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장거리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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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장거리 경주
  • 장재영
  • 승인 2018.07.04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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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장재영 / 공감미술치료센터 기획팀장

1994년 출간된 ‘인생은 예행연습 없는 마라톤이야’ 라는 책은 방황하던 나의 사춘기시절 어머니의 책장에서 슬쩍 빌려 읽었던 책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이영호 전 체육부장관이 암 투병을 하며 자녀들에게 쓴 편지들을 엮은 책으로 자식에게 전하는 인생에 대한 조언들이 담겨있었다. 그 중 가장 마음에 울림이 남았던 구절은 이러했다.


“인생은 정해진 거리가 없는 경주야.
초반이나 중반에 남보다 앞섰다고 우쭐댈 것도 없고,
반대로 남보다 다소 뒤졌다고 절망할 것도 없어.
남은 코스에 최선을 다해야할 뿐이야.”
[출처 : 인생은 예행연습 없는 마라톤이야, 이영호 지음]


그 당시 공부도 운동도 딱히 잘하는 것도 없다고 생각되어 의기소침해있던 나에게 이 구절은 용기를 낼 수 있는 마음가짐을 일깨워주었고 ‘그래 잘 못하더라도 한번 해보자.’ 라는 희망적인 생각을 갖게 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책, 음악, 영화 등등 마라톤을 인생에 비유하는 경우는 종종 볼 수 있다. 그만큼 치열한 자신과의 싸움이 동반되며 직선 곡선 도로와 오르막 내리막 길을 거쳐 결승점으로 도달하는 과정이 마치 굴곡 있는 인생의 큰 흐름과 많이 닮았다는 느낌이 들어서일까?
마라톤을 나가는 사람들은 힘들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겨낼까?
모든 과정을 이겨내고 완주 메달을 목에 거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이런 생각들은 내게 한번쯤 도전하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켰고 몇 년째 다이어리 앞쪽 하고 싶은 것들 목록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마라톤 첫 도전은 어느 날 갑자기 현실이 되었다.

혼자서는 쉽사리 용기가 나지 않아 마라톤을 몇번 나가봤다는 후배를 꼬드겨 10키로 마라톤을 함께 하게 되었고, 대회를 며칠 앞두고 다리를 다쳤다는 후배의 비보를 전해 들으며 대회 전날 밤까지 나갈지 말지 엄청 고민을 했다. 마침, 당일 비도 쏟아진다고 하니 꾀를 부리기 딱 좋은 핑계거리였지만, 그래도 기왕하기로 했으니 한번 해보자는 마음에 혼자 출전을 감행하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대회가 열리는 서울 상암월드컵 경기장에 있는 평화의 공원으로 향했다. 체력 보충을 위해 에너지바도 먹고 뿌리는 파스도 챙겼다. 비도 오고 날씨도 별로 좋지 않았지만 뭔가 도전한다는 느낌에 가슴이 뛰었다. 출발지점에서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잠시 들었으나 막상 뛰기 시작하니 스스로에 대한 걱정은 점차 사그라들며 온전히 달리고 있는 몸과 호흡에 집중하게 되었다.

몸도 가볍고 아침 공기는 무척 상쾌했다. 무엇보다 이렇게 많은 대인원이 다같이 달리기를 한다는게 정말 재미있고 볼 만한 풍경이었다. 코스 곳곳에는 재미난 볼거리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푸르른 초록빛이 감돌던 공원을 벗어나 작은 터널에 들어가자 사이키 조명과 함께 신나는 댄스음악이 흘러나와 러너들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차량이 통제된 양화대교 위를 달리는 기분도 정말 일품이었다. 차로만 다니던 다리 위를 뛰고 있노라니 참 신선한 기분이 들어 뛰는 와중에 연신 셔터를 눌러대며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달리기 시작한지 5키로가 넘어가자 슬슬 숨이 가빠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하.. 좀 천천히 갈까? 조금만 쉴까?’ 머릿속에 온갖 생각들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래도 쉬면 의지가 꺾일까 싶어 쉬지않고 천천히 나마 계속 뛰었다. 몸이 고통을 호소하는게 느껴졌고 그때부터가 진정 나와의 싸움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결승선에 들어가서 기뻐하고있을 내 모습을 상상하며 뛰었고 그 생각도 더 이상 약빨이 받지않자 마라톤 마치고 사우나에 가서 몸을 푹 담글 생각, 어떤 점심을 맛나게 먹을지 생각하며 정신을 몸으로부터 분리시키려고 애를 썼다.




8키로가 조금 넘었을 때는 오른쪽 무릎이 조금씩 아파왔다. 마라톤을 나가기로 하고 예행연습을 좀 더 했었으면 좋았을 껄 하는 아쉬움도 밀려왔다. 힘들다고 그냥 주저앉아 쉬고 싶지는 않고 그렇다고 너무 무리하면 안되겠다 싶었기에 뛰는 대신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잠시 걸으면서 체력을 충전하고 있으려니, 아주 천천히 뛰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그분은 속도가 빠르지는 않았지만 일정한 속도로 천천히 쉬지 않고 뛰고 있었다.

천천히 시야에서 멀어져가는 그를 바라보며 나는 다시 속도를 내었다. 체력이 조금 회복되었는지 다시 기운을 차렸고 잃었던 점수를 회복하기라도 하듯 천천히 달리던 그를 금방 앞질렀다. 하지만, 한번 걷고 나니 두 번 걷는 것은 아주 쉬웠다. 빠른 속도로 뛰다보니 금방 다시 지쳤다. 그래서 잠시 또 걷다보면 천천히 뛰던 그가 나를 앞질러갔다. 나는 충분히 쉬고 난 뒤 또다시 빠른 속도로 그를 앞질렀다. 그 분은 전혀 의식 못했을 수 있지만 그는 어느새 나의 목표가 되어있었다.

그렇게 9키로를 넘어 결승선에 도달하기까지 목표가 생긴 나는 머릿속 경쟁을 하며 그 누군가와 엎치락뒤치락 피터지게 싸웠고 천천히 일정한 속도로 꾸준히 달렸던 그와 잠시 쉬어가면서 빠르게 달렸던 나의 경쟁은 결국, 5초 정도 먼저 들어간 그의 승리로 마무리 되었다.

애초에 누군가와 경쟁을 하기위해 온 것이 아니었지만 사실, 그 덕분에 무사히 결승선을 밟을 수 있었고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는 많은 글들의 의미를 뼈 속 깊이 공감할 수 있는 값진 경험이 되었고 전문 마라토너는 아니지만 마라톤 초심자의 눈으로 바라본 인생과의 닮은 점을 몇자 적어본다.


<마라톤과 인생의 공통점>

1. 누구나 자신에 걸맞는 고유의 속도가 있다.
2. 힘들 땐 잠시 쉬어가는 것도 괜찮다.
3. 지금 빨리 뛴다고 결승에 먼저 가는 것은 아니다.
4. 지금 천천히 간다고 해서 결승에 늦는 것은 아니다.
5. 선의의 경쟁 상대는 나를 성장시킨다.


이렇게 많은 공통점이 있지만 결국, 인생은 예행연습을 할 수 없다는게 가장 다른 점인 것 같다.
예행연습을 할 수 없으니 어떤 결과가 올지 알 수 없으며 감내해야만 한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나의 머릿속 경쟁 상대였던 그분에게 감사하며 이글을 마친다.
“고맙습니다. 나의 라이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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