 따라 사라진 옛 가옥들이 등장한다. 축담붕괴사고 등과 같은 단절의 역사가 거리 사이로 웅성거리는 듯하다. 길 끄트머리까지 가면 한창 철거중인 구역이 나온다. 늘 이 공간을 걸을 때면 해질녘 따사로운 햇빛을 받을 수 있었다. 근처에 지인 작가분이 살고 있어 이곳을 자주 드나들게도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거닐 수 없고 지워야 하는 기억, 마을이 되었다. 거리를 걸으며 병풍처럼 서있는 아파트만을 발견할 뿐이다. 송림4동에는 주거지와는 다소 떨어진 곳에 송림공구상가가 위치한다. 송림공구상가는 조금 더 건장한 모습으로 옆 편에 자리한 인천산업용품유통센터와 더불어 이 나라의 산업을 나란히 뒷받침한다. 인천산업용품유통센터는 겉모습은 우람하지만 사실 송림공구상가보다는 동생 격이다. 12년 전에 송림공구상가에서 ‘전동 그라인더’를 샀었는데, 이후 사용보다는 전시용이 돼 버렸다. 공구상가를 가면 각종 도구에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무얼 만들어볼까란 생각에 흥분이 되곤 한다. 

▲ 유광식_부처산 기슭, 대헌학교뒤 주거환경개선지구 철거 전 모습(철거예정 가옥과 불뚝 솟은 아파트가 대비를 이룬다.)_2013

▲ 유광식_부처산 기슭, 송림4동 성당 아래쪽 어느 작은 가게(팔어유? 집 다 팔렸다!)_2015

▲ 유광식_1994년생 송림공구상가의 고즈넉한 일요일 풍경(이 옆으로 인천산업용품유통센터가 대단위로 조성되어 있다.) _2016

송림로터리 동남쪽으로는 야구로 유명한 동산고가 등장한다. 동산고는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투수 류현진 선수가 나온 학교인데, 동구가 얼마나 안달이 났으면 주변 길을 ‘류현진 거리’로 꾸미기까지 했을까 싶다. 재작년 가을, 동산고에 종종 드나들면서 거리조성이 엉성하단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각종 영상기기와 조명기기, 설치된 모형물은 다소 조악해보였다. 정보는 드문드문 생략되거나 누락되어 있고, 밤에는 보행 시야를 해칠 정도로 LED 사인?이 좋지 않다. 무언가에 홀린 듯 정신이 아찔해지고 만다. 이 거리가 관리가 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은 결국 불쾌하고 무력한 감정을 유발했다. 나만 그런 것인가도 싶어진다. 동산고가 많은 인재들을 제치고 류현진 한명으로만 대표되는 것은 아닌지에 강한 직구를 던져 본다. 동산고 근처의 박문여고는 몇 해 전 송도로 이전했는데 이 또한 말이 많았다. 박문여고가 떠난 자리엔 이전을 주도한 천주교인천교구청이 답동에서 옮겨 왔다. 

▲ 유광식_동산고 앞 '류현진 야구거리' 외부 사인물(밤에 지나며 보았더니 하얀 귀신머리처럼 보였다.)_2016

▲ 유광식_2016년 12월, 동구청은 송현터널(미개통) 위 전망데크 앞 신정희 동상을 세웠다.(뜬금없는 자리에 왠 동상인가 하는 지역분위기! 동상에 걸린 듯 차갑다.)_2017

깜깜한 동구의 소식들은 더욱 어두워져 이젠 땅속으로 씽씽 내리박힐 지경이다. 지금으로부터 딱 2년 전, 송림초교 인근의 시장입구에 큰 싱크홀(2016.3.28)이 발생했다. 수도권 제2순환고속도로(인천-김포) 지하발파가 사건의 원인으로 거론되었다. 이후 송림초교 교문 앞에도 싱크홀이 생겨 아이들의 등하교 안전에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싱크홀 문제는 점점 심해져 주민들의 생활안전을 심각하게 저해하고 있다. 작년 여름에는 송현동 삼두아파트 주변에까지 싱크홀이 발생하여 주민들은 엄청난 공포와 분노를 느꼈고, 싱크홀 문제 해결을 요청하는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지하발파가 다시금 원인으로 꼽혔다. 한편, 송림초교 위쪽의 수도국산 아래편에는 아직 비어 있는 터널 아닌 터널이 지역주민의 터널증후군으로 어둡게 자리 잡고 있다. 그 많은 소나무 군락을 마을이름으로 만들었던 옛 선인들이 알면 크게 노하실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재의 송림동은 소나무가 많다고 하기엔 힘들고 콘크리트 나무가 자라는, 나무랄 것 없는 동네가 되어있다.

▲ 유광식_송림3동의 어느 작은 가게(정다운 이름답게 정겨운 풍경이다.)_2017

▲ 유광식_수도국산 아래 송림2동, 어느 주택의 외벽화(마을의 풍경과 이야기를 담아 그려서인지 정겹다.)_2017

▲ 유광식_어느 주택 담벼락 낙서(인류기록의 시초인 벽화. 아이들이 해낸다. 돋보인다!)_2017

송림로터리 동북쪽엔 현대시장이 자리하고, 시장 너머로 주택가를 헤집고 다니다가 천광교회 주차장에 도달하여 수도국산 방향을 바라보면 드넓은 송림동의 모습을 조망할 수 있다. 샛골이나 활터라고도 불리는 이곳에서 소나무 자락이 춤추던 상상 아닌 상상을 해보지만, 곳곳에서 허물어지고 사라지는 가옥들 속에 결국은 기운 빠지는 동네의 이미지가 그려지곤 한다. 산다는 곳과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란 질문이 자주자주 돌출된다. 동구는 다른 자치구에 비해서 가장 작은 넓이에 가장 적은 인구인 상황이라 사람들은 동구의 모습이 초라한 신세라고 말하기도 한다. 동구를 다른 구와 합치자는 이야기도 있지만 작은 동네에는 긴밀함이 더 깃들여있는 법이다. 그 속에 겹겹이 쌓인 이야기는 결코 초라한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그 이야기의 실타래를 다 풀어보기 전에는 섣불리 동구를 다른 구와 합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수도국산 일대에 콘크리트로 아파트나무를 심고 송곳으로 터널을 뚫어 놨어도 수도국산 정상에 모아진 물이 새지 않았다. 주민들의 삶의 의지 또한 이처럼 강해서 여전히 어떤 정신으로 살아 숨 쉬는 것 같다. 부처산의 부처님이 자비를 베풀고 있는가는 모르지만 송림로터리를 중심으로 나무가 돌아오는 상상을 한다. 그간의 역사, 이야기, 현재의 상태 속에 공간의 아낌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풍경이면 좋겠다. 주민들의 자치가 새로운 그리고 오래갈 고목의 이미지로 자랄 것이다. 

▲ 유광식_동구청 아래 아리랑회관 별관(우리 삶의 아리랑은 별관 아닌 본관이 어울리지 않을까?)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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