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의 젊은 나이를 어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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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의 젊은 나이를 어찌할 것인가
  • 이김건우
  • 승인 2018.05.28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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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칼럼] 이김건우/서울시립대 2학년




  며칠 전, 영화공간주안에서 영화 <청년 마르크스>를 보았다. 주위에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마르크스의 사상에 경도되었던 젊은 시절이 생각나 이 영화를 찾았다고 했다. 다른 관객들도 그런지 마르크스의 인기가 사그라진 후 태어난 나는 몇 안 되는 관객 중에서 가장 앳되어 보였다. 가장 앳된 관객이었던 내게 젊은 시절은 추억거리가 아니라 지금이다. 그래서 영화관을 찾은 내 머릿속에는 향수가 아니라 ‘한 번의 젊은 나이를 어찌할 것인가’라는 이회영 선생님의 말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영화 속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여태까지 내게 마르크스는 노장이었다. 중학생 때 객기로 잡은 자본론 해설서에서 그의 사진을 봤을 때부터 그랬다. 덥수룩한 흰 수염에 연륜있고 카리스마있는 표정. 이게 200년을 뒤흔든 사상가의 모습이라고 생각해왔다. 물론 젊은 마르크스의 에피소드를 들어 본 적이 없진 않았다. 그가 대학생 때 걸핏하면 수업을 빼먹고 술을 마셨다는 이야기, 거나하게 취해 난동을 부리다가 유치장에 끌려갔다는 이야기, 그의 아버지가 ‘부잣집도 한 해에 500탈러를 쓰지 못 하는데 너는 어떻게 700탈러를 물 쓰듯 쓰냐’고 한탄했다던 이야기. 나는 이 에피소드들을 게으르고 방탕한 내 요즘 생활을 합리화할 때 줄곧 들이댔다. 200년을 뒤흔든 사상가도 20살, 21살 때는 나처럼 수업도 다 빠지고 술로 현실을 잊은 채 사회가 어쩌니 철학이 어쩌니나 떠들어댔다고 말이다. 내게 위인의 모습은 노년의 모습이었고 심지어 그 위인도 스무 살을 이렇게 보냈다니까 꿈을 쫓는 일은 좀 더 나중으로 미루어둬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영화 속 마르크스는 내게 너무 낯설었다. 항상 머릿속으로 그렸던 털보 할아버지의 모습도 아니고, 술자리에서 들먹이던 망나니 대학생의 모습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영화 속 그는 굉장히 열심히 생각하고 글을 쓰는 청년이었다. 영화는 마르크스의 25살부터 30살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1843년 그가 편집장으로 있었던 라인신문이 검열관에 의해 폐간되고 그는 프랑스로 망명을 떠난다. 그는 망명지에서 만난 엥겔스와 서로가 가진 지성에 반해 사상적 동반자가 된다. 이후 이 둘은 당시 국제적인 비밀정치조직이었던 의인동맹에 가입해 헤게모니를 잡는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에 따라 동맹을 공산주의자동맹으로 개편한다. 영화는 개편된 동맹의 강령인 ‘공산당 선언’을 함께 집필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영화는 비록 화려하진 않았지만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영화 군데군데 묻어있던 마르크스의 생각이 새삼 매력적으로 들렸다기보다는, 한 번도 떠올려 보지 못 한 열심히 사는 20대 생활인 마르크스의 모습이 내게 시사하는 바가 많았다. 약 200년 전 20대 청년의 모습이 지금 한국을 살아가는 20대와 딱 들어맞을 수는 없다. 그러나 20대 마르크스 역시 우리가 느끼는 꿈과 현실의 괴리를 느꼈음을 알 수 있었다.

  영화 말미에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다투는 장면이 나온다. 생활고 속에서도 동맹의 문건을 작성해야 하는 마르크스가 좀 쉬고 싶다고 한숨을 내쉰다. 그러고 나선 자신도 동맹의 강령을 작성하는 일이 중요함을 알지만 먹고 사려면 돈을 버는 일이 우선일 수밖에 없다고 언성을 높인다. 지금을 살아가는 많은 20대들도 마찬가지일 테다. 꿈은 가슴 뛰지만 돈이 되진 않는다.  지금의 생활을 부지하려면 꿈과는 멀더라도 돈을 버는 일이 우선이다. 그래서 우리는 잠시 꿈은 접어두고 지금 당장의 생활에 집중하기 바쁘다. 정리하자면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엥겔스는 마르크스를 다독이며 이렇게 대답한다. 지금은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을 한다고. 쉬는 건 나중에 쉴 수 있다고. 엥겔스의 대답은 마치 내게 건네는 말 같았다. 난 요즘 먼 꿈과 지금의 생활을 같이 챙기는 데 지쳐 있었다. 이제는 좀 쉬자는 생각에 알바가 끝나면 술자리에 끼기 급급했다. 하지만 엥겔스의 말을 듣는 순간 ‘지금 해야 하는 일’,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대라 경험이 적지만 또 관성에 젖어 있지 않기에 날카롭게 할 수 있는 말들, 모든 것이 불안하지만 또 불안 속에서만 해낼 수 있는 통찰들이 있다. 이 일들은 다른 세대가 아닌 청년이기 때문에 더 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꿈을 쫓아가며 이 일들을 한다면 우리는 좀 더 꿈에 가까워 질 수 있다.

  물론 “꿈을 쫓자”는 말은 무책임하게 들릴 수 있다. 당장 한 달 생활비도 벌기 바쁜 현실을 내팽겨 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런 무책임한 말은 던지기 싫다. 힘겨운 현실은 직시해야 한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청년이기에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 그러니 힘겹더라도 우리 모두가 꿈을 붙잡고 지금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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