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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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용치
  • 유광식
  • 승인 2018.06.29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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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유광식 / 사진작가
산곡동, 2018ⓒ유광식


푸른 밤이 있는 따사로운 곳을 떠올릴 때 바로 연상되는 곳은 제주일 것이다. 그러나 인천에도 제주 못지않은 푸른 곳이 있다. 아니, 이 장소의 지난날이 푸르렀다고 할 수 있겠다. 산곡동은 대다수 노동자들의 사택이 줄지어 모여 있던 곳으로, 관련 산업이 침체되면서 인천의 저명한 낙후지역이 되었다. 지난 날, 수 없이 달려 든 삶의 나방들이 산 아래 한데 모여 살던 곳! 재개발의 바람은 시원한 골바람처럼 불어 닥쳤고 현재 산곡동은 산 위에서부터 서서히 리뉴얼중이다. 얼마나 푸른 기억이었을까? 얼마나 짙푸른 깊이였을까?

산곡동에는 무지개아파트가 있다.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색깔은 꼬마였을 적엔 외우기도 힘들었다. 다른 아이가 줄줄 외우는 꼬락서니를 보고 있자면 배가 아프지 않은 적이 없을 정도였는데, 산곡동엔 무지개가 산다. 가난도 있고 부자도 있고 외국인도 있고 어르신도 있고 청년도 있고 떠돌이도 있다. 백마도 있었다. 백마장사거리에는 현재 7호선 연장선 역사를 건설 중이다. 조만간 백마를 가장한 철마가 달릴 것인데..

햇볕이 따사롭게도 보이지만 뾰족한 창 같기도 하다. 그 동안의 번성은 다 한 쪽 쓰레기통에 버려졌다는 것으로 읽히기도 한다. 유난히 푸른 벽은 푸른 밤을 대신하기보다는 새롭고 낯선 떨떠름한 맛의 초기화가 도래하지 않았는가 하는 모습을 암시한다. 긴 시간을 지난 한 세대, 아니 두 세대 정도의 기억과 역사가 짙은 깊이로 물들었다지만 다시 녹아내리고 있는 모습 속에서 마음 한 구석 찬란했다는 무지개 곡선을 멀리 그려보게끔 된다. 사라짐 직전이 이렇게 찬란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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