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에서 평양으로 모스크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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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에서 평양으로 모스크바로
  • 최일화
  • 승인 2018.07.13 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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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시단] 잠꼬대 아닌 잠꼬대 / 문익환


잠꼬대 아닌 잠꼬대/ 문익환


난 올해 안으로 평양으로 갈 거야
기어코 가고 말 거야 이건
잠꼬대가 아니라고 농담이 아니라고
이건 진담이라고
 
누가 시인이 아니랄까봐서
터무니없는 상상력을 또 펼치는 거야
천만에 그게 아니라구 나는
이 1989년이 가기 전에 진짜 갈 거라고
가기로 결심했다구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 있지 않아
모란봉에 올라 대동강 흐르는 물에
가슴 적실 생각을 해보라고
거리 거리를 거닐면서 오가는 사람 손을 잡고
손바닥 온기로 회포를 푸는 거지
얼어붙었던 마음 풀어 버리는 거지
난 그들을 괴뢰라고 부르지 않을 거야
그렇다고 인민이라고 부를 생각도 없어
동무라는 좋은 우리말 있지 않아
동무라고 부르면서 열 살 스무 살 때로
돌아가는 거지
 
아 얼마나 좋을까
그땐 일본 제국주의 사슬에서 벗어나려고
이천만이 한마음이었거든
한마음
그래 그 한마음으로
우리 선조들은 당나라 백만 대군을 물리쳤잖아
 
아 그 한마음으로
칠천만이 한겨레라는 걸 확인할 참이라고
오가는 눈길에서 화끈하는 숨결에서 말이야
아마도 서로 부둥켜안고 평양 거리를 뒹굴겠지
사십사 년이나 억울하게도 서로 눈을 흘기며
부끄럽게도 부끄럽게도 서로 찔러 죽이면서
괴뢰니 주구니 하며 원수가 되어 대립하던
사상이니 이념이니 제도니 하던 신주단지들을
부수어 버리면서 말이야
 
뱃속 편한 소리 하고 있구만
누가 자넬 평양에 가게 한 대
국가보안법이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있다구
객쩍은 소리 하지 말라구
난 지금 역사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역사를 말하는게 아니라 산다는 것 말이야
된다는 일 하라는 일을 순순히 하고는
충성을 맹세하고 목을 내대고 수행하고는
훈장이나 타는 일인 줄 아는가
아니라고 그게 아니라구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
 
밤을 낮으로 낮을 밤으로 뒤바꾸는 일이라구
하늘을 땅으로 땅을 하늘로 뒤엎는 일이라구
맨발로 바위를 걷어차 무너뜨리고
그 속에 묻히는 일이라고
넋만은 살아 자유의 깃발로 드높이
나부끼는 일이라고
벽을 문이라고 지르고 나가야 하는
이 땅에서 오늘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
온몸으로 분단을 거부하는 일이라고
휴전선은 없다고 소리치는 일이라고
서울역이나 부산, 광주역에 가서
평양 가는 기차표를 내놓으라고
주장하는 일이라고
 
이 양반 머리가 좀 돌았구만
그래 난 머리가 돌았다 돌아도 한참 돌았다
머리가 돌지 않고 역사를 사는 일이
있다고 생각하나
이 머리가 말짱한 것들아
평양 가는 표를 팔지 않겠음 그만두라고
 
난 걸어서라도 갈 테니까
임진강을 헤엄쳐서라도 갈 테니까
그러다가 총에라도 맞아 죽는 날이면
그야 하는 수 없지
구름처럼 바람처럼 넋으로 가는 거지 *1989년 첫새벽에
 

<시 감상>

시대가 바뀌고 있다. 까마득하게 느껴지던 통일이 한 층 가까워진 것 같다. 통일이야 몇 십 년이 더 걸릴지 모르지만 적어도 서로 왕래하고 교류하며 인간적인 삶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은 성큼 다가와 있다. 지난 6월 23일 서울역에서 강원도 철원 백마고지역까지 가는 ‘DMZ평화열차’에 탑승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기자들에게 “곧 우리가 백마고지까지만 가는 게 아니라 평양, 나아가 모스크바와 베를린까지 가는 기차표를 팔려고 한다”며 “제 말과 행동을 지켜봐 달라. 언제 팔지 모른다.”고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그동안 섬나라 사람인 것처럼 살아왔다. 이제 우리는 기차를 타고 북한을 가로 질러 시베리아로 중국으로 다시 유럽으로 달려갈 희망이 생겼다. 1960년대 내가 중학교에 다닐 무렵에 나는 윤석중 선생의 ‘되었다 통일’이란 동요에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되었다 통일 무엇이 산맥이
그렇다 우리나라 산맥은 한 줄기

되었다 통일 무엇이 강물이
그렇다 우리나라 강들은 만난다

되었다 통일 무엇이 꽃들이
그렇다봄만 되면 꽃들이 활짝 핀다

되었다 통일 무엇이 새들이
그렇다 팔도강산 구경을 다닌다

통일이 통일이
우리만 남았다 사람만 남았다

 
1960년대 초 내가 초등학교 졸업식장에서였다. 당시 교감선생님이 졸업 축사를 하시면서 너희 들이 반드시 3.8선을 없애라고 목청을 높이시던 기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우리가 38회 졸업식이라 더 강조하셨겠지만 그 말씀을 나는 지금껏 한시도 잊은 일이 없다. 당시의 통일에 대한 열망은 요즘보다 더 강렬했다. 우리가 쓰는 대부분의 공책엔 ‘북진통일‘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오늘 문익환 목사의 시 한 편을 같이 읽는 것은 선각자로서 그분을 기억하기 위해서고 통일이 얼마나 오랜 우리의 소원인가를 되새겨보기 위함이다. “분단을 이용해 독재 권력을 유지시키고, 또다시 독재 권력이 통일을 가로 막는 고착된 상황을 깨고 싶었다.”는 선생은 1989년 3월 북한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가서 김일성 주석을 만나 몇 가지 합의를 하기도 했다. "많은 젊은이들이 민주와 통일을 위해 투쟁하고 목숨을 끊는 일에 마음 아파했던" 그는 결국 귀국하자마자 반공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72세의 나이에 영어의 몸이 되었다. 수없이 많은 시인들이 통일을 외쳐왔고 지금도 그 외침을 작품으로 남기고 있다. 이 시 한 편을 다시 읽는 것은 남북 화해 분위기가 고조되는 시점에 민주화와 통일의 열망을 온몸으로 외치던 분들의 육성이 새삼 심금을 울리는 까닭이다. 선생은 방북하던 해 정초에 이 시를 썼다. 북으로 달려간 그 절실한 심정이 읽혀지는 대목이다. 이제 새 정부 들어 추진되는 일체의 화해 분위기가 민족의 통일과 번영을 앞당겨 큰 결실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시인 최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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