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언론 힘들다 그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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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언론 힘들다 그랬잖아
  • 이건우
  • 승인 2018.07.16 0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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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칼럼] 이건우 / 서울시립대 2학년

ⓒ 페이스북 페이지 ‘내가 학보사 힘들다 그랬잖아’
 

교지 편집회의를 마치고 편집실에 나오면서 편집장과 대학언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교지 예산이 어떠하니, 다른 학교는 편집권 침해가 문제니 이야기를 하다가 “정말 대학언론이란 걸 하고 싶었으면 학보사, 교지할 게 아니라 대숲지기를 했었어야 했어.”라는 말을 농담 삼아 던졌다.

처음에는 이 말을 농담 삼아 던졌지만 곱씹어 볼수록 맞는 말이지 않을까 싶다. 작년부터 학교 교지 편집위원회에서 일을 했다. 마감을 앞두고 계속 기사를 정리하다보면 왜 이 힘든 일을 굳이 하겠다고 했는지 잘 모르겠다. 일은 고된데 정작 파급력은 대나무숲과 학교 커뮤니티에도 못 미치니 말이다.

대학언론은 위기다. 한 20년 전부터. 아무래도 학생운동이 죽고 학생자치 역시 휘청거리니 이를 바탕삼아 활동했던 대학언론 역시 마찬가지로 휘청거리고 있다. 대학언론의 당위성은 학생자치에 바탕을 둔다. 왜냐하면 학교사회의 일원인 학생들이 학내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누군가는 알려야 하며, 동시에 누군가는 대학과 총학생회를 견제하고 비판하는 역할을 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학생들이 이 역할을 대학언론에게 맡겨 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교지 편집실에 있었던 90년대 후반 내부 세미나 발제문에 따르면) IMF 이후 대학교는 삶터라기보다 취업을 위한 예비단계가 되었고 시장논리가 대학교를 지배하였다. 따라서 학생자치 역시 이전과는 의미가 달라졌다. 많은 학생들이 학내사회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약간의 관심을 기울이면 총학생회가 최대한의 이익을 학생들에게 돌려줘야 하는 것이 되었다.

이러한 시장논리로 대학언론을 본다면, 대학언론은 총학생회보다 더더욱 존재할 이유가 없다. 총학생회는 학생들에게 복지 혜택이라도 줄 수 있다. 그러나 대학언론은 학생들에게 직접적인 이익을 가져다주지 못 한다. 물론 대학언론은 학내사회의 권력을 견제하고 문제를 지적한다는 점에서 유효할 수 있다. 그러나 읽는 사람이 없다. 왜냐하면 긴 글 투성이 교지와 학보, 접근성이 떨어지는 학내 방송 대신 편리하게 접할 수 있는 대체재가 있기 때문이다.

이 대체재가 바로 대나무숲과 학교별 인터넷 커뮤니티다. 대나무숲은 페이스북 페이지와 구글 설문지를 이용하는데, 학생들이 익명으로 글을 남기면 대나무숲 관리자가 페이스북 페이지에 글을 게시하는 구조이다. 개인적인 글부터 학내 이슈나 사회이슈에 관해 글을 남기고 할 이야기가 있는 사람들은 댓글로 토론을 벌인다. 학교마다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정한 닉네임이나 익명으로 각종 학내 부조리나 학내 이슈에 관한 글을 남기고 토론할 수 있다. 대나무숲과 인터넷 커뮤니티는 현재 대학생에게 최적화된 공론장이자 언론이지 않을까. 학내 이슈를 가장 빠르고 간단하게 접할 수 있으며, 이에 관한 의견개진도 굉장히 빠르고 간편하니 말이다.

그러나 대나무숲과 학교별 인터넷 커뮤니티 역시 한계를 갖고 있다. 대나무숲은 관리자(대숲지기)의 자의적인 기준에 따라 글이 스크리닝(검열)되는 일이 잦다. 예를 들자면 많은 학교의 대나무숲에서 논쟁적인 사회이슈에 관한 글이나 대나무숲을 향한 비판은 자주 검열된다. 또한 몇몇 학교에서는 학내 부조리를 고발하는 글이 검열되어 논란이 된 적도 있다. 물론 무조건적인 비방이나 문제의 소지가 있는 글은 스크리닝되어야 한다. 그러나 선출된 권력도 아닌 대숲지기가 자의적으로 판단하여 토론해야 할 주제나 알려야 할 일들을 검열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한편, 인터넷 커뮤니티는 오히려 스크리닝이 없어서 문제다. 많은 학교 커뮤니티에서 문제적 소지가 있는 글을 제재하는 기준이 없기 때문에 소수의견을 향한 다수의 무조건적 비방이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커뮤니티에서 소수의견은 묻히기 쉽다.

아마 이 지점에서 대학언론이 필요하지 않을까. 비록 대학언론이 시장논리에 부응하지는 못 하지만, 알려야 할 일들을 알리고 소수의견에도 경청하여 이들의 목소리를 전달해 줄 수는 있다. 대나무숲과 학교 커뮤니티에서는 들을 수 없는 목소리는 분명히 있다. 이 목소리가 전달되지 않는다면 없는 것으로 여겨지기 쉽다. 소수의 목소리가 아예 들리지 않는다면 학생복지를 위해 남아 있는 학생자치에도 이들의 이익은 고려되지 못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저널리스트’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공론장과 언론을 만들고자 하는 마음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편집실에 남아 마감을 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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